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도 전염 될까?

2015.09.21 18:00

알츠하이머는 매독 전문가로 죽었고, 알츠하이머병의 발견자로 부활했다.
- 다우어 드라이스마

 

2001년 출간한 책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로 유명해진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심리학자 다우어 드라이스마 교수의 2006년 작품 ‘마음의 혼란’이 지난 봄 뒤늦게 번역출간됐다. 부제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된 마음의 병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주로 의사)의 이름을 갖는 열두 가지 질병의 발견역사를 다루고 있다.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는 알츠하이머병은 8장에 나온다.

 

190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아우구스테 데터라는 이름의 52세 여성이 입원한다. 편집증이 심하고 가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면증을 호소해 남편이 더 이상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36세였던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는 11월 26일 데터와 처음 만났다.

 

“이름이 뭐예요?”/ “아우구스테.”
“성은 뭐예요?”/ “아우구스테.”
“남편의 이름은요?”/ “아우구스테인 것 같아요.”

 

이날 알츠하이머가 적은 의무 차트의 첫 문장이다.

 

“침대에 앉아 있음. 제정신이 아닌 표정.”

 

● 직장 상사가 병명에 이름 넣어

 

1864년 독일 마르크트브라이트에서 태어난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는 뷔르츠부르크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1888년 프랑크푸르트의 정신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강압적인 치료법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무속박 원칙을 지향하는 이 병원을 지원한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성실하고 친절한 의사였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신경병리학, 즉 죽은 환자의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는 뛰어난 데생 실력으로 논문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전문 분야는 마비성 치매라고도 알려진 진행성 마비다. 당시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3분의 1이 이 질환을 앓았는데, 매독 감염으로 유발됐다.

 

1906년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사례를 보고한 독일의 신경병리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당시는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질병이 점점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1906년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사례를 보고한 독일의 신경병리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당시는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질병이 점점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1903년 알츠하이머는 뮌헨 왕립정신병원 부설 해부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이곳에는 한스 게르하르트 크로이츠펠트와 알폰스 야콥이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두 사람은 훗날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불리는 프리온 질환을 각각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1906년 4월 아우구스테 데터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알츠하이머는 뇌와 의무 차트를 받아 환자의 증세변화를 파악했고 현미경을 이용해 뇌의 신경조직에서 매듭과 플라크라고 명명한 변형을 관찰했다.

 

알츠하이머는 같은해 11월 한 모임에서 데터의 임상사례를 발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왕립정신병원 원장이었던 에밀 크레펠린 교수는 1910년 정신의학개론서 8판을 내면서 노인성 치매에 관한 부분에서 아우구스테의 사례를 언급하며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인류의 평균수명은 두 배가 됐고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인성 치매가 만연하게 된 것. 그리고 노인성 치매의 절반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사실 52세라는 이른 나이에 진단을 받은 아우구스테는 예외적인 경우인데, 아마도 알츠하이머병이 일찍 발병하는 유전형(대표적인 예가 APOE 에타4형이다)일 것이다.

 

9월 21일은 ‘치매 극복의 날’이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는 매년 9월 21일을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World Alzheimer's Day)’로 제정했다. 여기에 맞춰 우리식으로 이름을 바꾼 셈이다. 국제알츠하이머협회는 치매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건강 수칙 다섯 가지를 발표했다. 즉 ‘심장을 돌보자’ ‘몸을 움직이자’ ‘건강한 식습관을 갖자’ ‘머리를 쓰자’ ‘사회활동을 즐기자’다.

 

그런데 드라이스마는 책에서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역사에서 영양, 환경적 영향, 생활 방식과 관련 있는 위험 인자의 모든 목록이 제시되었지만... 모든 것을 합친다 해도 우리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위험 인자, 즉 노화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쓰면서 건강관리에 세심한 현대인들을 향해 “이 많은 멋지고 건강한 몸뚱어리들은 더욱더 긴 시간 동안 혼미한 정신의 거처가 될 것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학술지 ‘네이처’ 9월 10일자에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또 다른 불길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감염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프리온과 베타 아밀로이드의 공통점

 

필자는 어린 시절 키가 워낙 작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1990년대 초 국내 한 기업이 유전공학을 이용한 인간성장호르몬을 출시했다는 뉴스를 듣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도 인간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을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실제로 1958년에서 1985년까지 세계(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3만여 명이 인간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유전자공학기술이 나온 게 1970년대 후반인데 어떻게 1958년에 인간성장호르몬 약물이 있었을까? 바로 시체에서 추출한 것이다. 즉 시체 수천 구에서 뇌(정확히는 뇌하수체)를 모아 인간성장호르몬을 추출정제한 것. 아마도 상당한 고가였을 것이기 때문에 서구에서도 부자들이나 투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비극이 일어났다. 성장호르몬을 맞은 사람들 가운데 치명적인 프리온 질환인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이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 2012년 현재 226명의 환자가 보고됐다. 뇌하수체에서 인간성장호르몬을 추출정제하는 과정에서 변형프리온 단백질이 오염된 로트의 호르몬을 주사맞은 사람들 가운데 발병자가 나온 것이다. 프리온 질환은 잠복기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40년이 넘기 때문에 당시 호르몬을 맞은 사람들은 지금도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국립신경학신경외과병원 세바스찬 브랜드너 박사팀은 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 투여로 발병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사망한 환자 여덟 명의 뇌조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36세에서 51세에 이르는 환자들 가운데 여섯 명에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플라크를 이룬 병리적 소견이 보였고 그 가운데 네 명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던 것. 다만 이 환자들은 사망할 때까지 알츠하이머병 증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네이처’ 9월 10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 환자에서 발견된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호르몬 투여시 감염된 베타 아밀로이드 씨앗(seed)에서 비롯된 가능성이 높다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먼저 사망한 여덟 명 모두 알츠하이머병이 일찍 발병하는 유전형이 아니었다. 또 호르몬 투여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프리온 질환에 걸려 사망한 비슷한 나잇대 또는 심지어 10년 더 나이든 환자 116명의 뇌조직을 조사한 결과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이 없었거나 있어도 미미했다. 한편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사람 49명의 뇌하수체를 조사한 결과 일곱 명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보였다.

 

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 투약의 비극. 1958년에서 1985년 사이 성장이 부진한 어린이 3만 여명이 시체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인간성장호르몬을 투여받았다.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나 아밀로이드베타(Aβ) 단백질이 침착된 뇌하수체가 섞여 있는 로트의 약물을 받은 경우 수십 년이 지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 발병하거나 Aβ가 침착된다. - 네이처 제공
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 투약의 비극. 1958년에서 1985년 사이 성장이 부진한 어린이 3만 여명이 시체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인간성장호르몬을 투여받았다.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나 베타 아밀로이드(Aβ) 단백질이 침착된 뇌하수체가 섞여 있는 로트의 약물을 받은 경우 수십 년이 지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 발병하거나 Aβ가 침착된다. - 네이처 제공

무엇보다도 이미 수년 전 동물실험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감염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보이다 죽은 쥐의 뇌를 갈아 주사하면 같은 질환이 유발되는 것. 이는 감염성 단백질인 프리온과 같은 패턴이다.

 

그런데 이번 실험이 시사하듯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감염성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시체의 뇌에서 추출한 인간성장호르몬을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물론 당시 호르몬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알츠하이머병 공포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게다가 알츠하이머병은 흔한 질환이기 때문에 발병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을 투여받고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사망한 환자의 뇌하수체에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가운데 갈색) 침착이 발견됐다. 이는 호르몬에 섞여 있던 아밀로이디베타 단백질 씨앗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 네이처 제공
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을 투여받고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사망한 환자의 뇌하수체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가운데 갈색) 침착이 발견됐다. 이는 호르몬에 섞여 있던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씨앗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 네이처 제공

‘네이처’ 같은 호에 해설을 쓴 독일 튀빙겐대 마티아스 주커 교수는 문제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너무 안정해 일단 오염되면 없애기 어려운 프리온 단백질보다도 더 안정한 분자이기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감염의 위험성을 없애기 쉽지 않다는 것.

 

심지어 수혈을 통한 감염을 우려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따라서 추가실험(시체 유래 인간성장호르몬을 실험동물에 투여한 뒤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 여부와 정도를 대조군과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감염성이 확증된다면 의료계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것이다.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리라는 예감이 든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