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가 말하는 사이코패스

2015.03.22 18:00

 

더퀘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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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성경이나 다름없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는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의학 진단명이 없다. DSM에 등장하는 병명 중 사이코패스와 가장 유사한 것은 반사회성 성격장애이지만 항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이코패스와는 전혀 다르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며,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사이코패스는 치밀할 정도로 계획적일 수 있고, 냉철하며 지적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인가. 사이코패스 진단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캐나다 정신과 전문의 로버트 헤어 박사의 PCR-L 테스트가 널리 쓰인다. 40점 만점에 25~30점이 일반인과 사이코패스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본다.

 

하지만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회색지대가 존재할 수 있어 단순히 기준을 넘은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잠재적 연쇄살인마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커밍아웃한, 연쇄살인마가 아닌 성공한 뇌과학자인 저자가 여기에 있다.

 

사이코패스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동료가 사이코패스라면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저서 ‘괴물의 심연’은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 밝힌 뇌과학자가 사이코패스란 무엇인지 다각도로 고찰하는 책이다.

  

● 사이코패스의 뇌는 일반인과 다른가


사이코패스라는 정식 정신의학 진단명이 없다고 해서 사이코패스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불분명할 뿐 정신의학계에서도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고, 일반인과 사이코패스를 구분 짓는 생리의학적인 특징을 찾기 위한 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뇌의 여러 곳 중 사이코패스와 관계가 깊을 곳으로 의심 되는 곳으로는 전두엽이 있다. 감정은 물론 공감능력을 일으키는 중추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전두엽의 발달이 일반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전두엽에 위치하는 후각기능 또한 사이코패스가 일반인에 못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저자 또한 1990년부터 15년간 연쇄살인자들의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관찰하며 일반인에게는 찾을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뇌에서만 볼 수 있는 ‘패턴’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2005년 뜻밖의 계기로 그 패턴이 다름 아닌 자신의 뇌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연한 일치로 웃어넘기려던 저자는 자신의 족보에 유달리 연쇄살인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평범하면서도 어떤 면에선 비범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에게 내재된 사이코패스적 성질들을 확인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만약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당신이 “사실 당신의 체내에서 악성 종양(암)이 발견됐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성피로라면 대부분 겪을 수 있는 무기력감, 소화불량, 두통 등의 증상을 암으로 인한 증상으로 착각하게 될 것이고, 당신의 머리는 암덩이 때문에 점점 더 건강이 악화되는 비관적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을 증명하는 ‘수식’을 확고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전문가들은 양전자단층촬영(PET)이나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등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관찰해 찾아낸 특정 패턴 등은 상관관계가 있을지 몰라도 인과관계는 없다고 지적한다. 사이코패스의 뇌에서 찾아낸 패턴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뇌를 놓고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하는 역(逆)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한 사진. 사이코패스의 뇌는 사회적 행동, 도덕성에 관여하는 안와피질(화살표)이 어둡게 나타난다. 이것은 해당 부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뜻한다. - 더퀘스트 제공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한 사진. 사이코패스의 뇌는 사회적 행동, 도덕성에 관여하는 안와피질(화살표)이 어둡게 나타난다. 이것은 해당 부위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뜻한다. - 더퀘스트 제공

 

 

● 당신 옆에 앉은 동료가 사이코패스라면?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주인공과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조커에 열광하는 당신. 그런데 만약 당신의 직장동료가, 혹은 직장 상사가 사이코패스라면 어떨까.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계 인구 중 2%가 사이코패스일 것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라면 2개 반에는 사이코패스가 최소 한 명이 있고, 100명이 넘는 규모의 직장에서는 두어 명이 사이코패스라는 얘기가 된다.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주변에서 발견한다면 상대에게 취약해보이지 말 것을 당부하며 최대한 ‘얽히지 말라’고 조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피상적인 매력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인 뒤 약점을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는 재능이 있다. 또 사이코패스의 복수는 무자비하기 때문에 괜한 앙심을 사서는 좋을 것이 없다고 한다.


‘괴물의 심연’은 저자가 진짜 사이코패스이든 아니든,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론적인 정보를 얻는 데 부족함이 없다. 심리학적인 개념을 늘어놓는 수준을 넘어서 책의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사이코패스들이 보이는 생리학적인 특징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어려운 뇌 관련 해부학 용어가 서슴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사이코패스에 대한 가벼운 흥미로 이 책을 선택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이코패스가 정말 사이코패스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회고하는 글은 흔치 않은 만큼 최근 대중매체에서 단골 소재로 나오는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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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코패스… 그러나 ‘조커’와는 다르다, 유전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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