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의 문화산책] 디스플레이 기술 변화가 가져온 풍경

2015.05.25 18:00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관제센터 풍경. 사진은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소. 지휘소 중앙 전면에 설치된 액정디스플레이(LCD) 모니터를 비롯해 수십대가 넘는 디스플레이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전문가 수십 여 명이 모여 관제 임무를 지휘 통제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디스플레이 기술 발달로 관제실의 풍경도 큰 폭으로 바뀌었다.  - 전승민 기자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관제센터 풍경. 중앙 전면에 설치된 액정디스플레이(LCD) 모니터를 비롯해 수 십대가 넘는 디스플레이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디스플레이 기술 발달로 관제실 풍경 역시 큰 폭으로 바뀐 셈이다.  - 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하나하나 천천히 세어봤다. 모두 9개였다. 기자 개인이 쓰고 있는 ‘컬러 디스플레이 장치’의 숫자가. 영화감상용 대형 TV 1대, 침실용 32인치 TV가 1대, 컴퓨터용 모니터가 3대(사무실용 2대, 가정용 1대). 그리고 아이패드와 아이폰도 하나씩 갖고 있다. 여기에 업무용 노트북 컴퓨터 1대와 차량용 내비게이션 1대도 있다. 어떤 것이든 마음만 먹으면 또렷한 화질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디스플레이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사방 천지에 디스플레이가 넘쳐난다. 언제부터 이렇게 많아 졌을까. 사실 얼마 되지도 않았다. 15년 전, 대학생 시절엔 PC 모니터도, TV도 다 뚱뚱하고 커다란 것이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다. 가족 전체가 보는 TV 한 대면 충분했고, 거기에 컴퓨터용 모니터 한 대를 더 가지고 있으면 차고도 넘쳤다.
 
최근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개인용 PC에 모니터 2대 이상 달고 있는 건 특이한 일도 아니다. 가정엔 방방마다 TV가 놓이기 시작했다. 노트북 컴퓨터는 공책만큼 얇아지고, 아예 화면만 달린 태블릿 PC가 큰 인기를 끈다.
 
● LED 조명 덧붙여 만든 얇은 디스플레이
  
사실 이런 변화를 촉발한 건 발광다이오드(LED)의 등장이었다. LCD, 즉 액정기술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는 20년 전에도 있었다. 이걸로 TV 같은 모니터를 만들려는 시도도 많았다. 브라운관 모니터 방식에 비한다면야 엄청나게 얇고 가벼운 것이었지만, 그래도 꽤 크고 육중했다. 당시엔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방식과 사실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대중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질 않다 보니 가격도 비쌌다.
 
그러던 것이 2008년 무렵 시중에 LED라는 타이틀을 건 디스플레이가 발매되기 시작했는데, 이건 사실상 액정화면 뒤쪽에서 빛을 비춰주는 백라이트라는 부품을 형광등에서 LED로 바꾸고 나서부터다. 핵심기술은 같은 LCD이다 보니 처음엔 이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백라이트만 교체해 당장 조금 더 얇게 만드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로 주변 풍경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이 ‘얇고 가볍다’는 무기하나로 디스플레이는 소비 형태의 판도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집엘 가도 TV는 벽에 걸어 놓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극단적으로 얇아진 백라이트는 손에 들고 다니는, 공책만한 디스플레이 장치를 시장에 내 놨다. 아이패드건, 갤럭시 S시리즈이건, 최신형 노트북 컴퓨터건, 지금 세상에서 ‘첨단기술’ 자를 붙이고 판매되고 있는 디스플레이 장치는 거의 대부분 LCD 화면에 LED 조명을 뒤에 붙인 형태다. 바꿔 말해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바라보게 만든 세상, 그 기술 뒷면에는 LCD 기술과 LED백라이트의 합작이 숨어 있다고 표현하면 너무 과한 일일까.
 
● OLED, 퀀텀닷 이어지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LCD가 LED를 등에 업으면서 주위 환경도 극단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화면이 아무리 커져도 넓어지기만 하고 책상위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그대로다. 필요한 사람은 모니터를 2대, 3대씩 설치하고, 방방마다 TV를 한 대씩 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됐다.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극도로 얇아진 디스플레이는 요즘 다른 전자제품 속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요즘은 하다못해 냉장고를 개발해도 터치스크린을 붙인다. 사방 천지가 디스플레이로 깔린 세상이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그럼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누가 뭐래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양자점(퀀텀닷),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인기를 끄는 까닭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건은 하나다. 지금의 LCD+LED 방식보다 훨씬 더 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LCD는 LED조명으로 백라이트를 교체하면서 더 얇게 만들었다면, 이 두 가지 기술은 백라이트 자체가 필요 없다. 색소자에서 저절로 빛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너무도 얇은 현재의 디스플레이보다 훨씬 더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이야기를 다 각설하고, 그 한가지 장점이 가장 크다.
 
이 두 가지 디스플레이 기술의 시제품은 이미 나와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이 더 효율이 높은 제품, 더 고성능 제품을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앞으로 디스플레이는 이 두가지 기술이 점령할 것이다. 디스플레이는 점점 더 얇아지고, 점점 더 가벼워지며, 심지어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게 변모할 것이다. 아마 종이장처럼 얇은 디스플레이도 개발될 것이다.
 
이미 기술이 산업으로 전파될 임계점에는 거의 다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이 기술은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분명 LCD와 LED가 만들어낸 세상보단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자명하다.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가서 벽에 걸어 펼치면, 그 자리에서 150인치 대화면이 생기는 세상이라도 열리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술 수준에서 상상해 본 이런 빈약한 예측은 여지없이 깨질 확률이 높다. 기술이 산업과 만나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사회를 100%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그 편린이라도 알 수 있는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라고 부른다. 그저 확실한 건, 다음 세상이 확실히 더 좋아지리란 사실이다.
미래형 두루마리 디스플레이의 모습 - Fortolia 제공
미래형 두루마리 디스플레이. - Fortoli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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