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마술사: 좋은 유머란 무엇인가

2015.10.17 18:00

얼마 전, 어느 블로거가 페이스북(Facebook)에 올린 피카소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대강 이렇다.

 

어느 날 피카소가 시장 길을 걷고 있었단다. 그때 한 낯선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단다.

 

피카소 - teadrinker picasso(위키미디어) 제공
피카소 - teadrinker picasso(위키미디어) 제공

“피카소 씨, 저는 당신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게 그림 하나 그려 주실 수 있나요?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피카소는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짧은 시간 동안 작지만 아름다운 초상화 하나를 그려 여인에게 주었단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이 그림의 가격은 50만 달러입니다.”


그림 값에 놀란 여인은 말했단다.


“피카소 씨, 이 그림을 그리는 데 겨우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는데요…….”


피카소는 웃으며 대답했단다.


“당신을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 30초예요.”

 

텔레비전 없이 생활한 지 10년쯤 되었다. TV 매체의 다양한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당시 일본 방송들을 베낀 프로그램들이 유행을 넘어 폭발적으로 늘어나 황금 시간대를 지배하는 모양을 보고는 참을성 없는 나는 어느 날 TV를 내다 버렸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강요하듯 쏟아내는, 경망스레 까부는 유머를 보고 있자니 스스로 못 견뎠던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와 가족이 가볍기만 한 경쟁적 수다의 유머와 과장된 몸짓들을 보며 넋 놓고 ‘웃고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따져보면 입맛에 안 맞는 그런 프로그램은 안 보면 그만이었지만, 변명하자면, 예전의 가정집 라디오가 그랬듯이 예나 지금이나 지배적인 방송 매체는 늘 틀어놓기 마련이어서 자율적으로 통제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런 나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우리 가족은 다른 좋은 프로그램도 못 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오래전(아마도 20여 년 전이었을 듯하다), 휴일 낮에 집에서 세계마술대회를 TV 방송으로 보았다. 전 세계 아마추어 마술사들의 경연대회였다. 그날의 대상 수상자가 자신의 독특한 마술 공연 직후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방금 3분 동안 저의 30년을 보았습니다.”

 

좋은 유머란 이런 것이다. 피카소든 마술사든, 공교롭게도 ‘30년’을 말한 경우이지만, 그 유머의 꼬치를 꿴 말을 읽고 들은 우리는 빙그레 웃는다. 오랫동안 장작불을 지펴 우러나온 진한 국물 같은 ‘인생탕’의 말과, 캡사이신(capsaicin)을 넣고 금방 끓여낸 매운맛 찌개 같은 자극적인 말로 함께 출연한 연예인을 우스꽝스레 만듦으로써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려는 어이없는 유머(?)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들은 다양한 말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중 유머로서의 말들은 잠시나마 인생을 즐겁게 해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보는 상쾌한 말들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혹은 누군가는 서랍 안이 텅 비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곧바로 휘발돼 버리고 마는 ‘의미 없는 유머’는 아닐 것이다. 2400년 전의 인물 히포크라테스. 그를 우리는 그의 말로 기억한다. 그의 말마따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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