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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 과학 용어 비교..."남북 과학 협력하려면 말부터 합쳐야"

2015년 07월 28일 09:27

'신상선에 병이 생기면 한선에서 땀이 많이 난다’ , ‘회리치는 물의 에네르기는 코시누스 모양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북한의 과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문장을 가상한 것이다. 보다시피 웬만큼 과학을 안다는 사람에게도 ‘외계어’ 수준이다. 남북이 분단 70년 만에 이렇게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

 

이미지 확대하기남북이 원활한 교류와 협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용어부터 통일시켜야 한다. 사진은 지난해 2월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2차 고위급 회담 장면 - 동아DB 제공
남북이 원활한 교류와 협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용어부터 통일시켜야 한다. 사진은 지난해 2월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2차 고위급 회담 장면 - 동아DB 제공

20여 년 전, 남북고위급 회담 당시 남한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남한 측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사항이 있었다. ‘물코끼리벌레(Bagous kagiash)’라는 해충을 박멸할 살충제를 지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남한은 이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물코끼리 벌레’가 어떤 생물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코끼리벌레가 남한에서는 ‘물바구미’라고 부르는, 일본에서 들어온 외래해충이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수년 뒤에야 밝혀졌다.

 

남북 간 전문용어의 차이는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특히 분단된 이후에 발전한 분야의 새로운 현상, 새로 발견된 생물의 이름은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면, 곤충을 분류하는 402개 과(科) 중에서 316개 과의 이름이 다를 정도다.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를 뿐 아니라 대화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과거에 북한 아나운서가 축구경기를 중계하면서 ‘코너킥’을 ‘모서리 차기’라고 말한 것이 한때 유머의 소재로 쓰인 적이 있다. 하지만 전문 학술용어의 차이는 웃고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현재 남북한에서는 수과학, 공학, 농수산학, 의약학 등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30만 개가 넘는 고유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전문 과학용어는 법령이나 국가표준(KS), 각종 기술 표준에 적용돼 학술, 통신, 보건, 안전, 환경 등 넓은 분야에서 국민 생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과학 용어 어떻게 다를까

이미지 확대하기전문 용어의 차이가 오랫동안 굳어지면 남북 국민들의 생활법령, 기술표준 등을 통일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동아DB 제공
전문 용어의 차이가 오랫동안 굳어지면 남북 국민들의 생활법령, 기술표준 등을 통일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동아DB 제공

 

남북한의 용어 차이는 크게 5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 그나마 차이가 적은 것이 두음법칙에 따른 용어의 차이다. 북한에서는 사이시옷을 사용하지 않고 두음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즉 ‘ㄹ’로 시작하는 글자도 단어 맨 앞에 올 수 있다. 유산(流産)을 ‘류산’, 난소를 ‘란소’, 황을 ‘류황’, 임업을 ‘림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접해온 북한의 일반 언어와 비교해 크게 생소하지는 않다.

 

문제는 외래어를 우리 말로 표기할 때다. 과학 용어의 상당 부분은 외래어에서 유래했다. 남한은 국제 추세에 맞춰 외래어의 미국식(영어) 발음을 충실하게 소리로 옮겨 사용한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하면서, 독일어와 일본어 용어도 자주 이용한다.

 

칼로리를 ‘카로리’, 코사인을 ‘코시누스’, 에너지를 ‘에네르기’, 뉴런을 ‘노이론’이라고 하는 식이다. 참고로 외래어를 소리 나는 대로 음차하는 경향은 한중일 3국 가운데 일본이 가장 심하고 중국이 가장 덜하다. 한국은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의 과학 용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낯선 것은 어원이 외래어인 조선어 용어들이다. 예를 들어 다이오드(diode)를 ‘이극소자’로, 드라이아이스(dry ice)를 ‘고체탄산’으로, 임피던스(impedance)를 ‘완전저항’으로 읽고 쓴다. 과거에는 북한이 사용하는 조선어를 보고 북한이 남한보다 우리말을 더 많이 발전시켰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 북한의 조선어는 한자로 이뤄진 게 매우 많다. 북한은 한자어 표기를 원칙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외래어를 조선어로 바꿀 경우 오히려 뜻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그밖에도 뜻은 같은데 다른 한자를 써서 헷갈리는 용어들이 있다. 원래부터 한자어에서 비롯된 용어는 남북한 모두 한자 그대로 썼다. 그러나 떨어져 지낸 70년 동안 여기서도 차이가 벌어졌다. 남한에서는 비정상(abnormal)이라고 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이상’이라고 하고, 뇌전증(간질)을 ‘전간’, 태양중심운동을 ‘일심’, 별자리표를 ‘성도집’이라고 부른다.

 

한자를 잘 알고 그 뜻을 깊게 되새기지 않으면 곧바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다. 한글 용어와 조선어 용어자체의 차이도 있다. 앞서 말한 ‘코너킥-모서리 차기’ 비유와 유사한데 남한에서 상향식 해석이란 말을 북한에서는 ‘웃방향 해석’, 돌연변이를 ‘갑작변이’, 광전류를 ‘빛전류’라고 쓴다.

 

 

이미지 확대하기북한 정부는 과학기술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래어로 된 어려운 학술 용어를 고유어로 전환하는 어문정책을 펼쳤다. 사진은 북한 농업과학원 농업생물학연구소의 모습. - 동아DB 제공
북한 정부는 과학기술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래어로 된 어려운 학술 용어를 고유어로 전환하는 어문정책을 펼쳤다. 사진은 북한 농업과학원 농업생물학연구소의 모습. - 동아DB 제공

● 왜 달라졌을까

 

일제 강점기 시대 한국(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는 과학 용어는 대부분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 일본식 전문 용어는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는 이유로 광복 이후에도 선택이나 심의 과정 없이 그대로 조선의 전문용어로 채택됐다. 당시 우리나라 지식계급 대부분이 한자에 대한 소양이 풍부했던 것도 일본어 한자 용어가 우리말 전문 용어로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1945년 남북이 갈라지고 195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북은 각기 다른 말 다듬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본의 잔재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남한은 민간 주도로, 북한은 정부 주도로 일본식 전문 용어를 고유어로 다듬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이때 남한은 미국의 언어(영어)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국제적인 추세를 따랐다.

 

반면 북한에서는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이전에 사용하던 일본어와 독일어까지도 모두 영어식으로 전환해서 사용하게 됐고, 북한에서는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면서 독일어, 일본어 등 외래어 유래원에 기반한 조선어를 표기하게 됐다.

 

남북한이 통일 전후로 원활한 교류와 협력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용어부터 통일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따라서 현재 북한 내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남북한의 용어 차이를 지속적으로 수집․파악하고, 전문 분야 간의 상이한 용어를 표준화하는 전문 기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이 통일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 사실이다. 한 번 벌어진 남북 간의 용어 간극은,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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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어문정책 변천사

 

- 제1기(1945~1958년)

 

글에서 일본어의 요소를 제거하고, 동시에 인민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시기다. 신문, 잡지, 단행본 등 출판물의 일본식 한자 표기를 일체 금지했다. 수십 년 동안 병행해 사용해왔던 한자 표기를 단기간에 없애려다보니 문장의 전달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 제2기(1958~1983년)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지시 아래 문화어 운동이 전개되면서 어휘와 표기의 규범이 본격적으로 정립되는 시기다. 김 전 주석은 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어려운 외래어로 돼 있는 학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자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최소한도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로 1968년 한자 교육이 부활했다(1972년도 대학교 교재를 보면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중략) 앞으로 조국이 통일되면 남반부에서 발행된 신문, 잡지들을 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김 전 주석의 교시가 실려 있다).

 

또 이 시기에는 교육성 아래에 ‘학술용어사정위원회’가 구성돼 여러 가지 학술 용어를 통일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위원회는 1961년부터 단계별로 10만 여 개의 학술 용어와 일반어를 다듬었고, 이후 토의를 거쳐 1986년에 2만5000개 정도의 용어를 최종 확정했다. ‘이미 우리말에 녹아있는 한자어는 그대로 쓴다’, ‘미터와 같은 국제 표준이나 우리말에 없는 용어는 외래어 그대로 쓴다’ 등의 사정 원칙도 이 시기에 확립됐다.

 

- 제3기(1984년~현재)

 

제2기를 거치며 학술 용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이 부작용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한자 사용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그 결과물이 북한사전편찬작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말대사전 제2판(사회과학원, 1991)’이다. 조선말대사전에는 지난 30년 동안 일제식 한자를 다듬은 말과 함께, 다듬기 전 일제시대에 사용하던 일본식 한자 용어도 함께 표기됐다.

 

또 일반 한자어는 고유어로 다듬되, 인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말은 다듬지 않도록 했다. 학술 용어의 경우에는 전문성이 강할수록 한자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한 개가 결정되면 관련된 접두사와 결합형 용어도 통일하도록 했다. 이런 말 다듬기 노력은 오히려 외래어와 고유어가 공존하는 북한의 이중어휘체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북한은 지금

 

분단 70년 동안 달라진 것은 과학 용어뿐만이 아니다. 남북한은 그동안 각기 다른 과학기술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 과학기술 역량이나 강점 분야, 과학 인력 인프라 면에서 큰 차이가 벌어졌다. 북한 과학계의 현 주소를 짚어보는 것은 통일 이후 북한과 새로운 과학기술 협력관계를 맺기 위한 든든한 준비 과정이 될 것이다

 

- 이공계 대학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3개의 종합대학이 있고, 기계, 의학, 농업 등 특수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기타 대학들이 있다. 사립대학은 전무하다. 교수임용과 학사관리, 학생입학은 대학당위원회가 총괄하고 있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않고 국가 지원만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 경제가 피폐해지 면서 이런 지원이 크게 줄었다.

 

- 대학 생활

 

학점제가 아닌, 일괄 총점제로 진급한다. 일단 학부가 정해지면 본인 선택이 아니라 대학이 정한 과목들을 수강하게 된다(2009년경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중앙대학 몇 곳에서만 시범적으로 학생 선택형 교과목을 설치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학급(소대)에 소속돼 단체로 수업을 듣고 군대와 같은 규율을 따른다. 사상 교육을 우선적으로 받고, 해당 전공분야의 과학 지식도 배운다.

 

- 졸업과 취업

 

졸업을 위해 남한과 마찬가지로 졸업논문을 쓴다. 1983년 김일성 전 국가 주석이 어학실력을 강조한 이후부터 영어로 된 졸업 논문도 늘었다. 일단 졸업만 하면 취업률은 거의 100%다. 과학기술인력 양성 규모를 당에서 직접 통제하기 때문이다. 당의 간부과에서 졸업생들의 직업을 직접 정해준다. 본인이 일하고 싶은 분야나 직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이미지 확대하기북한의 상용 기술은 국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무인기나 사이버공격 등 일부 지능형 무기 기술에선 예상 밖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 동아DB 제공
북한의 상용 기술은 국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무인기나 사이버공격 등 일부 지능형 무기 기술에선 예상 밖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 동아DB 제공

- 과학기술 조직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기술개발, 산업화 등과 관련된 정책적인 부분을 총괄하고 국가과학원과 중앙급 대학의 연구소가 실질적인 연구를 한다(그밖에도 국방 분야를 지원하는 국방과학원과 특수 기관을 지원하는 기초과학원 등이 있다).

 

국가과학원은 11개 분원, 130개 연구소로 이뤄진 국가 최고의 연구 조직으로 연구원 수만 3만 명에 이른다.

 

- 과학기술자의 위상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보수와 생계형편은 매우 열악하다. 대학교수의 월급이 시장에서 쌀 1kg 가격인 5000원도 채 안 된다(2013년 기준). 때문에 여러 가지 개인적인 부업을 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당과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버틴다). 그나마 김정은 시대에 들어 과학기술정책이 바뀌면서 과학자 사기 진작 차원의 주택지구나 생활 편의시설 등이 많이 생겨났다.

 

- 과학기술 역량

 

일부 국방 기술, 기초과학 분야를 제외하고는 남한에 비해 10년 정도 뒤쳐져 있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연구비가 불안정하게 지급되고 설비가 대부분 노화돼 있다. 또 보안 통제 관리에 따라 인터넷 사용이 제한돼 해외 과학기술 성과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나마 최근 ‘대형 설비건설’과 ‘대형 중화학공업 복구’ 등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이 시행돼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주력 연구 분야

 

무인기, 해킹, 유도탄과 같은 지능형 무기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2012년 은하 3호를 발사해 위성인 광명성 3호를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한 이후로 외국 인공위성의 상용 발사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최근 평양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건설했고 위성 조립 점검동의 조립탑도 10m 가량 높였다.

 

IT 분야 역시 200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인재를 키우고 있다. 외화벌이 목적으로 많은 북한의 IT 기술자들이 해외로 진출한 상태다. 정해진 조건에 맞게 단기간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술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경생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명예교수. 서울대 농생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곤충학을 전공한 뒤 1982년부터 서울대 농생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7~2010년 중국 연변대 농학원 명예교수, 2002~2004년 북한농업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남북한 농업용어 비교집(2003)’, 보고서 ‘통일 한반도의 과학기술용어 표준화’ 등을 펴냈다. ksb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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