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광에서 발명 난다

2013.05.22 11:31


광이 사라졌다. 곡식이나 연탄을 쌓아두고 잡동사니를 보관하던 공간이 없어졌다. 곡간에 쌓여있던 쌀은 뒤주로, 쌀통으로 옮아갔다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냉장고로 들어갔다가 이젠 즉석밥(햇반)의 형태로도 저장된다. 헛간에 들여놓았던 고체에너지(장작, 연탄)는 액체(석유)의 형태로 통에 보관되었다가 기체(LNG)나 전기에너지의 형태로 공급된다. 한때 살림살이에 기여했던 잡동사니는 통째로 고물상에 넘어가거나 분리수거로 ‘즉결처분’된다. 주거 양식이 아파트 위주로 바뀌면서 ‘광’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졌다.

발명은 주로 광에서 이루어진다. 에디슨이 닭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품은 곳도 광이었고, 친구에게 먹인 ‘하늘을 나는’ 알약을 제조한 곳도 광이었다. 에디슨은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지하에 광을 만들어 과학책에 나오는 실험을 직접 해보고, 차장에게 간청하여 달리는 기차간에 얻은 광에서 실험을 하다 불을 내기도 했다.

광에서 회사를 설립한 대표적인 사례는 HP다.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 팰러앨토의 한 차고에서 HP를 세웠다. 이 허름한 차고가 실리콘밸리의 발상지로 꼽힌다. 스티브 잡스는 중고차를 수리하는 아버지의 차고에서 기계장치를 만났고, 거기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창업 신화를 시작했다. 제프 베조스는 동업자 2명과 컴퓨터 1대로 자신의 차고에서 아마존을 설립했고, 스티브 천은 동업자인 채드 헐리의 차고에서 유튜브를 기획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빌 게이츠는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뉴멕시코의 허름한 모텔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그래서일까? 빌 게이츠는 차고를 두려워했다. ‘컴퓨터의 황제’로 불렸던 그는 1998년 한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차고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그 두려움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바로 그해 래리 페이지가 동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여자 친구네 차고에서 구글을 창업했다.

빌 게이츠가 두려워하던 차고는 우리나라에 없다. 한국에서 차고는 자동차를 세워두는 주차공간일 뿐이다. 아무리 간단한 조치라도 자동차를 정비하고 수리하는 것은 운전자가 아니라 정비사의 몫이다. 아버지는 전등조차 갈아 끼울 줄 모르고, 어머니는 모든 걸 ‘전화로’ 수리한다. 아파트에서는 발명할 것이 없다. 잡동사니도 없고 공구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무엇을 발명할 수 있을까? 발명키트를 사서 설명서를 보며 조립하는 게 발명일까?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2010년부터 중고등학교의 광(기술실)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김용근 원장은 기술실을 둔 중고등학교를 지원하는 기술공작실 사업을 추진했다. 집에서 광이 사라졌으니 학교에 있는 광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도 최근 서울 강남의 가장 비싼 땅에 광을 설치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은 뒤 혁신동력을 잃는 애플을 보고, 최지성 부회장이 실리콘밸리식 혁신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본사 지하에 ‘C(Creative)-Lab’을 마련한 것이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광이 없어졌으니 인심도 사라진 걸까? 이젠 ‘광에서 발명 난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광이 있어야 발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벼룩시장에서 벼룩이 튀어나오고, 도깨비시장에서 도깨비가 나타나야 발명을 할 수 있다. 발명은 원래 그런 것이다. 잡동사니를 가지고 또 다른 잡동사니를 수도 없이 만든 끝에 비로소 괜찮은 잡동사니를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은 어디인가? 미래의 창조경제를 주도할 국가 차원의 혁신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정보기술 혁명을 주도하는 광의 역할을 했던 용산전자상가는 점점 비어 가고 있는데.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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