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펙틴이 만나면 과일이 끈적끈적

2015.09.09 18:00

어머나, 냉장고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사과가 시들기 시작했어요. 윤기가 돌던 표면의 생기가 사라지고 멍이 든 것처럼 물러버린 것도 있어요. 아무래도 다른 음식으로 변신시켜야겠어요. 사과잼을 만들어 풍요로운 과일의 맛과 향에 흠뻑 빠져보기로 했답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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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과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4세기 그리스 사람들은 귤과 비슷한 과일인 마르멜로를 오랫동안 저장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지요. 마르멜로를 잘게 썰어서 꿀에 재우는 것이었어요. 농도를 높이면 과일에 살고 있던 세포가 수분을 모두 잃어버려 과일이 더 이상 상하지 않거든요(삼투현상). 이런 방법으로 마멀레이드나 과일젤리를 만들었답니다. 뜨거운 물에 섞어 차로 마시거나, 탱탱한 젤리를 디저트로 즐겼지요.

 

13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사탕수수가 들어왔어요. 유럽 사람들은 이번엔 꿀 대신 설탕으로 과일을 절여봤어요. 설탕은 꿀과 달리 강한 향이 나지 않아서 과일이 가진 고유한 향기를 유지하기에 좋았어요. 또 과일절임이 비교적 부드러워서 빵이나 쿠키에 발라먹기도 좋았고요. 이렇게 잼이 탄생했답니다. 저는 잼을 만드는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한양대 조리과학연구실 ‘사이언스 인 더 키친’으로 찾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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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잼 만드는 일등공신은 펙틴

 

잼은 고체일까요, 액체일까요? 고체보다는 부드럽고 기울어진 면에서 흘러내리지만 액체보다는 단단해요. 이런 상태를 겔이라고 해요. 겔은 그물이 엉겨있는 스펀지가 물방울을 머금은 것과 비슷하답니다. 아삭아삭한 사과를 이런 겔 상태로 만들려면 먼저 가열해야 해요. 사과를 부드러운 겔 상태로 만드는 펙틴이 과일과 채소의 세포막과 세포벽 안에 들어 있거든요. 펙틴은 젤리나 양갱을 만들 때도 사용하지요.

 

사과 5~6개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겼어요. 네 쪽으로 자르고 심을 제거해 과육만 남겨요(약 1kg). 과육을 두께가 0.5cm쯤 되도록 잘게 썰었어요. 사과조각들은 소금물에 담가요. 약 5분 후, 사과조각들을 맑은 물로 씻어내고 레몬을 뿌렸답니다. 레몬을 뿌리면 갈변현상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잼 맛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어요.

 

물기를 제거한 사과조각들을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중간불로 끓여줍니다. 이때 센 불로 끓이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펙틴 사슬이 너무 잘게 부서지면 겔을 형성하지 못하거든요. 사과 속에 들어 있던 물이 바깥으로 새어나와 냄비 속에 흥건히 고였어요.

 

20분 쯤 지나니 실습실 안에 향긋한 사과향기가 퍼졌어요. 물이 자작해진 냄비 속에서 사과가 잘 익었지요. 그런데 주걱으로 휘저어보니 잼처럼 끈적끈적하지 않고 죽처럼 변해버렸어요(사과농축즙). 펙틴이 아무리 많아도 혼자서는 절대 겔을 형성할 수 없답니다. 펙틴 분자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기 때문이에요. 또 물속(즙)에서는 펙틴 분자들이 음전하를 띠어 서로 반발해 뭉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비결은 바로 설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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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설탕이 있어야 잼으로 굳어

 

잼은 엄청 달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어요. 설탕을 많이 넣어야만 잼이 생기거든요. 설탕은 미생물을 쫓아내 과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펙틴 분자를 뭉쳐 그물구조로 만들어요. 설탕이 물 분자들을 끌어당기면 빈 공간에서 펙틴 분자들이 가깝게 모이지요. 저는 사과 질량의 60~70%만큼 설탕을 부었어요. 설탕을 세 번으로 나눠 골고루 붓고 주걱으로 사과와 잘 섞었죠. 사과농축즙이 눌어붙거나 타지 않도록 약한 불에서 주걱으로 잘 저으면서 졸였어요.

 

하지만 펙틴 분자들은 설탕을 넣은 뒤에도 여전히 음전하를 띠고 있어 서로 밀어내요. 이때 레몬즙이나 구연산 같은 산성 물질을 넣어주면 펙틴 분자들이 더 이상 음전하를 띠지 않는답니다. 저는 설탕이 사과농축즙에 고루 섞여 조금씩 끈적끈적해지기 시작했을 때 레몬 반쪽을 짜 넣었어요. 이제부터는 약한 불로 짧은 시간동안 졸여야 해요. 사과와 설탕을 너무 오랫동안 졸이면 펙틴이 분해돼 겔을 형성하기 어렵고, 사과 과육의 노란빛깔과 향기가 사라지거든요.

 

보글보글 팟! 만화 속 마귀할멈이 끓이는 호박주스처럼 사과농축즙이 거품을 터뜨리고 있어요. 한 주걱 떠보니 잼은 충분히 끈적끈적해졌어요. 가장 맛있게 완성된 잼은 설탕의 농도가 약 65%랍니다. 이 농도로 적당히 졸여졌는지 수중낙하법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찬물이 가득 차 있는 투명한 컵에 사과농축즙을 한 방울 떨어뜨린 다음 관찰하는 방법이지요. 즙이 물속에서 여기저기로 퍼진다면 잼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에요. 완성된 잼은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물에 퍼지지 않고 컵 바닥까지 굳은 채 떨어진답니다. 완벽하게 졸인 잼이어야만 빵에 바를 때 빵 속에 젖어들지 않고 표면에 넓게 펴져요.

 

완성된 사과잼의 맛은 어떨까요? 작은 숟가락으로 떠 한입 맛보았어요. 혀끝을 녹일 듯한 달달한 맛과 향긋한 향이 입안 가득하게 퍼졌어요. 시중에서 파는 사과잼보다 사과의 향기가 풍부한 걸 보니 이번 실습도 성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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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설탕 없이 잼 만드는 영국의 젊은 창업가

 

잼을 만들 때 펙틴을 뭉치게 하려면 과일 질량의 60~70% 만큼 설탕을 넣어야 해요. 잼을 먹다가 뚱뚱해지면 어쩌죠? 놀랍게도 영국 20대 창업가인 프레이저 도허티는 설탕 없이도 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답니다. 그는 14살 때 할머니가 만드는 잼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펙틴이 가득한 과일에 무가당 주스 시럽을 섞어 설탕 없이도 잼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냈죠.

 

프레이저는 10월 9일 우리나라를 방문해 직접 라즈베리 잼을 만들어 보였어요. 라즈베리 1kg에 무가당 포도주스 시럽을 섞었어요. 여기에 들어가는 시럽은 그가 직접 무가당주스를 5~6시간 동안 끓여서 주스의 부피가 원래의 4분의 1이 될 때까지 졸인 거예요. 프레이저는 앞으로 첨가물질 없이 100% 꿀로 만든 ‘몸에 좋은 꿀’도 만들 계획이랍니다.

 

○ 새댁 기자의 노하우

 

펙틴은 산과 당이 함께 겔을 형성해 식물세포의 형태를 유지하는 분자예요. 과일을 잘게 부숴 가열하면 펙틴을 얻을 수 있어요. 끓는점이 가까워지면 세포벽이 망가지면서 펙틴이 빠져 나오거든요. 잘 익은 과일일수록 펙틴이 가득해요. 과일이 시들면서 펙틴이 점점 줄어들지요. 과일 중에서도 특히 사과와 감귤류에 펙틴이 많이 들어 있답니다.

 

그래서 잼을 만들기가 수월하지요. 놀랍게도 잼의 가장 흔한 재료인 딸기에는 펙틴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요. 딸기와 설탕만으로 잼을 만들면 즙이 흥건히 고이고 뭉쳐지지 않지요. 그래서 딸기로 잼을 만들 때에는 사과나 감귤에서 뽑아낸 펙틴을 추가로 넣어야 한답니다.

 

 

 

※ 이정아 기자의 ‘쿡! 쿡! 맛있는 과학’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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