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균 로키, 진핵세포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인가

2015.05.11 18:26

일반 대중보다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복잡한 세포(진핵세포)의 기원은 지난 40년 동안 진화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복잡한 생명체들이 퍼졌는지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열쇠다.
- 닉 레인, ‘생명의 도약’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의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위의 질문은 과학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3대 문제라고 한다. 많은 천재들이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아직은 설득력 있는 가설이 나와 있는 수준이다. 물론 위의 세 가지 문제 말고도 과학에서 심오한 질문은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진핵세포는 어떻게 나왔느냐 하는 문제다. 생명의 탄생에서 의식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진핵세포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원핵세포로는 진정한 다세포 생명체가 나올 수 없고 따라서 의식은 꿈도 못 꾼다.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닉 레인는 2009년 출간한 ‘생명의 도약’에서 “인간의 지능이나 의식과 같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며 우주 어딘가에서 찾고 있는 모든 특성이 한낱 세균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다. 적어도 이는 진핵생물만의 독특한 특성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진화의 10대 발명’으로 1장 ‘생명의 기원’이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연구결과를 소개한 것이라면 9장 ‘의식’은 ‘의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통찰을 주고 있다. 그 사이에 있는 일곱 개 장은 생명에서 의식으로 가는데 필요한 진화의 발명품 일곱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4장에서 진핵세포의 기원을 얘기하고 있다. 참고로 10장은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는 성(sex)을 다루는 5장과 밀접히 관계돼 있다.

 

●세균과 고세균, 진핵생물

 

생명체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라고 하면 중고교 생물 수업을 받은(기억하는) 경우 열에 아홉은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세포 안에 핵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분류기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둘 사이의 차이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교과서에서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비교하는 그림을 보면 크기 차이가 별로 안 나지만 실제로는 진핵세포의 부피가 1만~10만 배 더 크다. 진핵세포에서 호흡(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세균에서 기원했다는)도 겨우 두세 개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백 개가 들어있다. 즉 교과서에 있는 건 비교를 위해 도식화한 그림이라는 말이다.

 

진핵세포(왼쪽)와 원핵세포는 크기나 복잡도에서 차이가 크지만 핵심만 보여주는 도식적인 비교에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가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뜨거운 논란거리다. - 위키피디아 제공
진핵세포(왼쪽)와 원핵세포는 크기나 복잡도에서 차이가 크지만 핵심만 보여주는 도식적인 비교에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가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뜨거운 논란거리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렇다면 이렇게 크고 복잡한 진핵세포는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이 질문에 처음으로 그럴듯한 답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다. 1960년대 마굴리스는 서모플라스마라는 세균과 나선상 세균이 융합해 원시진핵세포로 진화했고 그 뒤 산소호흡을 하는 박테리아를 포획해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로 길들였다고 주장했다. 또 식물의 엽록체는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잡혀 노예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설은 훗날 ‘연속 세포내공생 이론’으로 불린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 네이처 제공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 네이처 제공

발표 당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1970년대 분자진화(molecular evolution) 기법이 개발되면서 설득력 있는 가설로 올라섰다. 분자진화란 생체를 이루는 DNA의 염기서열이나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을 분석해 이를 토대로 생명의 진화를 재구성하는 분야다. 진화상으로 가까운 종일수록 염기서열이나 아미노산서열이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자체적으로 작은 게놈을 지니고 있는데(이 사실도 공생의 강력한 증거다!) 염기서열이 일부 박테리아와 꽤 비슷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분자진화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졌다. 물리학자에서 생물학자로 전향한 칼 우즈는 1970년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회심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보솜RNA 염기서열을 분석해, 즉 분자진화 데이터를 토대로 생명체의 계통도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 그때까지는 형태적 특징을 토대로 분류가 이뤄졌다.

 

칼 우즈 교수.  - 위키피디아 제공
칼 우즈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 위키피디아 제공

데이터를 분석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리보솜 RNA 염기서열에 따르면 원핵생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그룹으로 나뉘어야 한다는 것. 1977년 발표한 논문에서 우즈는 기존 세균을 진정세균(줄여서 세균)과 고세균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적어도 리보솜 RNA만 놓고 보면 고세균은 세균보다 오히려 진핵생물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1990년 우즈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즉 생물을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의 세 영역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

 

이는 당시 주류였던 ‘5계 분류법’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필자가 학창시절에 배운 5계 분류법은 사실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양분법에 기초한다. 우리가 진핵생물이다 보니 원핵생물을 한 계로 하고 진핵생물을 4계(원생생물, 균, 식물, 동물)로 세분한 것이다.

 

그런데 한 물리학자가 나타나 화학실험의 결과(분자진화)를 바탕으로 분류학(생물학)을 재편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에른스트 마이어 같은 저명한 학자뿐 아니라 린 마굴리스도 이에 격렬히 반대했다. 흥미롭게도 마굴리스가 가설에서 끌어온 서모플라스마도 고세균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분자진화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오늘날 교과서 대다수는 우즈의 ‘3역 분류법’을 싣고 있다.

 

2_1970년대 시작된 분자진화 연구로 ‘3역 분류법’(왼쪽)이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세균/고세균/진핵생물이 각각 역(domain)을 차지한다. 반면 최근 고세균의 한 그룹에서 진핵생물이 진화했다는 가설이 등장하면서 ‘2역 분류법’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고세균 로키아케오타 발견은 2역 분류법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다.  - 사이언스 제공
2_1970년대 시작된 분자진화 연구로 ‘3역 분류법’(왼쪽)이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세균/고세균/진핵생물이 각각 역(domain)을 차지한다. 반면 최근 고세균의 한 그룹에서 진핵생물이 진화했다는 가설이 등장하면서 ‘2역 분류법’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고세균 로키아케오타 발견은 2역 분류법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다.  - 사이언스 제공

우즈의 계통도를 보면 먼저 세균과 고세균/진핵생물 공통조상이 갈라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뒤 고세균/물 공통조상에서 고세균과 진핵생물이 갈라진다. 한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그룹을 ‘자매분류군’이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고세균과 진핵생물은 자매분류군 관계다. 즉 분자진화 데이터를 분석하면 어떤 고세균도 진핵생물보다는 다른 고세균과 더 가깝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진핵생물도 고세균보다는 다른 진핵생물과 더 가깝다.

 

● 세균과 진핵생물 관계 재설정해야

 

학술지 ‘네이처’ 5월 6일자 온라인판에는 고세균과 진핵생물이 자매분류군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진핵생물은 고세균 전체가 아니라 고세균의 특정 그룹과 자매분류군이라는 것. 쉽게 말해 분자진화의 관점에서 진핵생물은 고세균의 부분집합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 공통조상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갈라진 뒤 고세균이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진화하던 중 한 집단에서 진핵생물이 등장한 것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3역 분류법(세균/고세균/진핵생물)’이 ‘2역 분류법(세균/고세균)’으로 바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말이다.

 

스웨덴 웁살라대 티스 에테마(Thijs Ettema) 교수팀은 수심 3283미터에 이르는 북극해의 해저 토양을 채취해 메타게놈을 분석했다. 메타게놈이란 시료에 있는 생물체 전체의 게놈이다. 예전에는 시료에서 페트리접시에 배양하는데 성공한 미생물만 게놈을 분석할 수 있었지만, 감도가 높은 분석법이 나오고 생물정보학이 발전하면서 이제 세포 하나로도 게놈을 밝힐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분석결과 기존의 알려진 고세균과 상당히 다른 고세균의 존재가 드러났다. 워낙 차이가 크다보니 연구자들은 이 고세균을 위해 ‘로키아케오타Lokiarchaeota’라는 새로운 문(門, phylum)을 제안할 정도였다(분류단계인 ‘계문강목과속종’을 생각하면 새로운 문이 나온다는 건 드문 일이다). 시료를 채취한 지점에서 남쪽으로 15킬로미터 지점에 ‘로키의 성(Loki's Castle)’이라고 명명한 심해 열수분출공이 있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참고로 로키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바람둥이 신 이름이다.

 

메타게놈 데이터에서 확인한 로키아케오타는 세 종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510만 염기로 추정되는 게놈의 92%가 해독돼 로키아케움(Lokiarchaeum)이라는 속명까지 받았다. 다른 두 종(각각 로키2, 로키3이라는 임시 이름을 얻었다)은 게놈 일부만이 해독된 상태다. 분류를 할 때 분자진화의 기준이 되는 리보솜RNA의 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로키아케오타는 다른 고세균보다 진핵생물과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즉 로키아케오타와 진핵생물이 자매분류군이란 말이다.

 

● 키는 식세포작용하는 원핵생물?

 

한편 게놈 대부분이 해독된 로키아케움의 데이터를 면밀히 조사하자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로키아케움 게놈에서 단백질 유전자는 5381개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3.3%인 175개가 지금까지 진핵생물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 유전자는 진핵생물에 고유한 게 아니라 로키아케오타/진핵생물의 공통조상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 유전자들 대다수는 세포골격과 세포의 형태변화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린 마굴리스의 연속 세포내공생 이론은 각론에서 다수가 버려졌지만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공생 가설은 더 확고해졌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까지 알려진 원핵생물을 놓고 봤을 때 원핵생물(또는 원시진핵생물)이 다른 원핵생물(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의 조상)을 잡아먹는 걸(이를 식세포작용이라고 부른다)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 제안된 계통도에서 로키아케오타와 진핵생물 부분을 클로즈업한 도식이다. 이번에 새로 제안된 문인 로키아케오타는 고세균의 여러 문 가운데 네 가지 문을 포함하는 TACK(각 문의 머리글자)라는 상문(上門)에 포함된다. 이번 연구결과로 세포골격과 식세포작용 등의 능력을 갖고 있는 고세균이 먼저 등장했고(로키아케오타와 진핵생물의 공통조상) 그 뒤 세포내공생 등 진핵세포로 가는 진화가 이어졌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  - 네이처 제공
새로 제안된 계통도에서 로키아케오타와 진핵생물 부분을 클로즈업한 도식이다. 이번에 새로 제안된 문인 로키아케오타는 고세균의 여러 문 가운데 네 가지 문을 포함하는 TACK(각 문의 머리글자)라는 상문(上門)에 포함된다. 이번 연구결과로 세포골격과 식세포작용 등의 능력을 갖고 있는 고세균이 먼저 등장했고(로키아케오타와 진핵생물의 공통조상) 그 뒤 세포내공생 등 진핵세포로 가는 진화가 이어졌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  - 네이처 제공

보통 세포를 물이 들어 있는 풍선에 비유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노미터 굵기의 바늘로 콕 찔러도 퍽 하고 터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원핵생물은 단단한 세포벽을 만들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진핵세포는 세포벽이 없지만 대신 세포내부에 액틴 같은 필라멘트 단백질로 이뤄진 ‘골격’이 있어 형태를 유지한다. 세포액도 물보다는 젤에 가까운 상태다. 참고로 식물의 세포벽은 훗날 따로 진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지 경직된 세포벽 대신 유연한 세포내부골격을 지닌 원핵세포가 등장해야 훗날 세포소기관이 될 세균을 잡아먹는 일이(식세포작용) 가능할 텐데 지금까지 그런 원핵세포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로키아케움에서 액틴 유전자를 비롯해 세포내부골격과 식세포작용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유전자들이 다수 발견된 것. 즉 마굴리스가 가정한 원시 진핵세포와 비슷한 고세균이 진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심해처럼 극한의 환경에서 자라는 미생물은 대부분 배양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게놈 데이터로 로키아케오타의 존재만 알 수 있을 뿐 이 고세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그러나 심해의 시료에 들어있는 로키아케오타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조건을 찾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형태의 고세균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36가지 단백질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만든 계통도를 보면 로키3이 로키아케움이나 로키2보다도 진핵생물과 더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 즉 게놈이 거의 해독돼 이번 논문에서 비교 연구에 주로 쓰인 로키아케움보다 진핵생물에 더 가까운 고세균이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영국 뉴캐슬대의 마틴 엠블리 교수와 탐 윌리엄스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해설에서 “로키아케움 발견과 추후 이어질 원핵생물 다양성의 발견은 진핵세포 기원 연구가 이제 실험실에서 ‘검증할 수 있는 과학(testable science)’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전망을 갖게 한다”고 평가했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매년 마지막호에 ‘올해의 10대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필자 생각에 올해 들어 발표된 연구들 가운데 이번 로키아케오타 발견이 1위 후보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남은 7개월 동안에도 이보다 더 놀라운 발견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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