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렙타일

2015.05.28 18:00
[과학동아 6월호] 파충류의 속사정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화려한 특수능력을 이용해 시원한 액션을 선보이는 초인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이에 마음이 홀린 관객들은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다.

 

혹시 ‘현실은 왜 영화처럼 재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영화 속 영웅들만큼이나 멋진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파충류에 주목하자.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못지않은 특수능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더미)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정재환) 제공

백만장자 플레이보이인 토니 스타크는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어 입는다. 비록 돈이 많지는 않지만(이건 정말 동물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대신 아이언맨 슈트만큼 정교하고 단단한 갑옷을 입고 다니는 파충류가 있다. 바로 거북이다.

 

오늘날 살아있는 거북은 총 327종으로 모두 등과 옆구리, 그리고 배를 뒤덮는 단단한 갑피를 가진다. 이 갑피는 ‘슈퍼마리오’ 등의 게임에서처럼 몸에서 분리 할 수 없다. 척추뼈와 갈비뼈, 그리고 쇄골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융합된 뼈 위로 피부가 변형된 각질의 판이 붙어 있다. 우리와 같은 포유류가 가지고 있는 등이나 배의 근육들은 모두 퇴화했다.

 

장수거북은 단단한 갑옷만이 아니라 정교한 밀폐 구조를 갖고 있다. 더구나 수중에서는 몹시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니, 만일 파충류로 ‘어벤져스’ 영화를 찍는다면 섭외 1순위겠다. 다만 생김새는 토니 스타크랑은 좀 거리가 멀어 보인다. - 정재환 제공
장수거북은 단단한 갑옷만이 아니라 정교한 밀폐 구조를 갖고 있다. 더구나 수중에서는 몹시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니, 만일 파충류로 ‘어벤져스’ 영화를 찍는다면 섭외 1순위겠다. 다만 생김새는 토니 스타크랑은 좀 거리가 멀어 보인다. - 정재환 제공

● [아이언맨] 첨단 갑옷을 입은 장수거북


천적을 만난 거북은 갑피의 앞과 뒤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머리와 다리, 그리고 꼬리를 집어넣어 몸을 숨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손이 발달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천적은 거북의 뚫려있는 갑피 구멍을 통해 거북의 살을 꺼내 먹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일부 거북은 갑피의 일부를 변형시켜 구멍마저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했다.

 

늪거북류의 일종인 상자거북은 겉모습은 다른 거북들과 별 다를 게 없지만, 복갑(배 껍질) 중앙에 마치 경첩과 같은 구조가 있어 복갑의 앞뒤를 여닫이문처럼 여닫는다. 이렇게 갑피를 완전히 봉쇄시킬 수 있다 보니, 제 아무리 영리하고 재주 좋은 너구리와 여우도 상자거북을 꺼내먹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속 아이언맨 슈트는 단순히 몸을 보호하거나 미사일을 쏘는 갑옷이 아니다. 기온 감지, 내비게이션, 그리고 전화 기능까지, 실로 다양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거북 또한 이와 맞먹는 다양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2014년, 아일랜드 코크대의 존 대번포트 교수팀은 바다거북의 일종인 장수거북에게 온도를 감지하는 특별한 부위가 있음을 발견했다. 비밀은 장수거북의 정수리에 있는 분홍색 반점에 있었다. 이 반점은 주위 온도에 예민하게 반응해 계절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일종의 ‘제3의 눈’인 셈이다.

 

반점 아래는 단단한 머리뼈가 아닌 얇은 연골로 돼 있었는데, 덕분에 온도변화 정보를 곧바로 뇌에 전달할 수 있었다. 장수거북은 이 제3의 눈 덕분에 계절변화를 쉽게 알아차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시기를 정확하게 지킬 수가 있다.


올해 초에는 장수거북의 친척인 붉은바다거북이 지구 자기의 분포를 감지해 길을 찾아 다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 자기의 분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데,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지 위치 또한 이 지구 자기의 변화를 따라 이동했던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로저 브라더스 연구원은 19년간 모은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이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것은 몸집이 골프공 크기에 불과한 갓 태어난 아기 붉은바다거북이 자신이 태어난 곳의 지구 자기를 기억한 후, 먼 훗날 어른이 된 뒤에 귀향한다는 사실이다. 거북의 머릿속 내비게이션에도 ‘우리 집’ 메뉴가 있는 셈이다.

 

코스타리카 가시꼬리이구아나의 속력은 단거리 육상선수와 맞먹는다. - Christian MehlFuhrer(w) 제공
코스타리카 가시꼬리이구아나의 속력은 단거리 육상선수와 맞먹는다. - Christian MehlFuhrer(w) 제공

● [퀵실버] 동물 탄환 가시꼬리이구아나


새로운 어벤져스 영화에 등장하는 재빠른 발놀림의 퀵실버는 음속의 5배나 되는 초고속 스피드로 적을 제압한다. 물론 현존하는 파충류 중에는 이와 같은 속력(마하 5)을 낼 수 있는 종류는 없다. 하지만 파충류의 세계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면, 퀵실버의 역할과 아주 잘 어울릴만한 종이 있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코스타리카 가시꼬리이구아나다.

 

이 이구아나는 ‘가장 빠른 육상파충류’라는 타이틀로 기네스북에 올라간 종이다. 순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겁이 무척 많은데, 이런 성격 탓에 도망을 칠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측정된 이들의 질주 속도는 시속 약 35km로, 몸집이 훨씬 큰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의 단거리 질주 속도(시속 38 km)와 맞먹는 스피드다.


재빠른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파충류로는 남아메리카의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는 바실리스크도마뱀이 있다. 이 도마뱀은 평소에 네다리로 걸어 다니지만, 천적을 만나면 상체를 들고 긴 뒷다리만을 이용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비록 그 달리는 속도는 가시꼬리이구아나만큼 빠르지 않지만, 바실리스크도마뱀은 가시꼬리이구아나가 보여줄 수 없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바로 물위를 뛰어다니는 능력이다. 바실리스크도마뱀은 강가 주변에 주로 서식하는데, 뱀이나 독수리와 같은 포식자와 맞닥뜨리면 바로 강물로 뛰어든 뒤 재빠르게 수면을 밟으며 건너편으로 도망간다.


바실리스크도마뱀의 이러한 놀라운 특기는 재빠른 발 동작과 다리 구조 덕분이다. 뒷발로 빠르게 수면을 내리 밟으면 발바닥과 수면 사이에 공기방울이 만들어지는데, 바실리스크도마뱀은 이 공기방울이 없어지기 전에 재빨리 반대 발을 수면으로 내리 밟는다.

 

녹색바실리스크 도마뱀은 빠른데다 특수한 발길질로 물 위를 걷는 신공을 선보인다. 무협영화에도 어울릴 듯. - Dave Pape(w) 제공
녹색바실리스크 도마뱀은 빠른데다 특수한 발길질로 물 위를 걷는 신공을 선보인다. 무협영화에도 어울릴 듯. - Dave Pape(w) 제공

게다가 바실리스크도마뱀은 발이 크고 다리가 옆으로 뻗어있어 발을 넓게 옆으로 밀어내면서 몸무게를 수면 위로 분산시킬 수가 있다. 물 위를 뛰어다니는 재미난 코스타리카 가시꼬리이구아나(왼쪽)의 속력은 단거리 육상선수와 맞먹는다.

 

녹색바실리스크 도마뱀(오른쪽)은 빠른데다 특수한 발길질로 물 위를 걷는 신공을 선보인다. 무협영화에도 어울릴 듯. 모습 때문에 현지 사람들은 이 도마뱀을 예수그리스도도마뱀이라고 부른다.


놀랍게도 가장 빠른 몸놀림을 가진 파충류 중에는 거북도 있다. 몸무게가 최대 900kg까지 나가는 장수거북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북임에도 불구하고, 유선형의 어뢰 같은 몸매와 강력한 지느러미로 변한 앞다리를 이용해 시속 33km의 속도로 헤엄칠 수 있다.

 

육상이 아니라 바닷속이라니 뭔가 반칙 같은 기분이들지만, 억울하면 한번 거북보다 빨리 헤엄쳐 보고 얘기해 보자.


● [앤트맨] 오그리 토그리 바다이구아나


앤트맨은 올해 7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될 슈퍼 히어로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몸집을 개미만한 크기로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과연 현실세계에서도 몸집을 축소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정말 몸집을 축소시킬 수 있는 파충류가 있으니, 바로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다.

 

미국 일리노이대의 마틴 위켈스키 교수팀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바다이구아나들이 수온이 올라가는 엘리뇨 현상 때 몸집이 줄어들고, 반대로 수온이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 때 다시 몸집이 원상복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다이구아나들의 몸집이 변하는 이유는 먹이였다.

 

엘니뇨 때문에 수온이 올라가면 바다이구아나가 즐겨먹는 적색과 녹색 해초가 줄어드는데, 이럴 때 조금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게끔 몸집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먹이가 풍부해지는 라니냐 때는 다시 몸집을 키운다.


바다이구아나들이 이렇게 몸집을 줄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과학자들은 엘리뇨가 심했던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 바다이구아나들의 몸집이 최대 20%까지 줄어든 데 주목했다. 이들은 바다이구아나의 근육과 지방, 그리고 연골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실제로 관찰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만 줄어서는 몸집이 10% 밖에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바다이구아나가 골격 자체를 축소시켜서 몸집을 작아지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뼈 자체를 축소시키는 능력은 척추동물 중에 바다이구아나가 유일하다.

 

스파이더맨? 아니 리자드맨! 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아가마도마뱀은 생김새부터 스파이더맨이다. 저런 몸으로 사자 얼굴에 붙은 파리를 잡아 먹는 담력도 지녔다. 못말려. - Leyo(w) 제공
스파이더맨? 아니 리자드맨! 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아가마도마뱀은 생김새부터 스파이더맨이다. 저런 몸으로 사자 얼굴에 붙은 파리를 잡아 먹는 담력도 지녔다. 못말려. - Leyo(w) 제공

● [스파이더맨] 용감한 아가마도마뱀


히어로(영웅) 이야기에는 헐크나 토르처럼 특수능력이 있는 초인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쫄쫄이 해녀복(!)을 입고 싸우는 블랙 위도우나 활만 가지고 세상을 구하러 가는 호크아이와 같이 평범한 인간도 등장한다. 이들의 무기는 용감함이다. 그런데 파충류의 세계에도 이렇게 능력 이상으로 용감무쌍한 종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 중부지역에 서식하는 아가마도마뱀이다.


아가마도마뱀은 작은 곤충들을 즐겨 먹는데, 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안면파리다. ‘안면’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파리는 동물의 얼굴에 붙어서 눈과 코에 나오는 분비물을 먹고 살아간다.

 

이들을 먹어야 하는 아가마도마뱀은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의 얼굴 가까이에 접근해야만 하는데, 하필 이 동물들이 대부분 몸집이 크고 위험한 녀석들이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누, 얼룩말, 물소는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짓밟혀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아가마도마뱀은 차선책으로 사자를 찾아간다. 사자는 낮이면 따뜻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서 오랜 시간을 정신 없이 자는데, 아가마도마뱀은 이 때를 노려 주변에 꼬인 파리들을 사냥한다.

 

사자의 엉덩이, 등, 심지어는 얼굴에까지 기어 올라가 파리사냥을 하는데, 사자가 깨어날때쯤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자의 몸에서 내려온다. 특히 수컷 아가마도마뱀은 새빨간 상체와 파란색의 하체를 가지기 때문에 장난스러운 스파이더맨을 연상시키게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파충류에는 별별 능력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들을 가지고 멋진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지구를 살리기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영화 속의 초인들과 달리, 이들 파충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특수능력을 발휘한다. 생계형 슈퍼 히어로들이라고 할까.

 

 

박진영
국내 유일의 도마뱀 전공 고생물학자이자 파충류 마니아. 공룡이나 도마뱀, 악어 등의 화석이 있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청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마뱀 화석을 연구했으며, 블로그와 강연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다.
stegosau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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