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해?

2015.08.18 18:00

“오…, 오늘…?”
 
“응. 이따 저녁에.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더워서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어.”
 
“그, 그래? 우리 어제도 만났는데….”
 
“엥? 뭐야. 그래서 오늘은 만나기 싫다고? 미영이네 오빠는 맨날 만나러 온다던데….”
 
“아, 아니야. 내가 냉면 잘 하는 데 알아. 거기로 가자. 이따 6시에 만나.”
 
소년은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면서 소년은 연애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처음 찾아온 위기라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식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도 나 할 것 좀 하자!”
 
소년은 외쳤지요. 물론 속으로만.

 

 

pixabay.com 제공
pixabay.com 제공

● 할 건 하고 살아야지~
 
정신 팔려 지내던 연애 초기가 지나자 그동안 접어놓고 있었던 일이 슬슬 떠올랐습니다. 선진 축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유로 2012 경기도 챙겨봐야 했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디아블로도 잡으러 다녀야 했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해야 했고요.
 
하지만 여자친구는 소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취미 생활이란 할 일이 없고 심심할 때 시간을 때우려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일이란 것을요. 소년의 주장은 여자친구의 “그래서 그게 나보다 더 중요해?”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곤 했습니다. 궤변이었지만, 함부로 반박했다가는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 나름대로는 여자친구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기준은 소년의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들 때까지 통화를 해야만 했던 소년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핸즈프리로 통화하면서 악마를 잡는 꼼수도 부려보았지만, 이도저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그쯤 되자 여자친구와 갈수록 가까워진다는 데 겁이 덜컥 들었습니다.
 
소년은 이게 남녀의 차이인가 싶어 이곳 저곳을 뒤져보다가 연애 유형에 대한 논문을 찾았습니다. 조금 오래됐지만, 1990년 미국 심리학회지에 실린 논문입니다. 연구팀은 개인별 유형이 그들의 연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144쌍의 연인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관찰했지요.
 
여기서는 연애 유형을 ‘안정형’, ‘회피형’, ‘긴장형’으로 구분했습니다. 명칭만 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정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고 서로 의존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지요.

 

회피형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게 불편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다른 누가 자기에게 의존하는 것도 꺼려합니다. 긴장형은 상대방이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떠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때때로 극단적으로 상대와 가까워지려고 하기도 합니다.

 

 

pixabay.com 제공
pixabay.com 제공

● 우리는 잘못된 만남일까?
 
안정형은 상호의존도, 신뢰, 헌신, 만족의 수준이 매우 높은 연애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회피형은 반대로 이런 지표가 낮았고요. 긴장형은 남녀가 살짝 달랐습니다. 긴장형인 남자의 연애는 신뢰와 만족 수준이 낮았고, 긴장형인 여자의 연애는 신뢰와 헌신의 수준이 낮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헤어졌을 때의 반응이었습니다. 강한 회피형 남자는 다른 유형에 비해 헤어진 뒤에 고통을 별로 겪지 않았습니다. 이건 유독 남자만 그랬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갈등을 회피하고 강한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눈여겨 본 부분은 서로 다른 유형이 만나는 경향이었습니다. 안정형끼리는 서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회피형 남자는 주로 긴장형 여자를 만나는 경향이 있다고 나와 있는 겁니다. 소년은 너무 깊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고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자신이 회피형이고, 끊임없이 연락하고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하는 여자친구가 긴장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피형과 긴장형의 만남에는 성별 차이도 있었습니다. 여자가 긴장형인 경우 여자의 소유욕은 남자의 연애 만족도를 떨어뜨렸습니다. 반대로 남자가 긴장형 일 때 남자의 소유욕은 여자의 연애 만족도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연애가 처음보다 덜 즐거워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은 애초에 잘 안 맞는 유형이었을지도 몰랐던 겁니다. 그러나 회피형 남자와 긴장형 여자가 잘 만나는 이유를 찾아 읽어본 소년은 뜨끔했습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남자의 부족한 상호의존성과 헌신이 여자를 긴장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잠시나마 ‘애초에 안 맞았던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여자친구가 계속 확인받으려고 하는 건 자신이 헌신을 덜 보여줬기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아, 물론 여자친구가 원래 그런 스타일일 수도 있지요. 그래도 일단 소년은 자신부터 더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디아블로가 활개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요.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에 이어 ‘로맨틱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2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연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