화성 탐사의 심리학

2015.10.19 18:00

<기사 중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마션’이 개봉 11일 만에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한다. 지난 7월 번역출간된 동명의 원작 소설도 SF로서는 드물게 판매집계 소설 순위 1위(전체 4위, 교보문고)에 올랐다. 다들 반가운 일이다. 특히 소설은 출판사들이 책을 내주지 않아 작가인 앤디 위어가 2011년 자비로 e-북을 출간했고 이게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종이책이 나왔다고 하니 인생역전기라고 할만하다.

 

시리즈는 아니지만 마치 앞의 시리즈처럼 보이는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와 비교하면 ‘마션’은 ‘그래비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즉 두 영화는 현재 일어나고 있거나 이번 세기(미항공우주국(NASA)은 2030년대 유인화성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터스텔라’는 말 그대로 ‘공상’과학영화다.

 

‘그래비티’가 국제우주정거장과 허블망원경이 있는 지구 위 수백 km의 우주 상황을 실감있게 보여줬다면, ‘마션’은 진짜 화성에서 찍은 것처럼 ‘붉은 행성’의 풍경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것 같다. 수십 년 뒤 화성에 인류가 발을 내디딜 때 모습은 중력의 차이로 인한 거동의 부자연스러움만 약간 느껴질 뿐 영화 속의 장면과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 홀로 남았지만 낙천성 잃지 않아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주인공인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 마크(왼쪽)의 낙천성과 탐사대장 멜리사(그 옆)의 결단력은 화성탐사대원으로서 이상적인 캐릭터다. - 20세기 폭스 제공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주인공인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 마크(왼쪽)의 낙천성과 탐사대장 멜리사(그 옆)의 결단력은 화성탐사대원으로서 이상적인 캐릭터다. - 20세기 폭스 제공

‘마션’의 이야기는 화성기지에 머무르며 시료를 채취하던 탐사대가 강력한 모래폭풍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륙선이 쓰러질 지경이 되자 탐사대장 멜리사 루이스(제시카 차스테인)은 철수를 결정하고 다들 이륙선으로 향하는 도중, 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바람에 날아가던 부품에 맞는 사고가 일어난다. 마크가 죽었다고 판단한 멜리사는 그대로 이륙해 탐사선에 도킹한 뒤 지구로 향한다.

 

폭풍이 지나가고 깨어난 마크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기지로 들어가 홀로 남겨진 현실을 깨닫고 절망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다음 탐사일정(4년 뒤)까지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한다. 식물학자인 마크는 전공을 살려 감자를 키우기로 했고 화학지식을 총동원해 농사에 필요한 물을 자체 생산한다. 농사가 잘 돼 희희낙락하지만 폭발사고로 감자밭이 날아가면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화성의 위성 사진을 분석하다 우연히 마크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NASA는 그를 구출할 방법을 고민하고, 한 연구원의 아이디어로 지구로 귀환하는 탐사선에 보급장비를 실은 뒤(도킹으로) 지구를 유턴해 다시 화성을 향하게 하는 모험을 계획한다. 500여일의 추가 일정과 목숨을 잃을 위험성을 앞에 둔 탐사대원들은 만장일치로 모험에 동의하고 마크를 구하기 위해 화성으로 향한다.

 

영화에는 NASA 사람들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의 정신상태를 걱정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그때마다 정작 마크는 올드팝을 들으며 투덜거리는 등 일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 걱정이 ‘기우’임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구만.’ 과도한 대비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문득 여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원 한 사람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륙 결단을 내리고, 마크를 구출하는 모험에 과감히 뛰어드는 탐사대장 멜리사의 모습 역시 영화적 설정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는 지구와 탐사선 사이의 교신이 12분의 지체(전자기파(빛) 신호의 이동 시간)를 두고 일어나면서 실시간 상황을 몰라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온다. 지금까지 인류는 지구상공 수백 km나 38만km 떨어진 달에 사람을 보냈지만, 양쪽의 교신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태양에서 2억 2000만km 떨어진 화성은 태양빛이 도달하는데 12분이 걸린다. 지구와 화성이 독자적으로 공전하므로 평균거리를 이 거리로 치면, 문의를 한 뒤 대답을 듣는데 최소 24분이 걸리는 셈이다.

 

아무튼 현재의 기술로는 영화의 설정처럼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8개월 정도가 걸린다. 지구에 거의 다 온 탐사선이 화성으로 돌아가 두고 온 대원을 데려 오는 추가 미션에 500일이 넘게 소요되는 이유다. 또 영화에서는 탐사선이 상당히 쾌적하게 묘사돼 있어서  주조종실과 생활공간이 꽤 널찍할 뿐 아니라 바퀴처럼 원을 그리며 회전해 원심력으로 중력을 만들어내 대원들이 바닥에 ‘발을 붙이고’ 생활한다. 그러나 이렇게 쾌적한 탐사선은 현실적으로 이번 세기에 실행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규모의 탐사선을 만들려면 로켓을 몇 대나 쏴야할까?

 

따라서 이번 세기에 화성탐사가 이뤄진다면 우주인들은 십중팔구 오늘날 우주정거장 수준의 환경, 즉 좁은 공간과 무중력(미세중력) 상태에서 500일을 버텨야 한다(중간에 화성에 잠깐 내려 바람을 쐬기는 한다). 이 과정에 급박한 상황이 생겨도 지구와 실시간으로 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NASA에서도 화성탐사의 성공여부가 기술도 기술이지만 우주인들의 전문지식과 특히 정신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여섯 명 가운데 두 명만 합격점

 

실제로 화성탐사가 진행될 때 우주인들의 몸과 정신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알아보는 시뮬레이션이 진행된바 있다. 바로 러시아과학원이 주도한 ‘마스 500(Mars-500)’ 미션으로, 2010년 6월 3일 우주인 6명이 모스크바의 생의학문제연구소(IBMP)에 차려진 모의 화성탐사선에 탑승해 2011년 11월 4일까지 무려 520일 동안 가상 화상탐사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우주인들이 보인 심리적, 생리적 변화 데이터는 진짜 화성탐사를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스 500 미션의 모의 탐사체 구조. 모두 5개 모듈로 이뤄져 있는데 화성표면 모듈(빨간색)을 뺀 4개 모듈(회색)이 실제 탐사체다. 앞쪽 긴 원기둥이 주거모듈, 오른쪽 위 짧은 원기둥이 의료모듈, 가운데 긴 원기둥이 저장 모듈이다. 왼쪽 아래 짧은 원기둥은 화성이착륙기 모듈이다. - IBMP 제공
마스 500 미션의 모의 탐사체 구조. 모두 5개 모듈로 이뤄져 있는데 화성표면 모듈(빨간색)을 뺀 4개 모듈(회색)이 실제 탐사체다. 앞쪽 긴 원기둥이 주거모듈, 오른쪽 위 짧은 원기둥이 의료모듈, 가운데 긴 원기둥이 저장 모듈이다. 왼쪽 아래 짧은 원기둥은 화성이착륙기 모듈이다. - IBMP 제공

 

러시아인 3명, 유럽인 2명, 중국인 1명으로 이뤄진 탐사대는 모두 남성으로 나이는 27~38세(평균 32세)였다. ‘뭐 어차피 가짜인데...’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5개 모듈로 이뤄진 모의탐사선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돼 있고 화성이착륙선 모듈(탐사선은 중간에 한 달 동안 화성 상공에 머무른다)과 화성표면 모듈까지 포함해도 부피가 550㎥에 불과하다. 그리고 탐사 54일부터 470일까지는 지구와 교신에 지체가 생겨 최대 25분에 이른다. 다만 무중력의 환경은 구현하지 못했다. 낮과 밤의 신호가 없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24시간을 주기를 유지한다(매일 오전 8시에 아침식사). 또 지구에서처럼 5일을 일하고 이틀을 쉰다.

 

2013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미션이 수행되는 동안 대원들의 생리적 변화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운동저하다. 특히 첫 3개월 동안 급격히 떨어졌는데, 미션이 시작될 때는 이륙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등 바쁘게 돌아갔지만 단조로운 이동기간과 지구와의 교신에서 지체가 생기면서 활동량이 떨어지고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 이런 경향은 미션이 끝날 때까지 심화되다가 마지막 20일을 앞두고서야 활기를 되찾았다. 연구자들은 미션종료를 앞두고 대원들이 설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수면의 질을 조사한 결과 여섯 명 가운데 두 명에서 문제가 있었다. 즉 대원a는 낮잠을 자주 잤고 대원b는 일주리듬, 즉 하루 24시간 주기에서 벗어나 다소 불규칙한 리듬을 보였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은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잦았다. 한편 대원f는 불면증을 호소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화성탐사를 할 때 이착륙 전후를 뺀 긴 이동시간 동안 대원들이 일할 거리를 만들어 활동량을 유지하게 하는 게 필요함을 시사한다.

 

2014년 학술지 ‘플로스원’에는 화성모의탐사의 심리적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실제 탐사에 비해 심리적으로 온화한 환경임에도(죽을 염려는 없으므로) 개인에 따라서 편차를 보였다. 즉 “못해먹겠다”며 중간에 이탈하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대원e는 미션수행기간 내내 우울증 증상을 보였고 지구의 본부나 대원 사이의 말다툼(드물게 일어났지만)의 85%가 대원e와 대원f가 일으킨 것이었다. 대원e는 불행감, 신체적 탈진, 정신적 피로도에서 점수가 가장 높았고 대원f는 스트레스, 피로, 수면질저하, 업무부담감에서 점수가 가장 높았다.

 

또 불만의 대상은 동료에 비해 본부가 5배나 많아 먼 거리로 인해 실시간 대화의 불가능한 점이 상당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탐사대원들에게 권한을 더 많이 부여해야한다고 연구자들은 제안했다. 한편 화성에 도달해 미션을 수행하는 한 달 동안이 갈등이 가장 큰 기간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대원들은 세 차례 이착륙선을 타고 화성 표면에 내려가는데(물론 모듈 사이의 이동이다), 이 과정에서의 기술적인 어려움 등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션기간동안 대화를 가장 자주 나눈 대원을 둘 꼽으라는 물음에 대해 네 명이 대원d를, 세 명이 대원c를 꼽았다. 대원b와 대원e는 평균인 2명이 꼽았고 대원f는 한 명, 대원a는 아무도 지정하지 않았다. 즉 미션에서 대원d와 대원c는 허브이고 대원a와 대원f는 따로 논 셈이다. 특히 대원c와 대원d 두 사람은 여러 생리적, 심리적 항목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즉 이들 두 사람이 이상적인 화성탐사대원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개인의 이런 특징들은 미션기간 내내 별로 변하지 않았다. 즉 마치 신체적인 특징처럼 심리적인 특성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 바꿔 말하면 애초에 사람을 잘 뽑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닌 게, 마스 500 프로젝트의 여섯 명도 40개 나라의 60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다.  

 

60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뽑혀 마스 500 미션에 참가한 여섯 명. 러시아인 3명, 프랑스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중국인 1명으로 모두 남성이고 평균나이는 32세다. 논문에서는 a에서 f까지 알파벳으로 표기돼 누가누구인지는 모른다. - IBMP 제공
60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뽑혀 마스 500 미션에 참가한 여섯 명. 러시아인 3명, 프랑스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중국인 1명으로 모두 남성이고 평균나이는 32세다. 논문에서는 a에서 f까지 알파벳으로 표기돼 누가누구인지는 모른다. - IBMP 제공

화성탐사는 500일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한 사람이 늘어날 때 마다 식량 등 짐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자기를 꼭 태우는 조건으로 수 조 원을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태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각자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가 있어야하는 걸 전제로 해서 정신력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 ‘마션’에서 대책없는 낙천주의자로 나오는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 마크나 리더십의 화신인 탐사대장 멜리사의 카리스마는 영화의 설정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영화에서 탐사대원 여섯 명의 성별이 여성 두 명, 남성 네 명인 것과는 달리 마스 500에서는 여섯 명 전원을 남성으로 뽑은 건 긴 미션 기간 동안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남녀 사이의 ‘긴장’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계획대로 2030년대 NASA의 화성탐사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대원들을 뽑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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