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탐사선 ‘메신저’여 편히 잠드소서!

2015.05.04 18:00

1990년대 하면 꽤 오래 전 같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1993년 필자가 한 회사 연구소에 입사했을 때 동기 11명 가운데 이미 두세 명이 차가 있었고 이삼 년 지나자 필자를 뺀 모두가 차를 몰고 다녔다. 한번은 동기 넷이서 미팅을 했는데 같이 저녁을 먹고 팀별로 헤어졌다. 세 팀은 주차장으로 갔고 필자팀만 거리로 나섰다. 약간 위축돼서 걷고 있는 필자가 좀 안 돼 보였는지 그때 파트너였던 여성분이 건넨 한 마디가 지금도 미소를 짓게 한다.

 

“어머! 우린 ‘뚜벅이 사랑’이네요. 호호….”

 

아무튼 1996년 필자도 마지막으로 차를 샀는데 그 차를 지금까지 타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차를 조립할 때 근로자들의 컨디션이 최상이었는지 처음 10년 동안은 고장 한 번 안 났고 그 뒤에도 잔고장만 몇 번 있었을 뿐 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게다가 당시 워낙 모던한 디자인이라(1995년 아반떼가 출시되자 센세이션이 있었다) 요즘 차와 비교해도 별로 촌스럽지가 않다.

 

그럼에도 수년 전 한동안 차를 바꿔볼까 고민을 했는데, 기능에 문제가 없는 차를 버리는 것 같아 차마 실행하지 못했다. 기계도 오래 쓰니 정이 드는 것일까. 다행히(?) 프리랜서가 된 뒤로 소득이 급감해 이제는 새 차를 살 엄두를 못 내므로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아마 정비소에서 “이 차 계속 운전하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기 전에는 계속 탈 것 같다.

 

● 궤도 이탈해 추락

 

지난 4월 30일 밤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삼삼오오 술집을 찾아 술 한 잔 걸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이날 4년 1개월 14일 동안 하루 두 차례씩 수성 주변을 돌던 탐사선 메신저(MESSENGER)호가 추락해 수성에 충돌했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3일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나간 메신저는 무려 7년에 걸친 복잡한 여정 끝에 2011년 3월 18일 수성 궤도에 진입했고 수많은 관측 데이터를 보내면서 인류가 수성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커다란 양문냉장고만한 쇳덩어리로 보일 뿐이지만 10여년을 메신저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과학자들로서는 어찌 상실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1_NASA의 연구자들이 수성 탐사선 메신저호를 조립하는 모습. - NASA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자들이 수성 탐사선 메신저호를 조립하고 있다. - NASA 제공

 

태양계 행성 가운데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수성은 크기가 가장 작고 공전궤도도 가장 심한 타원이다. 그리고 지구형 행성 네 형제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행성이다. 화성과 금성은 탐사가 꽤 이뤄진 반면 수성은 21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에서도 1974년과 1975년 마리너10호가 수성에 세 차례 접근통과(flyby)를 한 게 전부였다.

 

 

2_태양계의 지구형 행성들. 태양에 가까운 순서로 왼쪽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태양계의 지구형 행성들. 태양에 가까운 순서로 왼쪽부터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수성 탐사가 지지부진했던 건 여러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에 워낙 가까이 있다 보니 궤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30여년을 보내다 1998년 본격적으로 수성 탐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마침내 ‘메신저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메신저는 ‘수성 표면, 공간 환경, 지화학, 범위’의 약자이면서 동시에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 머큐리(mercury, 수성의 영어명)의 직업인 전령(messenger)을 뜻하기도 한다.

 

탐사의 난관이란 탐사선이 수성을 향해갈 때 점점 가속도가 붙어(태양에도 가까워지므로) 수성 궤도에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것. 감속을 시키려면 연료를 잔뜩 싣고 가야 한다. 연구자들은 메신저의 궤도를 교묘하게 설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즉 지구에서 수성을 향해 곧바고 가는 게 아니라 달팽이 껍질처럼 나선을 그리며 서서히 접근해가는 것. 대신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나 무려 79억 킬로미터가 됐고 결국 수성 궤도에 진입하는데 6년 7개월 16일이 걸렸다.

 

메신저호가 감속하는데(수성에 대한 상대속도) 유용하게 쓰인 기법이 바로 접근통과다. 즉 메신저호는 지구에 한 차례, 금성에 두 차례, 수성에 세 차례 접근통과를 하면서 속도를 줄였고 2011년 마침내 수성 궤도에 안착했다.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보통 ‘네이처’나 ‘사이언스’ 둘 가운데 하나와 독점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신저 프로젝트는 ‘사이언스’와 손을 잡았다.

 

● 수성의 전모 드러나

 

2008년 1월 14일 메신저호가 수성에 첫 번째 접근통과를 할 때 200킬로미터까지 다가가면서 많은 데이터를 생성해 보냈다. 그 결과를 담은 논문 11편이 그해 7월 4일자 ‘사이언스’에 실리면서 화제가 됐다. 이전까지 수성의 근접촬영은 마리너10호가 찍은 사진이 전부였는데 행성의 절반은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다. 메신저의 첫 번째 접근통과로 약 20%의 영역이 추가로 드러났다.

 

메신저호는 이해 10월 6일 두 번째 접근통과를 했고 2009년 9월 29일 세 번째 접근통과를 했다. 두 번째 접근통과를 할 때 수성의 자기장을 면밀히 분석했고 그 결과와 수성 지각의 진화를 다룬 논문 네 편이 ‘사이언스’ 2009일 5월 1일자에 실렸다.

 

3_메신저호는 태양의 중력으로 가속되는 걸 막기 위해 복잡한 나선궤도를 그린 뒤 무려 6년 7개월만에 수성 궤도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지구에 한 차례, 금성에 두 차례, 수성에 세 차례 접근통과를 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메신저호는 태양의 중력으로 가속되는 걸 막기 위해 복잡한 나선궤도를 그린 뒤 무려 6년 7개월만에 수성 궤도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지구에 한 차례, 금성에 두 차례, 수성에 세 차례 접근통과를 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2011년 3월 18일 마침내 수성 궤도에 진입한 메신저호는 하루 두 차례 공전하며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했다. 메신저호의 공전은 극단적인 타원궤도를 따르게 설계됐다. 즉 수성과 가장 가까울 때는 200킬로미터까지 접근하지만 가장 멀 때는 무려 15000킬로미터나 떨어진다. 수성 표면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우주정거장처럼 계속 가까운 거리에서 돌면 복사열에 기계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성에서 해가 쨍쨍할 때 빛의 양은 지구에서의 10배가 넘는다.

 

 

메신저호의 수성 공전궤도. 수성 표면이 매우 뜨겁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극단적인 타원궤도를 택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메신저호의 수성 공전궤도. 수성 표면이 매우 뜨겁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극단적인 타원궤도를 택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참고로 수성의 표면 온도는 최대 430도로 새우를 튀길 때 기름의 온도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태양을 등질 때(밤)는 온도가 급감해 영하 170도에 이른다. 즉 한 지역의 일교차가 600도나 나는 셈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자전속도가 매우 느리고(약 59일) 완충역할을 할 대기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수성의 자전축은 공전면과 거의 수직이기 때문에 극지방의 온도는 꽤 낮아 영하 90도를 넘지 않는다.

 

아무튼 원래 계획된 궤도 비행 미션은 2011년 4월 4일 시작됐고 이때 수집한 데이터를 해석한 논문 7편이 ‘사이언스’ 9월 30일자에 실렸다. 수성 자기장을 분석한 논문도 있었고 수성 지각의 원소 구성을 다룬 논문도 있었다. 즉 수성의 표면에는 칼륨처럼 상대적으로 휘발성이 큰 금속의 함유량이 높아 수성 형성 시나리오 가운데 유력한 가설인 충돌설이 힘을 잃게 됐다(충돌의 열로 휘발성이 큰 금속은 날아가 버려 거의 남아있지 않아야 하므로).

 

 

5_메신저호가 수성 궤도에 진입한 뒤 보낸 첫 이미지(왼쪽, 2011년 3월 29일)과 마지막 이미지(오른쪽, 2015년 4월 30일). 메신저호는 미션을 수행하면 10만 장에 가까운 이미지 데이터를 보냈다. - NASA 제공
메신저호가 수성 궤도에 진입한 뒤 보낸 첫 이미지(왼쪽, 2011년 3월 29일)과 마지막 이미지(오른쪽, 2015년 4월 30일). 메신저호는 미션을 수행하면 10만 장에 가까운 이미지 데이터를 보냈다. - NASA 제공

 

● 두 차례 미션 연장해

 

이 해 11월 NASA는 메신저호의 미션을 1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고 2012년 3월 17일 1차 연장에 들어갔다. 2012년 11월 NASA는 메신저호가 수성 북극에서 얼음과 유기화합물층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물론 수성의 극지방에 물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지구에서의 관측에서 이미 예상된 것이었지만 실제 확인하는 건 다른 얘기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션 솔로몬은 수성 북극 얼음의 양이 “워싱턴DC를 높이 4킬로미터로 덮을 양”이라고 재치있게 비유하기도 했다. 이 연구결과는 2013년 1월 18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다.

 

 

2012년 11월 수성 북극의 얼음 발견이 메신저호 미션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사진에서 노란색으로 처리한 부분이 얼음이 있는 지역이다.  - NASA 제공
2012년 11월 수성 북극의 얼음 발견이 메신저호 미션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사진에서 노란색으로 처리한 부분이 얼음이 있는 지역이다.  - NASA 제공

 

그 뒤 메신저호는 2차 연장 미션에 들어갔는데 2014년 말부터 서서히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NASA의 연구자들은 남아있는 연료를 분사해 궤도를 정상화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4월 30일 추락하고 말았다. 메신저호가 수성에 충돌했을 때 속도는 시속 1만4000킬로미터로 대략 16미터 크기의 크레이터를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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