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업은 인류, 등골이 휘었다?

2015.03.18 18:00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봄이 됐습니다. 학생들은 새 학년의 공부를 앞두고 설레기도 하고, 부담을 느끼기도 할 시기지요. 자기계발을 꿈꾸는 직장인이 신년 계획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기기도 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 인간은 두뇌가 뛰어난 종입니다. 공부를 통해 지혜와 지식을 배우고 전하는 전통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으로 뛰어난 두뇌를 꼽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를 진화하게 한 원동력까지 뛰어난 두뇌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최초의 특징은 머리가 아니라 다리에 있었거든요.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머리보다 다리가 뛰어났던 인류


1974년,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화석 하나가 발굴됐습니다. 발굴하던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비틀즈의 노래 ‘루시, 다이아몬드와 함께 저 하늘 위에(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화석에는 ‘루시’라는 애칭이 붙었습니다. 인류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해진 화석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지요.
 
루시는 약 330만 년 전에 살았던 종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아파렌시스 화석이 많이 발견됐는데 루시는 그 대표적인 화석이었습니다. 이 화석은 목이 없는 상태로 나왔습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오래된 인류 화석에 속했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확인하고 싶어하던 머리 크기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죠. 하지만 인류학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특성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다리였습니다.
 
과거에 살던 어떤 동물이 두 발로 걸었는지 혹은 네 발로 걸었는지는 화석으로 남아있는 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 발로 걷는 동물은 네 다리로 체중이 분산됩니다. 하지만 두 다리로 걷는 동물은 팔에는 체중이 분산되지 않아 두 다리에 힘이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체중을 받은 관절은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두 다리가 연결되는 엉덩 관절과 두 팔이 연결되는 어깨 관절의 크기를 보면, 그 종이 생전에 몇 개의 다리를 써서 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초기 인류 화석으로 남아있는 어깨 뼈를 확인해 봤습니다. 과연 크기가 작았습니다. 체중을 지탱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엉덩 관절과 무릎 관절이 커졌습니다. 모양도 변해서, 무릎 관절은 평평하고 튼튼해졌고, 엉덩 관절도 움푹 패인 모양이 됐습니다. 웬만해서는 관절이 빠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반면 어깨 관절은 그런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체중이 두 다리로 분산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두 발로 서 있는 것과 다릅니다. 걸을 때 한 발에 온몸의 체중을 모두 받아야 하니까요. 한쪽 다리에 가해진 체중은 마지막에 엄지 발가락까지 전해진 뒤에야 다른 쪽 다리로 옮겨집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엄지 발가락은 발가락 중에서 가장 크고 튼튼해졌습니다.
 
루시가 두 발로 걸었다고 발표한 것은 고인류학자 오웬 러브조이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와 팀 화이트 미국 UC버클리 교수입니다. 특히 러브조이 교수의 1981년 사이언스 논문은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미 1979년에 영국의 고인류학자 매리 리키 박사가 탄자니아의 래톨리 지역에서 화산재 위로 걸어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직립보행을 했다는 분명한 증거 같았지만, 학계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논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여기에 루시 연구가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인류학자들은 그 뒤로도 약 20년 동안이나 머리가 먼저인지 다리가 먼저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인간다움’이 머리 끝이 아닌 발끝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두 발 걷기가 우선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요통의 기원 두 발 걷기

 

두 발로 걷는 일에는 대가가 필요했습니다. 통증입니다. 두 발로 걸으려면 몸통이 항상 곧추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체중의 상당 부분이 허리뼈와 골반에 몰리게 됐습니다. 이 무게는 다시 두 다리에 몰리게 됐고, 특히 걸을 때는 하나의 다리에 한꺼번에 몰리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허리와 무릎, 엉덩 관절은 끊임없이 몸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형벌 아닌 형벌을 받게 됐습니다. 인간이 유독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고통 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위키미디어 제공
위키미디어 제공

더군다나 여자들의 허리는 남자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짐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자는 일생의 대부분을 임신을 하거나 젖먹이를 안은 상태로 보내야 했습니다. 어른이 되자마자 쉴 새 없이 임신과 육아를 반복하면서 다섯이나 여섯, 많게는 열두 명의 아이를 낳았죠. 갱년기를 지나 할머니가 돼서는 손주를 안아줘야 했습니다. 허리와 다리에는 더 큰 무리가 갔습니다.
 
심장도 피로해졌습니다. 네 발로 걷는 짐승은 심장이 몸 위쪽에 있습니다. 온 몸 구석구석으로 피를 보낼 때 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손쉽습니다. 예외적으로 목길이가 2m에 달하는 기린이 있지만, 대신 머리가 몸에 비해 유별나게 작고 심장은 커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두 발로 서는 바람에 심장의 위치가 네발동물보다 낮아졌습니다. 겨우 몸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게 됐죠. 그 결과 머리는 물론이고 가슴과 어깨, 양 팔이 모두 심장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됐습니다. 심장은 이제 몸 위로 상당량의 피를 올려 보낼 의무가 생겼고, 과거보다 훨씬 큰 부담을 졌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두뇌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커서, 기린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피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전체 에너지의 최고 50%까지 두뇌 혼자 소모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이제 인간의 심장은 가장 많은 피를 가장 높은 곳까지, 중력의 방향을 거슬러가며 쉴 새 없이 올려 보내게 됐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지푸스와도 같습니다. 끝도 없이 피를 몸의 꼭대기로 퍼올렸습니다. 언제 백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심장과 관련한 사망률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발 걷기는 출산의 고통도 늘렸습니다. 인간은 아기 때부터 머리가 큽니다. 머리가 큰 태아가 빠져 나오려면 어머니의 골반은 그만큼 넓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두 발로 걸으려면, 골반은 좁을수록 좋거든요.
 
양쪽 엉덩 관절의 폭이 좁고 가까워야 뒤뚱거림도 줄어들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양쪽 엉덩 관절이 서로 가깝다는 것은 골반이 그만큼 좁다는 뜻입니다. 골반이 만들어 내는 산도(아기가 태어나는 길)도 그만큼 좁아지죠. 그런데 태어나는 아기의 머리는 평균적으로 산도의 너비보다 큽니다. 그래서 출산을 할 때면 어머니의 골반이 통째로 벌어지는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생 뼈가 갈라지는 출산의 고통은 상당 부분, 인류가 두 발로 걸으며 지불한 대가입니다.

 

○ 침팬지도 두 발로 걷는데?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인간 말고도 두 발로 걷는 짐승들은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릴라와 침팬지, 그리고 좀 다르지만 새도 두 발로 걷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달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새는 날 수 있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라도, 펭귄은 물 속에서 긴 시간 헤엄칠 수 있습니다. 침팬지와 고릴라는 네 발로도 걸을 수 있으며, 나무를 타거나 가지에 매달려서 두 팔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것 외에는 다른 이동 방법이 없습니다. 고릴라처럼 네 발로 길 수 있다고요? 아마 몇 m 못 가서 허리를 펴며 두 발로 일어나야 할 겁니다. 진정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 인류 문명은 요통의 대가


두 발 걷기가 인류에게 고통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류는 두 발 걷기 덕분에 다른 ‘인간다움’의 특성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바로 문명입니다. 두 발 걷기는 손과 팔을 보행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자유로워진 손과 팔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윗몸도 함께 보행에서 해방됐습니다. 그 결과 횡격막이 자유로워졌고,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게 됐습니다. 목소리는 언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구와 언어라는, 인류 문화와 문명의 토대가 완성됐습니다.
 

에디오피아에서 발굴된 170만년 전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 - 위키미디어 제공
에디오피아에서 발굴된 170만년 전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 - 위키미디어 제공

두뇌가 커진 것도 역시 걷기 덕분입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려면 뛰어난 지능이 필요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만큼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해도 지능이 필요하고, 이는 곧 큰 두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두뇌는 그냥 커질 수 없습니다. 두뇌는 지방으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고지방, 고단백의 식생활이 필수입니다. 이런 식생활은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정기적으로 확보하고 섭취한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모든 게 두 발로 걸은 이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뤄진 일입니다.
 
두 발로 걸으면서 인류는 문화와 문명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요통과 심장병, 그리고 출산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문명을 위해 묵묵히 희생한 허리와 심장을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라도 켜 보세요. 그리고 일어난 김에 어머니께 감사의 문자 메시지라도 하나 보내드리면 어떨까요. 여러분을 낳으신 고통과 맞바꾼 덕분에 얻은 문명의 이기, 휴대전화로요.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미국 UC리버사이드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을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12-2013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식인종, 최초의 인류, 호빗 등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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