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NA 결정에서 풀어낸 입체 구조

2015.03.29 18:00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of transfer RNA (tRNA) is of considerable interest in that it may provide insight into its mode of action.

전달RNA의 3차원 구조는 전달RNA의 작동 방식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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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2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김성호 교수(당시 미국 듀크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의 논문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김 교수와 동료들이 밝힌 전달RNA(tRNA)의 3차원, 즉 입체구조는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 업적으로 김 교수는 한동안 노벨상 후보 1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령RNA(mRNA)의 유전정보가 지정하는 아미노산을 싣고 와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해주는 tRNA의 구조를 밝힌 것이 이토록 높게 평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 6년 만에 이룬 결실

 

이미지 확대하기김성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최근 모습. 올해는 김 교수가 tRNA 결정을 처음으로 만든 지 40년이 되는 해다. - 김성호 교수 제공
김성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최근 모습. 올해는 김 교수가 tRNA 결정을 처음으로 만든 지 40년이 되는 해다. - 김성호 교수 제공

김 교수의 1974년 논문은 1968년 12월 20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으로 시작한 주제, 즉 tRNA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에 대한 완결판이다. 이 기간 동안 김 교수는 사이언스에 4편을 비롯, 1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과학자가 됐다. 구조생물학이란 생체분자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그 기능을 이해하는 분야로 생물학뿐 아니라, 물리학과 화학 지식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1960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물리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주제는 X선 결정학으로 탄수화물의 입체구조를 밝히는 일이었다. X선 결정학은 20세기 초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브래그 박사가 확립한 분야다. 원자나 분자가 일정하게 배열된 구조인 결정에 X선을 쪼일 때 나타나는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결정 단위나 분자의 입체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분자가 커질수록 결정을 만들기 어렵고 회절 패턴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브래그 박사조차 자신의 방법으로 거대한 생체분자의 입체구조를 밝히는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밑에서 일하던 화학자 막스 페루츠와 존 켄드루는 ‘무모한 시도’라는 브래그 박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20여년을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1960년 근육에 있는 단백질인 미오글로빈과 혈액에 있는 헤모글로빈의 입체구조를 밝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 다른 중요한 생체분자인 DNA는 1950년대 초 영국의 로잘린 프랭클린이 X선 사진을 찍었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X선 회절 패턴을 해석하는데 성공해 이중나선구조임이 밝혀졌다. 두 가지 모두 워낙 획기적인 결과였기 때문에 같은 해인 1962년 노벨 화학상(단백질)과 생리의학상(DNA)을 수상했다.

 

이미지 확대하기1. 1968년 김 교수가 처음 만든 tRNA결정 사진. 2. 여기서 얻은 X선 화절 사진. 결정의 질이 좋지 않아 구조를 해석해내지는 못했다. - 과학동아 제공
1. 1968년 김 교수가 처음 만든 tRNA결정 사진. 2. 여기서 얻은 X선 화절 사진. 결정의 질이 좋지 않아 구조를 해석해내지는 못했다. - 과학동아 제공

이제 남은 것은 RNA. DNA 정보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RNA는 3가지가 있는데 mRNA, tRNA, 리보솜RNA(rRNA)가 그것이다. mRNA는 DNA의 염기서열이 그대로 복사된 단일 가닥으로 실처럼 유동성이 큰 분자다. 따라서 단백질처럼 3차원 구조체로 존재하는 분자는 tRNA와 rRNA일 것이다. 그런데 rRNA는 수천개의 염기로 이뤄진 거대한 분자이기 때문에 결정을 만들어서 구조를 밝힌다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따라서 70~80개의 염기로 이뤄진 tRNA가 집중 표적이 됐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MIT 생물학과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들어간 김 교수도 대망을 품고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단백질과는 달리 tRNA는 결정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들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tRNA를 결정으로 만드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김성호 교수는 “결국 사람들은 뉴클레오티드를 연결하는 인산기의 음전하가 분자 표면에 분포하면서 tRNA 분자가 서로 밀치기 때문에 tRNA를 결정으로 만들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잠정 결론에 흔들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결정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그리고 마침내 tRNA 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김 교수가 X선 회절 사진을 찍기 위해 결정을 만든 과정은 염전에서 소금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바닷물을 가둬 강렬한 햇볕에 증발시키면 소금결정이 만들어진다. 단백질 역시 적당한 수용액에 녹인 뒤 물을 아주 천천히 증발시키면서 결정을 얻었다.

 

결정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김 교수는 대장균의 포르밀메티오닐(fMet) tRNA를 최대한 정제한 뒤 농축시켜 4℃에서 서서히 용액을 증발시키며 결정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2주 뒤 맨눈에도 보일만한 결정이 만들어졌다. 결정은 큰 것이 길이가 1.7mm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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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가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바로 tRNA 결정을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얻은 X선 회절 패턴도 싣고 있다. 그러나 결정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해 입체구조를 얻기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좀 더 양질의 결정을 얻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다. 다른 연구팀과 경쟁을 벌이는 상황아래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김 교수는 우연히 ‘바이러스’란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마침내 깨끗한 결정을 얻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폴리아민이란 양전하를 띠는 분자로 DNA나 RNA 같은 핵산의 음전하를 중성화해 바이러스 껍질 속에 압축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만들 때 폴리아민을 넣어줬더니 고품질의 tRNA 결정이 만들어지더군요.”

 

우연한 독서를 필연으로 만든 김 교수의 의지가 밝혀낸 tRNA의 구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였다. 즉 기역자(영어 알파벳으로는 대문자 L)처럼 중간이 꺾어진 분자로 한쪽 끝은 mRNA의 염기 세 개(코돈)와 쌍을 이루는 안티코돈이 자리 잡고 있고 반대쪽 끝은 해당 아미노산과 결합하는 부분이 위치한다. 이 결과는 1973년 1월 19일자 ‘사이언스’에 실렸고 ‘뉴욕타임스’ 1면에 보도될 만큼 화제가 됐다.

 

그 뒤 1년 반에 걸쳐 김 교수팀은 tRNA를 이루는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를 밝혀내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1974년 논문이다. 핵산의 염기는 아데닌(A)과 티민(T, DNA) 또는 우라실(U, RNA), 구아닌(G)과 시토신(C)이 수소결합으로 묶여 염기쌍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tRNA의 세부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런 형태 외의 염기쌍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tRNA의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뽑으라면 1974년 사이언스 논문을 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이전 논문들에 기초한 최종 결과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확대하기[D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DNA 유전자 정보로부터 mRNA를 거쳐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작업. 수많은 생체분자가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 일러스트 박현정 제공
[D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DNA 유전자 정보로부터 mRNA를 거쳐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작업. 수많은 생체분자가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 일러스트 박현정 제공

● 21세기 들어 리보솜 구조 밝혀져

 

tRNA 구조를 밝힌 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로 자리를 옮긴 김 교수는 관심을 RNA에서 단백질로 옮겨 1988년 암을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하나인 라스(Ras)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밝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 교수는 199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김 교수가 RNA를 계속 연구했더라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이미지 확대하기2006년에는 mRNA와 tRNA가 결합된 상태의 리보솜 입체구조가 밝혀졌다. - 과학동아 제공
2006년에는 mRNA와 tRNA가 결합된 상태의 리보솜 입체구조가 밝혀졌다. - 과학동아 제공

“노벨상을 타기 위해 연구한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아직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미개척분야에 뛰어드는 걸 즐길 뿐입니다.”

 

김 교수가 단백질 연구로 눈을 돌린 뒤 RNA 구조연구자들은 리보솜의 구조를 밝히는 대형 프로젝트에 눈을 돌렸다. 거대한 rRNA 두 분자와 수십개의 리보솜 단백질로 이뤄진 분자복합체인 리보솜은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인다. 2005년 연구자들은 리보솜 전체를 결정화해 입체구조를 밝혔다. 2006년에는 리보솜에 mRNA, tRNA가 붙어있는 상태, 즉 단백질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상태를 결정화하는데 성공해 입체구조를 규명했다. 1968년 tRNA의 결정에서 시작한 기나긴 연구의 대단원인 셈이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을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2008-2012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논문에 발표된 생명과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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