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2015.04.22 18:00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인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나요?”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이룩했고, 따라서 생물학적으로는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인 차원을 초월한 고등한 존재가 됐다고 말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진정 진화의 법칙마저 초월했을까요.


제가 박사 논문을 쓰던 1990년대의 일입니다. 문화인류학 전공이던 동기가 제게 물었죠.
“논문 주제가 뭐니?”
“인류 진화 역사에서 성차(성별의 차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화석을 통해 살펴보고 있어.”
그 다음 동기의 말에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성별의 차이? 성별은 문화적인 개념인데 어떻게 뼈를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이니?”


199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내 주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몸을 초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은 문화를 통해 이뤄졌으며, 심한 경우는 몸과 유전자조차 문화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류는 생물학과 완전히 결별한 듯 보였습니다.


● 1만 년 전, 문화적인 인간이 태어나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만 년 보다도 전이지만, 문화와 문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문화적인 인간’이 나타난 것은 약 1만 년 전이었습니다. 농경과 가축화가 시작되자 인류는 먹거리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됐고, 생산성은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잉여 자원이 생겼습니다. 잉여 자원은 계급사회를 낳았고,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문화는 점점 더 빨리 변화했습니다.


인류를 변화시키는 주도권은 점차 문화가 쥐었습니다. 생물학적인 측면, 즉 진화는 점점 뒷전으로 물러나는 듯 했습니다.

 

복잡하고 섬세한 풍미를 내는 음식,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 인류가 만든 다채롭고 정교한 문화는 인류를 단순한 생물학 적 존재 이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화마저 초월한 존재일 수 있을까. - istockphoto 제공
복잡하고 섬세한 풍미를 내는 음식,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 인류가 만든 다채롭고 정교한 문화는 인류를 단순한 생물학 적 존재 이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화마저 초월한 존재일 수 있을까. - istockphoto 제공

심지어 유전학자들조차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인류의 유전자 변화는 모두 환경에 유리하지도 않고 불리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환경의 선택을 받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환경에 따른 유전자의 선택은 진화의 핵심 요인입니다. 유전학자의 말은 인류가 정말로 진화와는 관련이 없어졌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유전체(게놈)가 해독되고, 해독된 유전체의 수도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유전 정보가 쌓였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했는지 추적해보니,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변화한 유전자가 하나 둘씩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그 변화의 주체는 문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흰 피부가 있습니다. 인류는 탄생한 뒤 가장 오랜 시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습니다. 이 지역은 적도 부근이므로 자외선이 강했고, 자외선을 막는 멜라닌 색소를 많이 만들어 내는 돌
연변이가 환경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원래 피부색이 검었습니다.


일부 인류는 이후 아프리카를 떠나 전세계로 퍼지면서 햇빛이 약한 중위도 지역에서까지 살게 됐습니다. 이 때는 빙하기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떨치던 때로, 구름이 많이 끼어 햇빛은 더 약해졌습니다. 멜라닌 색소가 많은 피부는 자외선을 너무 막아 오히려 불리해졌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자외선은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필수니까요.

 

비타민 D 합성이 안 되면 인체는 칼슘을 섭취할 수 없게 돼 뼈에 이상이 생기고, 생존과 번식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중위도에 살던 사람들은 멜라닌 색소가 없는 돌연변이를 지니게 됐고, 피부가 하얘졌습니다. ‘비타민 D 가설’입니다.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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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1999년에야 처음 발견돼 현재까지 10개 이상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륙마다 분포가 다른데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북쪽으로 퍼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비타민 D 가설이 맞다면 인류가 북쪽으로 진출한 직후에는 나타났어야 하는데 말이죠.


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중위도 지방에 산 이후에도 인류는 사냥 등으로 고기와 생선을 풍부하게 먹었습니다. 이런 음식에는 비타민 D가 풍부했고, 굳이 피부로 합성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피부에 있던 멜라닌 색소를 없앨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흰 피부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기와 생선 대신 곡물을 주로 섭취하게 되면서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햇빛을 통해 합성하는 방법을 택하게 됐습니다. 이제 자외선을 통과시키는 흰 피부가 검은 피부보다 유리해졌고, 피부는 하얘졌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의학 발달이 진화를 촉진하다


플라이스토세(258만~1만 년 전까지)와 비교할 때, 최근 5000년 동안 인류는 그 이전 인류에 비해 100배나 빨리 진화했습니다.여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양합니다.

 

먼저 인구 증가를 들 수 있습니다. 1만 년 전 농경이 발달하며 인구가 늘어나자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늘고, 돌연변이에 따른 인류의 다양성도 늘어났습니다. 다양성은 진화의 전제 조건입니다. 다양성이 높은 집단에서 진화는 활발해집니다. 결국 인류의 진화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인류 집단 사이의 교류도 진화를 촉진했습니다. 원래 인류는 초기부터 끊임없이 여러 지역과 유전자를 교환했습니다. 그러다 1만 년 전에 농경이 발달하고 그 후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인류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륙을 넘나들게 됐고,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며 유전자의 다양성을 무서운 속도로 퍼뜨렸습니다.


숨막히는 다양성의 증가는 전에 없던 또다른 다양성을 낳았습니다. 지역적인 특징입니다. 최근 티베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서 고산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 돌연변이는 불과 1000년 전에 생긴 뒤 퍼져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의학의 발달도 다양성을 빚어내는 새로운 요인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살아남지 못했을 사람의 유전자도 계속 살아남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경 사회나 네안데르탈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단명했을 만큼 심한 근시인 저도, 이렇게 살아남아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다양성의 미래를 예상하며


우리는 진화는 천천히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끔 말이죠. 그런데 사실은 무서운 속도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농작물이나 가축, 애완동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불과 1만 년 이하의 짧은 시간에 놀랍도록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으니까요.


진화에서, ‘우월’과 ‘이익’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어쩌다가 갖게 된 특성(형질)이 우연찮게 바로 그 순간의 환경에 적합하다면, 그 형질은 우월하고 유리한 형질이 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특성이 전혀 다른 환경에 나타난다면, 이 특성은 오히려 불리한 특성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특성은 없으며 절대적으로 불리한 특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생물의 일종으로서 진화의 거대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진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만든 문화와 문명으로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도 절대적으로 유리하거나 우월하지 않지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위해 그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리고 다른 생물이 함께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고 가꾸는 일은 아닐까요.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미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경험이 있습니다. 미지의 대륙을 향해 폭발적으로 번져나갔고 정교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셀 수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다채로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여 줄 작은 행동들은 결코 미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wikimedia common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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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가 늘어난다?


의학이 다양성을 불러온 복잡한 사례로 사랑니(제3대구치)가 있습니다. 인류는 음식 문화를 발달시키면서 부드럽고 푹 익힌 음식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턱뼈의 크기가 줄어들었고, 이빨이 날 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덧니가 늘고 사랑니가 나올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못 나오거나 삐뚤어지게 나오는 사랑니에는 충치와 치주염이 잘 생기고, 이 염증이 몸 전체로 퍼지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사랑니가 나지 않는 게 유리합니다. 인류학자들이 옛 인류 화석을 조사해 보니, 실제로 제3대구치가 나지 않은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치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또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랑니가 문제가 되면 뽑을 수 있게 되자, 사랑니가 굳이 나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사랑니가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 '인류의 탄생'은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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