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겔만과 펜타쿼크

2015.07.27 18:16

수학적 쿼크는 영원히 갇혀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그런 특성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실적 입자들을 만들어낸다.
- 머리 겔만

 

필자는 책의 장르 가운데 전기를 즐겨 읽는데 10여 년 전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의 전기 ‘스트레인지 뷰티’를 읽을 때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1929년생인 겔만은 이론입자물리학자로 1964년 쿼크(quark)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해 원자론을 어원(atomoi, 자를 수 없는)의 관점에서 완결지은 사람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제안한 원자는 19세기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에 의해 과학이 됐지만, 1897년 영국의 물리학자 J. J.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면서 잘못된 명명으로 드러났다. 1911년 뉴질랜드 태생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핵의 존재를 입증했고 뒤이어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존재가 확인됐다. 즉 원자는 기본입자가 아니었고 어원에 충실한 진정한 원자는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 분수전하 도입해 도약 이뤄

 

그러나 고에너지를 낼 수 있는 가속기가 개발되면서 입자충돌실험을 통해 새로운 입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벼운 전자는 몰라도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중입자(baryon)나 파이온이나 케이온 같은 중간자(meson)는 기본입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물리학자들이 나타났다. 즉 새로 발견된 중입자와 중간자(이를 합쳐 강입자(hadron)이라고 부른다)를 다 기본입자로 간주한다면 세상이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뉴요커인 겔만은 영재로 불과 열다섯 살에 예일대에 입학했고 스물두 살 때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칼텍 물리학과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당시 스타물리학자로 떠오르고 있던 11세 연상의 리처드 파인만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최고의 물리학자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 서로 으르렁거렸다.

 

겔만은 동료 물리학자들도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할 통찰력과 수학기법을 동원해 놀라운 결과들은 내놓았는데 기묘도와 팔중도, 쿼크가 그의 3대 업적으로 꼽힌다. 기묘도(strangeness)는 다양한 입자들을 분류하기 위해 제안한 양자수(quantum number)로, 양성자나 중성자처럼 기묘하지 않은 입자는 기묘도가 0이고 시그마나 에타 같은 낯선 입자는 기묘도가 -1 또는 -2다.

 

펜타쿼크 모형. 중입자(커다란 공) 내부에 쿼크(작은 공) 다섯 개가 들어 있고 각각은 글루온(흰색 선)으로 묶여있다. - CERN 제공
펜타쿼크 모형. 중입자(커다란 공) 내부에 쿼크(작은 공) 다섯 개가 들어 있고 각각은 글루온(흰색 선)으로 묶여있다. - CERN 제공

1961년 겔만이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유발 네만과 함께 제안한 팔중도(eightfold way)는 다양한 중입자와 중간자가 전하와 기묘도를 각각 축으로 한 좌표에서 여덟 곳의 위치에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이론으로, 수학의 군론(group theory)을 도입해 생각해냈다. 겔만은 고도의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불교용어(국내 물리학계에서는 불교용어인 팔정도로 번역하지 않았다)를 가져다쓰는 재치를 발휘했다.

 

팔중도를 연구하던 겔만은 강입자가 기본입자가 아니라 다른 기본입자로 이뤄진 복합입자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기상천외한 이론을 만들었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새로 도입된 기본입자 즉 쿼크(quark)가 분수전하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전자가 -1, 양성자가 +1, 중성자는 0이라는 정수전하의 대전제가 무너져야 한다는 말이다. 즉 쿼크의 전하는 +2/3 또는 -1/3이 돼야 하며 반물질인 반쿼크의 전하는 -2/3 또는 +1/3이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가설을 수용하기만 하면 물리학자들도 ‘입자동물원’이라고 개탄할 지경인 수많은 강입자들이 쿼크 세 가지(업쿼크, 다운쿼크, 스트레인지쿼크)의 조합으로 멋지게 설명된다. 즉 양성자는 전하가 +2/3인 업쿼크 두 개와 전하가 -1/3다운쿼크 하나로, 중성자는 다운쿼크  두 개와 업쿼크 하나로 이뤄져 있다. 

 

● 양자색역학으로 이어져

 

1964년 쿼크의 개념을 제안한 이론입자물리학자 머리 겔만. 올해 87세인 겔만은 물리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 칼텍 제공
1964년 쿼크의 개념을 제안한 이론입자물리학자 머리 겔만. 올해 87세인 겔만은 물리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 칼텍 제공

겔만은 자신의 멋진 아이디어를 ‘피지컬 리뷰 레터스’ 같은 일급저널에 싣고 싶었지만 워낙 과격한 주장이라 반발을 살 것이 뻔했으므로 간단히 정리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간행하는 ‘피직스 레터스’에 보냈다. 1964년 2월 1일자에 간행된 불과 두 쪽짜리 논문의 제목은 ‘중입자와 중간자의 도식적 모형’으로, 겔만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물리적 실체가 아닌 수학적 특성을 다루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상대로 기존 학계의 반응은 냉담해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인 슈윙거는 한 논문에서 “겔만은 분수전하를 가진 입자의 존재를 가정했는데, 그것들은 오직 헐떡거리는 숨소리나 혀차는 소리 또는 새들이 까악까악 대거나 ‘깩깩quark’거리는 소리 따위로만 검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라고 쓰면서 비아냥거렸다. 파인만 역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몇몇 물리학자들은 쿼크 모형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겔만과 함께 이론을 발전시켜 1970년대 초 마침내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amics, QCD)’으로 결실을 거뒀다. 양자색역학을 간단히 말하면 쿼크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강력)이 글루온이라는 매개입자에 의해 전달된다고 설명하는 양자장이론이다. 양자색역학의 설명은 너무 기발해서 필자 같은 문외한도 내용을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양자색역학에 따르면 쿼크는 전기전하 외에도 색전하를 띠고 있다. 색전하는 세 가지로 빛의 삼원색을 따라 파랑, 빨강, 녹색으로 표시한다. 한편 반쿼크는 반색전하인 반파랑(보색인 노랑으로 표현), 반빨강(청록), 반녹색(분홍) 가운데 하나다. 양자색역학의 중요한 전제조건은 ‘색 가둠(color confinement)’이다. 즉 쿼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색전하가 중성인 복합입자를 만든다는 것.

 

따라서 양성자 같은 중입자를 이루는 쿼크 세 개(업쿼크 둘, 다운쿼크 하나)는 색전하가 각각 녹색, 파랑, 빨강이다. 한편 쿼크 두 개로 이뤄진 중간자의 경우 세 가지 색에서 어떤 조합으로 둘을 골라도 백색이 나오지 않으므로 쿼크와 반색전하를 지닌 반쿼크의 쌍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따지면 쿼크 네 개(쿼크 두 개와 각각의 반색전하 반쿼크 두 개)로 이뤄진 입자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 쿼크 다섯 개(서로 색전하가 다른 쿼크 세 개에 또 다른 쿼크와 반색전하를 띤 반쿼크)로 이뤄진 입자도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양자색역학은 이런 입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겔만은 1964년 논문에서 이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입자는 (q q q), (q q q q q) 같은 쿼크의 조합으로부터 만들어지고(원 논문에서는 글자 위에 선을 그어 반쿼크를 표시했다), 중간자는 (q q), (q q q q) 같은 쿼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 겔만의 예측 50년 만에 확증돼

 

지난 7월 14일 CERN의 LHCb실험그룹은 쿼크 다섯 개로 이뤄진 입자인 펜타쿼크(pentaquark)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겔만의 논문이 나온 뒤 무려 51년 만에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원래 LHCb실험은 반물질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프로젝트다. 즉 에너지로부터 물질과 반물질 쌍이 생겼는데 어떻게 물질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세상이 나올 수 있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연구자들은 거대강입자가속기(LHC)로 입자를 가속시킨 뒤 충돌시켜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데 충돌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펜타쿼크의 존재를 확인하는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고에너지 양성자를 충돌시킬 때 만들어지는 바텀람다중입자(바텀쿼크, 업쿼크, 다운쿼크(b u d)로 이뤄져있다)가 제이/프사이(J/ψ)중간자와 케이온(K중간자), 양성자로 붕괴하는 경로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인 입자로 볼 수 있는 펜타쿼크 상태를 거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질량이 4.38기가전자볼트(양성자 질량의 4.67배)와 4.45기가전자볼트(4.74배)인 입자가 존재하는데, 이를 쿼크의 조합으로 보면 (u c c u d) 다섯 개로 이뤄져 있다는 것(c는 참쿼크다). 잠시 존재하던 펜타쿼크는 케이온(c c), 양성자(u u d)로 붕괴한다. 지금으로서는 펜타쿼크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연구자들은 두 가지 모형을 제시했다.

 

펜타쿼크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두 가지 모형이 있다. 첫 번째 모형은 쿼크 다섯 개가 글루온으로 묶여 있는 상태(왼쪽)로 진정한 중입자로 볼 수 있다. 다른 모형은 중간자와 중입자가 일종의 분자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오른쪽).  - 위키피디아 제공
펜타쿼크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두 가지 모형이 있다. 첫 번째 모형은 쿼크 다섯 개가 글루온으로 묶여 있는 상태(왼쪽)로 진정한 중입자로 볼 수 있다. 다른 모형은 중간자와 중입자가 일종의 분자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오른쪽).  - 위키피디아 제공

하나는 쿼크 다섯 개가 서로 글루온으로 연결돼 ‘쿼크 다섯 개로 된 백’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 진정한 중입자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중간자-중입자 분자’ 모형으로 쿼크와 반쿼크로 이뤄진 중간자와 쿼크 세 개로 이뤄진 중입자가 서로 붙어 있는 상태다. 마치 원자 두 개가 모여 분자를 이룬 것과 비슷한데, ‘분자결합’의 성격에 따라 펜타쿼크라고 볼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펜타쿼크 실험의 확실성이 4.38기가볼트 입자의 경우 9시그마, 4.45기가전자볼트의 경우 12시그마에 이른다고 밝혔다. 시그마(σ)는 표준편차를 뜻하는데, 앞의 숫자가 커질수록 확실성이 크다는 뜻이다. 2012년 힉스입자의 발견실험은 5.9σ였다.

 

한편 쿼크 두 개와 반쿼크 두 개로 이뤄진 테트라쿼크(tetraquark)의 존재는 2013년 발표됐다. 중국 베이징전자양전자충돌기의 BESⅢ연구그룹과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의 벨Belle연구그룹은 각각 전자 양전자 충돌실험에서 생성된 입자의 붕괴 과정을 분석한 결과 쿼크 네 개(정확히는 쿼크 두 개와 반쿼크 두 개)로 이뤄진 ‘Zc(3900)’이라는 입자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피지컬리뷰레터스’ 2013년 6월호에 나란히 발표했다.

 

한편 벨연구그룹은 지난 2007년 Z(4430)이라는 테트라쿼크를 관찰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증거가 약해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LHCb가 Z(4430)이 진짜 테트라쿼크가 맞을 것이라는 분석결과(13.9σ 이상 확률)를 발표했다. Z(4430)은 참쿼크와 반참쿼크, 다운쿼크, 반업쿼크(c c d u)로 이뤄져 있다.

 

● 공동 제안자는 잊혀지고

 

‘스트레인지 뷰티’는 11장에서 쿼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장의 제목이 ‘에이스와 쿼크’다. 사실 쿼크의 개념은 물리학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떠올렸는데, 겔만과 조지 츠바이크(George Zweig)다. 1937년 생인 츠바이크는 칼텍에서 박사과정을 하며 겔만과 팔중도에 대해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원래 실험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이론에 끌린 츠바이크는 겔만을 찾아갔지만 잠시 학교를 떠날 예정이었던 겔만을 그를 파인만에게 소개했다.

 

파인만을 지도교수로 학위를 받은 츠바이크는 CERN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파이-중간자의 특이한 붕괴패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팔중도를 만족시키려면 분수전하를 도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츠바이크는 분수전하를 지닌 입자를 ‘에이스(ace)’라고 불렀고 세 종류 에이스를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표기했는데 각각 업, 다운, 스트레인지쿼크에 해당한다.

 

1964년 초 논문을 준비하던 츠바이크는 겔만의 두 쪽짜리 논문을 보고 경악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80쪽에 이르는 논문을 완성했다. CERN의 책임자는 겔만의 논문이 실린 CERN의 저널 ‘피직스레터스’에 내라고 제안했지만, 야심만만했던 츠바이크는 최고 저널인 ‘피지컬리뷰’에 보냈다. 선배 물리학자들의 우려대로 논문은 심사위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고 싸움에 지친 츠바이크는 논문 게재를 포기했다. 결국 논문은 16년이 지난 1980년 발간된 쿼크회고자료집에 실렸다.

 

쿼크를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수학적 기법이라고 생각했던 겔만과는 달리 츠바이크는 처음부터 쿼크가 물리적 실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겔만은 쿼크에 대해 “예를 들어 전자보다는 덜 실체적이지만 단순한 수학적 암기법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실체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호한 태도에 대해 한 물리학자는 “만일 쿼크가 발견되지 않으면 내(겔만)가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반대로 쿼크가 발견된다면 내가 그것을 맨 처음 생각해냈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1964년 겔만과 거의 동시에 쿼크의 개념을 제안한 조지 츠바이크. 츠바이크는 처음부터 쿼크가 물리적 실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겔만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츠바이크는 올해 사쿠라이상을 수상했다 - 미국물리학회 제공 제공
1964년 겔만과 거의 동시에 쿼크의 개념을 제안한 조지 츠바이크. 츠바이크는 처음부터 쿼크가 물리적 실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겔만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츠바이크는 올해 사쿠라이상을 수상했다. - 미국물리학회 제공

반면 츠바이크는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것처럼 강입자도 작고 단단한 에이스(쿼크)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겔만은 “멍청이들을 위한 콘크리트 벽돌 모델”이라고 깎아내렸다. 츠바이크는 실력을 인정받아 칼텍의 교수가 됐지만 지도교수였던 파인만은 여전히 에이스(쿼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쿼크의 존재를 지지하는 이론과 실험결과가 이어졌고(아쉽게도 에이스란 용어는 쿼크에 밀렸다) 1969년 겔만은 단독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팔중도가 주된 업적이었지만 쿼크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양자색역학이 확립될 무렵 이제는 독실한 ‘쿼크 교도’가 된 파인만은 역사적인 업적을 낸 제자 츠바이크가 노벨상을 받지 못한 건 부당하다고 느끼고 1977년 겔만과 츠바이크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뒤 츠바이크는 신경생물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올해 78세인 츠바이크는 2015년 사쿠라이상을 단독수상했다. 1985년 제정된 사쿠라이상은 이론입자물리학에 공헌한 물리학자에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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