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부터 대기업까지 ‘린스타트업’… 한국 산업계 新화두로

2013.04.25 14:44


[동아일보] “실패까지도 소중한 자산” 창조경제 바이블로 떠올라

삼성전자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국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주제 제한은 없었다. 평소 생각했던 어떤 사업 아이템이라도 내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들은 1차 사업성 분석을 거쳐 이달 중 전체 임직원 투표를 통해 최종 한두 개, 많아야 서너 개가 선발된다. 이 아이디어들은 1년간 창의력(creativity) 연구소라는 뜻으로 새로 만든 조직인 ‘C-랩’에서 실제 사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일종의 자회사가 되는 셈이지만 제약이 있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기한은 최대 1년이다. 하지만 시제품을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용인된다. 몇 차례씩 만들어 보고 결과물을 다듬되, 그 과정을 빠르게 하라는 뜻이다.

○ 벤처부터 대기업까지 린스타트업

NHN도 최근 이런 식으로 캠프모바일이란 자회사를 분사시켰다. 모바일 사업만을 떼어내 기존의 네이버, 한게임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사업을 하는 회사를 세운 것이다. C-랩과 캠프모바일은 모(母)기업과의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큰 회사들이 조직을 별도로 떼어내는 건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급변하기 때문에 혁신의 속도도 빨라져야 한다. 그런데 기존 조직을 빠르게 바꾸다 보면 새 사업이 현재의 사업을 위협할 수 있어 위험하다. 이른바 ‘혁신가의 딜레마’라는 문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론으로 ‘린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미국의 벤처기업가 에릭 리스가 쓴 같은 이름의 책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실리콘밸리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11월 국내에 번역된 뒤에는 국내 벤처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임직원과 벤처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미국에서는 HP, 인투이트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람 캠프모바일 대표는 “분사를 준비할 때 린스타트업 책을 추천받아 처음 펼쳐든 자리에서 다 읽었다”며 “NHN의 사업과 충돌할 수 있는 사업까지도 벌여보자는 생각으로 캠프모바일을 만들었는데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서 이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본앤젤스의 강석흔 이사는 그래프 한 장을 스마트폰에 넣어 다닌다. 린스타트업에 나오는 ‘코호트(cohort·동질집단) 분석’이라는 그래프다. 그는 “우리가 투자한 벤처기업들에 코호트 분석을 활용해 사용자가 급증해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고객만 따로 떼어내 봐야 한다는 현실을 설명하곤 한다”며 “벤처업계에서 이 책은 ‘바이블’로 여겨진다”고 귀띔했다.

○ 어떻게 활용하나

전자책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 리디북스는 최근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사업에 활용해 작은 성공을 거뒀다. 이 회사가 지난달 선보인 ‘스토리홀릭’이란 전자책 앱(응용프로그램)은 ‘덕혜옹주’, ‘7년의 밤’ 같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하는데 지난달 말 선보인 지 약 2주 만에 2만 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이 앱을 내려받은 사용자 가운데 85% 이상이 거의 매일 이 앱으로 전자책을 읽는다.

리디북스는 전자책 시장에서는 교보문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국내 전자책 시장 자체가 성장이 정체돼 고민 중이었다. 그때 이 회사는 린스타트업의 방법론에 따라 가설을 세웠다. 사람들이 전자책을 읽지 않는 건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읽을 만한 콘텐츠가 없어서란 것이었다.

그래서 한때 베스트셀러였지만 발간 후 시간이 지나 거의 팔리지 않는 소설의 작가들과 협의해 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리디북스란 생소한 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하기 싫어하는 소비자의 거부감을 감안해 로그인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재사용률이 높아졌고 전자책 선호도도 함께 상승했다. 스토리홀릭 앱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주였다.

○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해법

린스타트업은 이렇게 가설을 세우고 시제품을 빨리 만든 뒤 시장에서 고객 반응을 측정해 교훈을 얻는 방법론이다. ‘만들기-측정-학습’이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마치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생산 과정에서 끊임없이 현장 엔지니어의 작업 개선을 독려하는 것과 비슷하다. 도요타는 이를 ‘린 제조방식’이라 부르는데 린스타트업은 이를 벤처기업 경영에 도입한 것이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모두 린스타트업에 열광하는 건 한때 세계 기업들 사이에서 도요타의 생산 방식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었던 것과 흡사하다. 도요타 생산 방식이 인기를 끈 것은 도요타가 거대한 생산라인 대신 소규모 기술자로 구성된 작은 팀을 여러 개 만들어 수요가 변할 때마다 적시에 특정 차종의 생산을 빠르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다이어트 앱 ‘눔 다이어트코치’를 만든 눔의 정세주 대표는 “린스타트업은 실패 확률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다만 빠른 대응에만 집착하다 큰 목표를 잊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린스타트업 ::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경영 방법론.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가 에릭 리스가 도요타자동차의 ‘린 제조’를 벤처 경영에 접목해 소개하면서 확산됐다.

김상훈·김지현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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