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차, 무인로봇, 무인 선박…기술경진대회를 생각하다

2015.06.14 18:00
“학생들과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다 훨씬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인기기 연구가 특기인 KAIST 심현철 교수 연구팀은 여름 무렵엔 주말에 쉬어 본 일이 거의 없다. 현대자동차가 해마다 주최하는 ‘2014 자율주행자동차 경진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대회에선 우승까지 내다보고 수월하게 본선까지 진출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아깝게 순위권에 들질 못했다.
 
1위와 2위는 한양대와 국민대에 3위 자리는 계명대에 각각 돌아갔다. 올해로 13회 째를 맞는 이 대회는 국내 최고의 무인자동차 기술진이 출전하는 자리인 만큼 해마다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기술경진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팀은 즉시 여러 자동차업체의 주목을 받는다. 연구팀이 독보적인 기술이라도 갖고 있다면 큰 돈을 벌 기회로도 이어진다. 팀원들의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각종 신기술 아이디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최근 공학계에 각종 경진대회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이유다.
 
● 美서 시작된 경진대회 문화 국내서도 인기
 
①2014년 열린 샘플채취로봇시합에서 백주년도전상을 수상한 마운테이너스 팀 ②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온 워털루대 로보틱스 팀원들의 모습. - 미항공우주국(NASA) 제공
①2014년 열린 샘플채취로봇시합에서 백주년도전상을 수상한 마운테이너스 팀 ②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온 워털루대 로보틱스 팀원들의 모습. - 미항공우주국(NASA) 제공
이런 공학 경진대회는 문화는 미국에서 건너왔다. 그 중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가장 유명하다.
 
높은 상금을 걸고, 예선과정에서 선발된 팀에는 연구비까지 지원한다. DARPA가 2006년 개최한 ‘그랜드챌린지’와 2007년 개최한 ‘어반챌린지’라는 대회는 지금까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무인자동차 실용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랜드챌린지는 무인자동차로 비포장도로 주행을 겨루는 시합이며, 어반챌린지는 시내 한 복판을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대회다. 
 
DARPA는 국방기술 개발 부서로, 무인 군용수송차량 기술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회 전체로 긍정적인 효과는 파급됐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은 무인차 상용화의 효시로 불리는 구글에 관련 기술을 이전했다. 최근에는 무인택시 개발에 나선 우버 연구소 측에도 협력하고 있다.
 
이달 6일 우리나라의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팀이 로봇 ‘휴보’를 들고 나가 우승을 일궈내 화제가 됐던 ‘DRC(DARPA Robotics Challenge)’ 역시 DARPA에서 개최했다.
 
로봇이 사람 대신 가상의 원전사고 현장에 들어가 복구 작업을 벌이는 대회로, 2012년 기획을 시작해 2013년 12월, 올해 6월 두 번의 대회를 치러내는 사이 인간형 로봇기술 혁신의 진보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팀이 우승을 이뤄낸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DARPA의 기획력과 기술개발 의지가 깔려 있다.
 
KAIST 해양시스템공학부 김진환 교수팀은 자체 개발한 선박용 ‘소프트웨어 통합시스템’이 지난해 10월 20∼26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서 미국 해군연구개발국(ONR) 개최로 열린 첫 ‘자율무인선 경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KT는 얼마 전 ‘드론’ 경진대회를 새롭게 런칭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회를 통해 드론을 재난구조에 동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엔진을 사용하지 않는 ‘인간동력항공기’ 경진대회를 시행하고 있다.
 
● 첨단기술 개발 촉진 호평 속 ‘선진국 기술독식’ 우려도
 
이런 첨단 기술경진대회에 대해선 참가팀들의 기술혁신을 이끌어내는 자리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각종 첨단기술들을 연구할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매년 가상의 달 표면에서 자원 채취를 겨루는 ‘로봇채굴대회(RMC; Robotic Mining Competition)’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로 6번째를  맞이한 이 대회는 2013년까지 ‘달탐사 로봇채굴대회(Lunabotics Mining Competition)’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가상의 달 표면에 로봇을 투입해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흙을 실어 오느냐를 겨루는 경기다.
 
RMC와 달리 넓은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광물 샘플을 캐오느냐를 겨루는 대회도 있다. 지구 이외의 행성에서 자율주행능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장애물과 만나도 거침없이 넘어설 수 있는 구조, 목표물만 정해주면 로봇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제어기술 등이 관건이다.
 
이 역시 NASA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샘플채취로봇시합(RSS; Sample Return Robot Challenge)’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총 상금은 150만 달러(약 15억 원)에 이른다. 이런 대회는 전 세계 대학, 공공기관 연구진이 출전하는 만큼 대회에서 소개된 기술이 NASA의 우주개척에 밑거름이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기술경진대회가 자본과 기초과학이 탄탄한 선진국의 기술독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신력 있는 대회가 되기 위해서는 높은 상금과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기관의 인증이 필요한데, 개최 기관은 전 세계 연구진의 역량을 대회 한 번으로 흡수하게 돼 기술의 선진국 쏠림을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DRC 대회 우승을 이끈 KAIST 휴머노이드 로봇연구센터의 오준호 센터장(기계공학과 교수)은 “이번 DRC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우리가 꼭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며 “대회에서 볼 수 있는 아이디어는 모두가 공유하는 만큼 전 세계적인 기술 향상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 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 DRC에서 우승한 팀 KAIST 멤버들의 시상식 모습.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 팀원들과 로봇벤처 ’레인보우’ 직원들로 구성됐다. - 퍼모나=전승민 기자 제공
세계 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 DRC에서 우승한 팀 KAIST 멤버들의 시상식 모습.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 팀원들과 로봇벤처 ‘레인보우’ 직원들로 구성됐다. - 퍼모나=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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