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함 레이더를 야구에 가져오다, 스탯캐스트

2015.07.29 18:28

올해 5월부터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가 확 달라졌다. 공과 선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방송 중계 영상에 그림을 입혀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탯캐스트(statcast)’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 기술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축구선수들의 움직임을 쫓는 기술이 결합된 것이다. 스탯캐스트는 시청자가 야구를 새롭게 즐기도록 도울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가 효율적으로 전력을 분석해 경기 운영과 선수 육성을 한층 잘 할 수 있게 한다.

 

  - GIB 제공
  GIB 제공

● 새로운 세대의 스피드건

 

공의 속도를 재는 스피드건이 없었던 옛날을 생각해보자.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누군지 알았을까. 현재 사용하는 정확한 스피드건은 미국에서 1950년대 중반에 발명됐다.

 

야구의 역사 중 절반이 넘도록 사람들은 투수가 던지는 공의 빠르기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1900년대 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 월터 존슨의 강속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를 상대했을 때 먼저 팔이 천천히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나를 빠르게 지나쳐갔다. 단지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17승을 거둔 월터 존슨의 별명은 ‘빅 트레인’이었다. 공을 던질 때 기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공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요즘 같으면 시속 160km의 강속구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위의 표현처럼 낭만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숫자로 공 빠르기를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의 구속을 알아내 그날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였는지 평가할 수도 있다.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길고 장황하고 멋있게 설명하는 대신 스피드건에 찍힌 구속을 한 번 말하는 것만으로 그 선수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스피드건을 통해 선수와 감독, 팬은 공의 속도라는 기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탯캐스트도 스피드건처럼 과거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스탯캐스트는 크게 두 가지 장비로 구성된다. 하나는 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레이더 기술인 ‘트랙맨’이고, 다른 하나는 선수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광학 카메라 기술인 ‘트래캡’이다.

일단 오른쪽 QR코드를 스캔해서 스탯캐스트가 어떻게 운용되는지부터 보자.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의 일부다.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역동적인 영상을 볼 수 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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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일 대신 야구공을 추적한다, 트랙맨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서 실시간으로 공의 궤적을 추적한 걸까. 덴마크의 레이더 장비 회사가 개발한 트랙맨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 공을 놓는 위치, 공의 회전, 각도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다. 타격 후엔 타구 속도, 궤적, 타구가 날아간 거리도 측정한다. 데이터 종류는 무려 27가지에 이른다. 트랙맨 기술은 비행기와 미사일을 추적하던 레이더 기술에서 시작됐다.

 

레이더는 전파를 쏘아 물체에 닿은 뒤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레이더와 대상과의 거리를 알아낸다. 이렇게 물체의 방향과 거리를 알면 레이더가 포착한 물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때 전파를 별다른 장치 없이 사방으로 발사해서는 전파가 레이더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전파를 한 방향으로 발사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천문대의 전파망원경처럼 포물선 모양의 둥근 접시를 전파발생기에 달았다. 1905년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브라운은 이를 진일보시켰다.

 

여러 대의 발신기를 가까운 거리에 놓고 서로 다른 위상을 갖는 전파를 쏴 전파를 집중시키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발신기별로 위상을 조금씩 다르게 하면 하나의 레이더처럼 운용할 수 있다(63p 그림 참조). 이 원리로 위상배열 레이더가 탄생했다. 수많은 미사일의 공격을 동시에 방어하는 구축함인 이지스함에서도 위상배열 레이더를 사용하고 있다.

 

트랙맨의 레이더도 같은 원리다. 위상배열 레이더 안에는 무수히 많은 전파발신기들이 들어있고, 각 발신기들이 공을 향해 서로 다른 위상을 가진 전파를 발사해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다. 도플러 효과를 이용하면 공의 속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보통 이런 레이더 기술은 군사용으로 사용되거나, 천문학이나 기상분야에서 많이 이용됐다. 트랙맨은 별이나 미사일, 비행기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이는 지름 약 7cm 야구공의 속도 변화를 알아낸다. 이를 위해 사람이 공을 가릴 때 생기는 노이즈나 자연에서 발생하는 잡음은 레이더로 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제거한다.

 

 

이지스함은 위상배열 레이더를 이용해 비행기와 미사일의 위치를 추적한다 - 미국 해군 제공
이지스함은 위상배열 레이더를 이용해 비행기와 미사일의 위치를 추적한다 - 미국 해군 제공

● 초당 25장의 사진을 분석한다, 트래캡

 

미국의 그래픽회사 카이론헤고가 만든 트래캡의 카메라는 그라운드 위에 있는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초당 25장씩 찍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수비수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타구를 쫓았는지, 주자가 얼마나 빨리 다음 베이스에 도착했는지를 알아낸다. 어찌 보면 기술은 단순하다. 두 대의 카메라로 양쪽 눈이 물체를 쫓듯 사람을 쫓는 것이다.

 

카메라 두 대가 선수의 3차원 좌표를 인식한 뒤 계속 촬영하며 이전 사진과 비교해 이동한 거리와 속도를 파악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초당 25장의 사진을 찍고,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카이론헤고의 그래픽 능력을 통해 원래 중계 영상에 덧씌우면 스탯캐스트의 화려한 영상이 나온다.

 

● ‘정우람 미스터리’를 해결하다

 

스탯캐스트는 팬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만 제공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각 구단들은 선수의 기량을 측정하고 향상시키는 데 스탯캐스트를 활용하고 있다.

 

2013년 메이저리그의 휴스턴 애스트로스팀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그저 그런 성적을 내던 투수 콜린 맥휴를 영입했다. 이 결정은 트랙맨이 제공한 공의 회전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맥휴는 커브 회전수가 다른 투수보다 뛰어났다. 이를 발견한 애스트로스 구단은 그를 영입한 뒤 직구 위주로 던지던 맥휴에게 커브를 더 많이 던질 것을 요구했다. 2013년 26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10.04를 기록했던 맥휴는 이듬해 154.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2.73을 기록하고 11승을 거둬 일약 팀의 중심 투수로 도약했다

 

트래캡도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다. 수비에서도 다이빙 캐치를 하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수비수보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예측해 안정적으로 공을 처리하는 선수를 기용할 수 있다. 가장 발이 빠른 주자를 선택해 대주자로 내보내 승부를 뒤집을 수도 있다. 지금껏 야구 해설자들이 감으로 이야기하던 ‘변화구의 각이 좋다’, ‘투구의 회전이 좋다’, ‘수비 범위가 넓다’는 식의 이야기 대신 구체적 수치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구단이 선수를 영입하고 경기에 선수를 기용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트랙맨 시스템이 도입돼 잠실과 목동 구장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와 같이 야구공의 움직임을 추적해 최대 27가지의 데이터를 만들 수 있지만, 아직은 22개의 데이터만 제공하고 있다.

 

트랙맨을 실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보자. SK 와이번스의 마무리 투수 정우람(오른쪽 사진)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유는 그동안 미스터리였다. 정우람은 올해 6월까지 4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1.88을 기록했다. 삼진을 61개 기록해 9이닝당 삼진을 13.2개나 잡는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정우람은 공이 그렇게 빠른 투수는 아니다. 직구가 시속 140km에 못 미친다.

 

몇몇 기사에서는 공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자가 대응할 시간이 적었다고 분석했다. 공의 회전수가 많아 위력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트랙맨으로 분석해본 결과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심한 변화를 보였다. 정우람의 직구는 타자 입장에서 생각보다 덜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으며, 좌우 변화도 심했다. 타자들은 그의 공에 배트를 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DB 제공
동아DB 제공

● ‘빅데이터’ , 야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데이터의 증가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탯캐스트는 한 게임당 7.3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성한다. 이렇게 큰 빅데이터에서 어떤 정보가 가장 유용한 정보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많은 구단은 앞 다투어 빅데이터 전문가를 고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구단마다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데이터 활용법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의 야구 성적은 데이터를 누가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김종립

전 과학동아 기자.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기자 생활이 끝난 뒤에도 계속 스포츠 과학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 현재는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prome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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