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답이 있다! 바이오재료의 세계

2015.04.07 18:00

집착을 버리면 행동이 죄에 물들지 않는다.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 바가바드 기따

 

1997년 IMF 사태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이공계가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다고 한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이공계대학 졸업생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게 주된 이유라고 하지만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이공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분야는 어디일까. 물론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재료 분야가 다섯 손가락에서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물성을 띠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에너지와 환경 등 오늘날 당면한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학술지 ‘네이처’ 3월 26일자에는 ‘바이오재료(biomaterials)’를 다룬 특집이 실렸다. 나일론처럼 인간의 상상력만으로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는 과학자도 많지만 자연에 있는 다양한 생명체가 만들어놓은 재료에서 힌트를 얻어 뛰어난 물성을 지닌 재료를 개발하려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의 비밀을 밝히고 따라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특집에는 다양한 물성을 보이는 생체물질과 이를 모방하는 연구를 주제별로 소개한 글이 다섯 편 실려 있다. 철사보다 강하다는 거미줄과 수직벽에 붙어있게 해주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빗방울이 통통 튀겨나가는 연꽃의 잎, 태풍이 와도 끄떡없이 바위를 붙잡고 있는 홍합의 족사 등 잘 알려진 것들은 물론 필자가 처음 알게 된 놀라운 물성을 지닌 천연 바이오재료도 많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바이오재료를 개발하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특집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 거미줄 어떻게 뽑느냐도 중요

 

거미줄은 강하면서도 탄성이 좋아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섬유보다도 뛰어난 물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거미줄의 비밀을 파헤치고 이를 재현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획기적인 진전은 없다.

 

누에가 만드는 실크와는 달리 거미줄은 그대로 쓸 수가 없다. 물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축화에 성공한 누에와는 달리 거미는 대량사육이 불가능하다. 영역에 민감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두면 서로 잡아먹기 때문이다. 또 살아있는 먹이만 먹는 것도 문제다. 설사 사육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거미는 보통 대여섯 가지 유형의 거미줄을 만들기 때문에 원하는 유형만 골라내는 것도 문제다. 한마디로 거미가 만드는 거미줄로는 답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거미줄(실크)단백질인 ‘피브로인(fibroin)’의 유전자를 대장균이나 염소, 담배 등 다른 생물체의 게놈에 집어넣어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럼에도 거미가 만드는 진짜 거미줄의 물성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스웨덴농업과학대 안나 라이싱 교수는 거미단백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피브로인도 어떤 식으로 엮여 섬유가 되느냐가 중요하고 역시 거미를 들여다봐야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라이싱 교수팀은 지난해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거미줄을 만들고 뽑아내는 명주샘(silk gland)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위치에 따라 물리화학적 환경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피브로인은 명주샘 안에서 용액상태로 존재하는데 거미줄로 만들어지는 통로에 따라 수소이온지수가 중성(pH7.6)에서 약산성(pH5.7)으로 떨어지고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피브로인이 가지런히 배열하면서 강력한 섬유가 만들어진다고. 따라서 이 환경을 재현한 방적 시스템을 만든다면 천연에 가까운 물성을 띠는 인공거미줄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거미 명주샘은 위치에 따라 수소이온농도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모방하면 천연 거미줄처럼 강한 거미줄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플로스 생물학 제공
거미 명주샘은 위치에 따라 수소이온농도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모방하면 천연 거미줄처럼 강한 거미줄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플로스 생물학 제공

거미줄보다는 물성이 떨어지지만 이미 인류가 대량 생산에 성공한 누에 실크도 의료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터프츠대의 생의공학자인 피오렌조 오메네토 교수팀은 누에고치로 일을 시작한다. 고치를 갈라 안에 있는 번데기를 빼내고 뜨거운 물에 넣어 당단백질을 녹여내 순수한 피브로인 섬유를 얻는다. 그 뒤 피브로인을 수용액에 녹인 뒤 약물을 섞거나 간단한 진단회로를 심은 뒤 필름 형태로 굳힌다. 이 실크 필름을 인체에 넣어주면 생분해되면서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며 결국에는 사라지고 진단이 끝난 뒤에도 별도로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 뇌에 박히면 물렁해지는 전극

 

해삼에서 영감을 얻은 재료도 흥미로운 물성을 보인다. 해저에 사는 몇몇 해삼은 평소에는 말랑말랑하지만 위협을 느끼면 순식간에 단단해진다. 그리고 천적이 사라지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해삼의 마술 같은 변신의 비밀은 섬유 단백질인 콜라겐 사이의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능력에 있다. 즉 평소 네트워크가 느슨할 때는 말랑말랑하지만 네트워크가 촘촘해지면 딱딱해지는 것.

 

 

해삼은 위협을 느끼면 피부를 굳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위 왼쪽)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말랑말랑해진다(위 오른쪽). 여기서 힌트를 얻어 건조할 때는 네트워크(빨간 선)로 단단하고(아래 왼쪽) 수분을 머금으면 네트워크가 깨져 말랑말랑해지는(아래 오른쪽) 재료가 개발돼 뇌조직에 심는 미세전극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신경공학저널 제공
해삼은 위협을 느끼면 피부를 굳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위 왼쪽)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말랑말랑해진다(위 오른쪽). 여기서 힌트를 얻어 건조할 때는 네트워크(빨간 선)로 단단하고(아래 왼쪽) 수분을 머금으면 네트워크가 깨져 말랑말랑해지는(아래 오른쪽) 재료가 개발돼 뇌조직에 심는 미세전극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신경공학저널 제공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의 제프리 카파도나 교수팀은 뇌의 대뇌피질에 이식하는 미세전극에 해삼의 전략을 적용했다. 즉 신경계 질환을 치료할 때 미세전극이 유용하지만 자칫 뇌조직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카파도나 교수팀은 해삼에 영감을 얻어 천연 셀룰로오스 섬유에 폴리비닐아세테이트라는 합성고분자를 조합한 재료를 개발했다.

 

이 재료는 건조 상태에서는 딱딱하지만 수분을 머금으면 부풀어 올라 네트워크가 느슨해지면서 물렁물렁해진다. 따라서 이 재료로 만든 미세전극을 건조한 즉 딱딱한 상태에서 뇌조직에 박으면 체액이 스며들며 물성이 바뀌어 유연해지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지난해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이 성공했고 조만간 영장류 실험을 진행한 뒤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식물도 재료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연잎 표면의 미세한 돌기 구조가 초소수성(superhydrophobicity)을 띠게 해 물에 젖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표면장력이 큰 물방울과는 달리 표면장력이 작은 기름방울은 연잎 표면에 여전히 달라붙는다.

 

표면에 미세돌기가 있는 연잎을 모방한 표면에는 표면장력이 큰 물방울이 스미지 못하고 겉돌다 떨어져나간다. 반면 표면장력이 작은 기름방울은 묻을 수 있다(왼쪽). 반면 다공성 물질에 액체가 코팅된 벌레잡이풀 잎둘레를 모방한 표면은 액체가 물과 기름 모두에 섞이지 않을 경우 둘 다 떨어져 나간다(오른쪽).  - 네이처 제공 제공
표면에 미세돌기가 있는 연잎을 모방한 표면에는 표면장력이 큰 물방울이 스미지 못하고 겉돌다 떨어져나간다. 반면 표면장력이 작은 기름방울은 묻을 수 있다(왼쪽). 반면 다공성 물질에 액체가 코팅된 벌레잡이풀 잎둘레를 모방한 표면은 액체가 물과 기름 모두에 섞이지 않을 경우 둘 다 떨어져 나간다(오른쪽).  - 네이처 제공

지난 2004년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벌레잡이풀이라는 식충식물이 벌레를 잡는 비밀을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벌레잡이풀의 잎은 길쭉한 주머니모양으로 그 안에 소화효소가 잔뜩 들어있는 액체가 담겨 있다. 개미 같은 벌레가 향기나 화밀에 이끌려 잎 가장자리에 얼쩡거리다 미끄러져 떨어지면 몸이 녹아나고 식물은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런데 이 논문이 발표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벌레가 잎 내벽의 왁스층에 왔을 때 미끄러져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벽에 왁스층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벌레를 잘 잡는 종이 발견되면서 사냥 메커니즘에 의문이 제기됐고 면밀한 조사 결과 벌레들이 주로 미끄러지는 곳이 잎 가장자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잎 가장자리 표면은 다공성 구조로 건조할 때는 미끄럽지 않지만 물이나 화밀이 채워지면, 즉 수용액 필름이 코팅되면 굉장히 미끄러워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지난 2011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벌레잡이풀에 영감을 받아 물은 물론 기름에도 젖지 않는 표면을 지닌 재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네이처’에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나노다공성 구조를 지니는 에폭시 수지 재료에 물과 기름 모두에 섞이지 않는 과불화화합물이 들어있는 용액을 채워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물은 물론 기름을 부어도 표면을 적시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그 뒤 연구자들은 SLIPS의 내구성 확보 등 상용화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해 6월 SLIPS테크놀로지라는 회사는 세웠다. 지난해 10월 SLIPS테크놀로지와 화학업계의 거인 바스프는 SLIPS가 코팅된 열가소성수지를 만들기로 계약을 맺었다.

 

● 거미줄보다 단단한 삿갓조개 이빨

 

삿갓조개의 치설에 박혀있는 이빨. 바위에 붙어있는 조류를 긁어먹는데 쓰이는 이빨은 무기유기복합재료로 거미줄보다도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삿갓조개의 치설에 박혀있는 이빨. 바위에 붙어있는 조류를 긁어먹는데 쓰이는 이빨은 무기유기복합재료로 거미줄보다도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영국 포츠머스대 연구자들은 삿갓조개의 이빨이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천연 물질보다도 강한 생체재료라는 사실을 ‘영국왕립계면학회지’ 2월호에 발표했다. 삿갓조개는 바위에 붙어사는 작은 조개류로 혀처럼 생긴 치설에 길이가 불과 0.1mm인 작은 이빨이 줄줄이 나있다. 삿갓조개는 치설을 바위에 문대 이빨로 표면의 조류(algae)를 긁어먹는다. 이렇게 돌하고 부딪치다보니 돌보다 강해져야 했던 것.

 

연구결과 삿갓조개의 이빨은 사람의 뼈처럼 유기무기복합재료임이 밝혀졌다. 즉 철광석의 일종인 침철석(goethite) 나노섬유(무기재료)가 당단백질 복합체인 키틴(유기재료)에 박혀있는 구조다. 원자힘현미경으로 인장강도를 측정한 결과 거미줄보다도 큰 값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지름이 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한 침철석 나노섬유가 고밀도로 박혀 있는 게 이처럼 높은 강도를 내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할 거리가 없어 걱정일 때는 학술지를 뒤적일 게 아니라 야외로 나가 동식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수억 년 동안의 진화가 만들어놓은 창조물들 대다수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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