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생맥주, 정말 맛있기는 한 거니?

2015.04.25 18:00
istockpho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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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입술에 닿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너의 느낌만 떠오른 게. 러브레터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크림생맥주 이야기다.

 

원래 기획은 ‘크림생맥주를 맛있게 먹는 법’이었지만, 이게 웬걸. 취재를 진행할수록 전문가들은 “크림생맥주는 거품을 억지로 짜내는 것뿐, 오히려 맥주 본연의 맛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크림생맥주에 숨은 비밀을 알아보기로 했다. 크림생맥주, 너 정말 맛있기는 한 거니?


4월 7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맥주집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을 찾았다. 크림거품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다. 이 가게의 김정하 대표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여성 브루마스터다. 브루마스터는 맥주의 제조에서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맥주 전문가다. 와인으로 치면 소믈리에 같은 존재다.


*크림생맥주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이 기사에서는 조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있는 맥주를 의미한다.


● 거품의 유지력은 맥아와 홉으로부터


“거품의 실체는 맥주 안의 탄산기체예요. 기네스나 킬케니 같은 맥주는 거품을 조밀하게 만들기 위해서 질소기체를 넣기도 하지만요.” 김 대표가 말했다. 맥주에는 기본적으로 효모가 발효하면서 내놓는 탄산기체(이산화탄소)가 0.3~0.4% 포함돼 있다. 여기에 추가로 탄산기체 혹은 질소기체를 충전한다.

 

맥주는 생맥주 기계 안의 좁은 관을 통과하면서 높은 압력으로 압축된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질소기체를 충전한 맥주는 보다 높은 압력을 받고, 더 많은 탄산기체가 녹는다. 기체의 용해도는 압력에 비례한다는 ‘헨리의 법칙’ 때문이다.

 

맥주에 녹은 탄산기체는 대기압을 만나 ‘해방’돼 거품이 된다. 이 때 질소기체가 많아 탄산이 많이 녹은 맥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더 조밀한 거품을 만든다. 질소를 넣은 대표적인 맥주 기네스는 전체 맥주 속 기체의 70%가 질소다.

 

탄산기체 vs 질소기체(질소는 물에 잘 녹지 않아 관 내부 압력을 높인다. 압력이 커지면 맥주 속에 탄산기체가 더 많이 녹아 결국 거품이 조밀해 진다.) - 과학동아 제공
탄산기체 vs 질소기체(질소는 물에 잘 녹지 않아 관 내부 압력을 높인다. 압력이 커지면 맥주 속에 탄산기체가 더 많이 녹아 결국 거품이 조밀해 진다.) - 과학동아 제공

맥주에 녹아있던 기체가 빠져 나온다고 바로 거품이 되는 건 아니다. 기체가 그냥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 소용 없다. 이를 막는 것이 맥아의 단백질과 홉의 폴리페놀. 이들이 기체를 둘러싸야 비로소 거품이 완성된다. 그래서 거품을 조밀하게 만드는 덴 둘의 비율이 중요하다.

 

그럼 맥아와 홉을 많이 넣으면 조밀한 거품을 만들 수 있을까. 김 대표는 “홉은 맥주의 향을 살리기도 하지만 쓰게 만드는 물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맥아를 많이 넣는 게 하나의 방법이긴 하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거품을 유지시키는 건 맥아가 아니라 맥아의 ‘단백질’이에요. 맥아보다 단백질 성분이 많은 밀을 쓰면 더 조밀한 거품을 만들 수 있어요.”

 

실제로 맥아와 밀을 50대 50으로 넣는 밀맥주도 많다. 독일의 ‘바이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맥주의 구성성분보다 더 중요한 한가지가 남아있다.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는 맥주의 공정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브루마스터다. 사진 속 케그(맥주가 담겨있는 통)에는 김 대표가 직접 만든 맥주가 들어있다. - 최지원 기자 제공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는 맥주의 공정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브루마스터다. 사진 속 맥주 저장탱크에는 김 대표가 직접 만든 맥주가 들어있다. - 최지원 기자 제공

● 억지로 만든 크림생맥주는 그냥 김빠진 맥주


거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마지막 요소는 ‘따르는 방법’이다. 일본의 유명한 맥주 마스터 마쓰오 코헤이는 하루 종일 맥주 따르는 연습만 할 정도다. 그러나 그가 맥주를 따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처음 따를 때부터 낙차를 크게 주는 것. 맥주가 잔의 바닥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생기는 마찰력으로 거품이 많이 생긴다. 이렇게 만든 거품은 크기가 크다. 그 상태를 1분 정도 유지하면 맥주의 표면장력 때문에 거품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그 상태에서 맥주를 따르면 작아진 거품이 위로 올라온다.

 

김 대표는 “실제 영국에서는 생맥주를 시키면 5분은 기다려야 한다”며 “거품이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님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기다려주지 않죠. 그러니까 그런 조밀한 거품을 내기 위해서 억지로 거품을 짜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거품과 맥주의 황금비율은 2:8이다. 이 비율을 유지하려면 45。기울여 따르는 게 좋다. 따르는 각도에 따라, 거품이 너무 많아지거나 적어질 수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거품과 맥주의 황금비율은 2:8이다. 이 비율을 유지하려면 45。기울여 따르는 게 좋다. 따르는 각도에 따라, 거품이 너무 많아지거나 적어질 수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우리나라에도 따르는 방법만 연구하고 연습하는 사람이 있다. 맥주를 잘 따르는 사람을 선발하는 ‘하이네켄 글로벌 바텐더 파이널(NBF)’ 2015년 우승자인 박재웅 맥주바텐더(위 사진)다.

 

우리나라 1위 바텐더가 따라주는 맥주를 마셔보기 위해 그가 일하는 세계맥주전문점 플레이볼을 찾았다. 플레이볼에는 이미 아마추어 맥주전문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한 맥주 애호가는 “맥주의 맛은 따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거품을 작고 많이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맥주의 맛을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크림생맥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잔 거품이 있는 크림생맥주가 인기인데 무슨말일까.


“거품을 많이 만드는 건 정말 쉬워요. 그냥 90。로 따르면 되거든요. 거품을 조밀하게 만드는 거? 그건 더 쉽죠. *스월링을 과하게 하면 돼요. 보세요. 제가 지금 맥주를 따르는데 가만히 있지 않죠? 중간 중간에 맥주 잔을 돌려주잖아요. 이걸 많이 하면 거품이 많이 나와요. 문제는 이런 식으로 거품을 과도하게 만들면 맥주 속에 탄산이 빠져버려요. 김 빠진 맥주가 되는 거죠(박재웅 바텐더).”


*스월링
원래는 와인에서 쓰는 용어로 와인의 향을 발산시키기 위해 잔을 둥글게 돌려주는 행동을 말한다. 맥주에서는 잔을 돌려가면서 따르는 기술을 말한다. 케그에 있는 맥주는 굉장히 안정된 상태기 때문에, 스월링을 하면서 그 상태를 깨준다.


● 맥주 거품, 산화 방지 기능 없다


그럼 왜 이렇게 크림생맥주가 인기 있는 걸까? 박재웅 바텐더는 ‘유행’이라고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일본에서 넘어온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은 집착이라고 할 만큼 부드러운 거품을 중요시 해요. 거품을 위한 생맥주 기계가 따로 있고 따르는 방법을 별도로 연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정철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맥주 거품이 발달한 이유로 술에 부과하는 세금을 꼽았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맥아의 양이 일정 비율 이상이 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기업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맥아 비율이 적은 밍밍한 맥주(발포주)를 출시하게 됐어요. 밍밍한 맛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거품입니다. 거품을 크리미하게 많이 만들면 사람들이 그 거품의 비주얼이나 부드러움에 반해 맥주 맛에는 관대해지니까요. 물론 일본 사람들이 탄산이 가득한 시원한 맥주보다는 부드러운 맥주를 좋아하는 경향도 거품이 발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죠. 이런 일본 문화가 우리나라까지 넘어오게 된 겁니다.”

 

크리미한 맥주 거품 만드는 법(아사히 맥주는 크리미한 거품을 만들기 위해 맥주 바텐더들에게 이 방법을 권한다.) - 과학동아 제공
크리미한 맥주 거품 만드는 법(아사히 맥주는 크리미한 거품을 만들기 위해 맥주 바텐더들에게 이 방법을 권한다.) - 과학동아 제공

거품은 맥주의 산화를 방지한다는 말이 있다. 혹시 조밀한 거품이 많으면 맥주의 산화가 덜 되지 않을까. 김정하 대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맥주 를 하루 종일 마시는 게 아니잖아요. 길어도 1~2시간? 그리고 맥주 잔 보세요(김 대표는 잔의 입구를 가리켰다). 공기랑 접촉하는 면이 이렇게 작아요. 이 정도 가지고는 산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맥주가 산화될 정도로 오래 있으면 이미 거품은 다 사라지고 없겠죠. 그런데 거품이 어떻게 산화를 막을 수 있겠어요.”


결국 거품의 기능이라고 알고 있었던 산화방지 역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의 탄식에 김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맛 없는 맥주라고 할 순 없어요.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는 거니까. 맥주 본연의 맛보다 거품을 더 중요시 하는 사람이나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고. 취향을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순 없죠.”


물론 그렇다. 누구는 밍밍하다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는 게 힘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는 만큼 맛도 느껴지는 법이고, 또 그만큼 즐길 수도 있는 법이다. 크림생맥주를 대문짝만하게 쓴 가게만 골라 들어가던 나날이 취재하는 내내 떠올랐다. 동시에 거품에 속았던 나의 과거에 적잖이 실망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떨까. 과연 이 기사를 읽은 이후에도 크림생맥주의 맛이 어제와 같을까.

 

하이네켄코리아 제공
하이네켄코리아 제공

○ 박재웅 바텐더에게 듣는 맥주 맛있게 마시는 법!

 

1. 생맥주 기계 옆에 국자가 있는 가게는 피해라!

 

이런 가게에 들어갔다면 종업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라. 아마 기계 옆에 ‘거품 통’(응?)을 준비해 놓고 있을 것이다. 맥주를 따르는 기술이 없는 바텐더는 지나치게 많이, 혹은 너무 모자라게 거품을 만든다. 그래서 옆에 항상 거품을 상비해 놓고 있다.


2. 잔 벽에 달라붙는 거품, 덜 닦인 컵이다!


컵에 병 맥주를 따르면 컵 벽에 거품이 다닥다닥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 이건 100% 기름기가 덜 닦인 컵이다. 상온에서 자연건조 하되,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컵을 엎어 놓고 말리는 것이 최고의 선택!


3. 거품을 오래 유지하려면 ‘스킴(Skim)’과정이 필요하다!


스킴과정은 하이네켄에서 바텐더 교육 시 강조하는 과정이다. 맥주를 다 따르고 난 뒤 위의 거품을 살짝 걷어내는 것. 걷어내는 과정에서 거품 위로 얇은 물 층이 생겨 거품이 덜 날아가게 된다. 거품을 보다 오래 유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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