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의 유전자를 찾을 수 있을까

2015.02.11 18:00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피부색은 인류학 역사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오랫동안 피부색은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등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이었죠.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피부색이 자외선의 강도와 관계가 있을 뿐 특별한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자외선이 강한 지역과 약한 지역의 피부색이 다릅니다. 자외선을 많이 받는 곳에 사는 사람은 검은 편이고 적게 받는 곳의 사람은 흽니다.
 
그러니까 피부색은 환경에 맞춰 적응한 결과일 뿐, 특별한 요인은 아닙니다. 더구나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서로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피부색을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필요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피부와 관련한 미스터리는 다 풀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하고 다양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알고보면 인류는 ‘솜털’복숭이
 
포유류가 털을 가진 것은 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털은 치명적일 수도 있는 자외선과 주변의 나뭇가지, 기상현상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합니다. 또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이로써 주위 온도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이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피부는 아주 이상합니다. 털로 덮이지 않은 맨들맨들한 피부를 갖고 있는데, 포유류 중 이런 동물은 거의 없습니다. 굴 속에서 일생을 보내느라 햇빛을 보지 않는 설치류 정도가 있을까요. 햇빛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동물 중 털이나 깃털로 온몸이 덮여 있지 않은 것은 인간뿐입니다.
 
인류가 정말 피부에 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몸집이 비슷한 다른 포유류와 비슷한 수의 모공을 갖고 있으며, 털도 비슷하게 나 있습니다. 다만 짧고 연한 색깔의 솜털로 바뀌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인간은 털의 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털의 종류가 바뀌어서 맨몸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인류의 털이 솜털로 바뀌었을까요. 고기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게 돼서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초식을 하던 초기 인류는 250만 년 전부터 고지방, 고단백 음식에 맛을 들였습니다. 다른 짐승들이 먹고 난 찌꺼기인 뼈를 깨서 그 안에 있는 골수를 먹는 정도였지만, 그 덕분에 두뇌와 몸집이 커지면서 제대로 된 돌 도구를 이용해 사냥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인류의 탄생 ④] 아이 러브 ♥ 고기 참조).
 

낮잠을 자는 사자. 대부분의 포유류는 긴 털로 자외선과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운 지역의 사자는 낮에 사냥을 포기해야 했다. - istockphoto 제공
낮잠을 자는 사자. 대부분의 포유류는 긴 털로 자외선과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운 지역의 사자는 낮에 사냥을 포기해야 했다. - istockphoto 제공

털을 가진 짐승은 주로 초저녁과 아침에 사냥을 합니다.
 
사자를 생각해 보세요. 숫사자의 멋진 갈기와 윤기가 흐르는 털이 떠오를 겁니다. 보기엔 폼나지만 이런 몸으로 대낮에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모피를 입고 한낮의 여름 아프리카를 뛴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더워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맹수들은 한낮이면 체온을 발산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뜨거운 호흡을 계속 내쉽니다. 말복더위에 축 늘어져서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고 있는 개처럼요.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해도 힘든데, 시속 65km의 속도로 힘껏 달려 도망가는 영양을 뒤쫓아가 잡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바로 이 때, 맹수들이 움직이지 않는 대낮을 노려 사냥감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마저 온몸이 털로 덮여 있다면 어떨까요. 사자와 똑같이 대낮에는 맥도 못추고 그늘부터 찾아 쉬어야 했을 것입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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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몸 인류와 검은 피부의 탄생
 
이런 상황에서 털이 없는 맨몸이 처음 나타난 것은 아마 우연한 돌연변이 때문일 겁니다. 이 돌연변이를 지닌 인간은 맨몸에 난 땀을 증발시켜서 뜨거운 체열을 발산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대낮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뭐든 장점이 생기면 예기치 못한 단점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게 되면서 인간은 물에 그만큼 많이 의존하게 됐습니다. 건조화가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마실 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물이 행동반경 내 어디에 있는지가 대단히 귀중한 정보가 됐죠. 물은 계절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계절에 따라 바뀌는 정보(기억)를 저장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도 중요해졌습니다. 또 자주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나오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도 중요해졌습니다.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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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있는 동물의 피부는 흽니다. 털이 가려주기 때문에 굳이 다른 색을 띌 이유가 없어서지요. 그런데 털이 없어지자 이 흰 피부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자외선은 피부암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체내의 엽산을 파괴해 기형 태아를 낳을 확률을 높입니다.
 
따라서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다면 진화에서 매우 유익했을 것입니다. 체내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멜라닌 색소입니다. 인체의 멜라닌 색소는 특수한 세포가 생산합니다. 멜라닌 색소가 많아지면 피부색도 검어집니다. 그러니까 인류는 털과 땀을 맞바꾼 후에는 검은 피부가 있어야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맨피부를 지닌 최초의 인간은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인간은 모두 흑인종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전세계인의 피부색은 검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들은 피부색이 옅어졌습니다. 백설공주의 흰 피부는 왜 생겼을까요.
 
● 다시 흰 피부를 되찾다
 
인류는 가장 햇살이 뜨거운 적도 지방에서 전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햇살이 덜 뜨거운 북쪽 지방에까지 퍼져 살게 됐습니다. 특히 인류가 전세계로 퍼져 나간 시기는 빙하기가 반복되던 때입니다. 빙하기 동안에는 구름 낀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에 햇빛을 보기 힘들죠. 햇빛을 보기 힘들면 자외선을 차단할 필요가 없고, 멜라닌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멜라닌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에 피부가 하얗게 된 것은 아닙니다. 멜라닌이 필요 없어졌다고 꼭 피부색이 옅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피부색이 검어도 그만, 옅어도 그만이라면 말입니다.
 

지구의 자외선 강도와 비타민 D 합성 가능성을 나타낸 지도. 적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는 강한 자외선이 일년 내내 내리쬔다. 온대 지역(빨강~ 초록)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 기간이 1년에 한 달 정도다. 냉대 지역(회색)에서는 일년 내내 부족하다. 자외선이 내리쬐는 정도는 그 지역 원주민의 피부에서 나타나는 멜라닌 농도와 대략 일치한다. - 이상희 교수 제공
지구의 자외선 강도와 비타민 D 합성 가능성을 나타낸 지도. 적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는 강한 자외선이 일년 내내 내리쬔다. 온대 지역(빨강~ 초록)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 기간이 1년에 한 달 정도다. 냉대 지역(회색)에서는 일년 내내 부족하다. 자외선이 내리쬐는 정도는 그 지역 원주민의 피부에서 나타나는 멜라닌 농도와 대략 일치한다. - 이상희 교수 제공

하지만 피부색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멜라닌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오히려 멜라닌이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데, 우리 몸에는 약간의 자외선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몸에서 유일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비타민 D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비타민 D는 칼슘 흡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없으면 칼슘이 흡수되지 않아 뼈가 물렁해지고 형태가 일그러집니다. 부족한 시기가 길어지거나 성장기 중요한 때에 겪으면 구루병이 됩니다.
 
물론 뼈가 튼튼하지 않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나 가임기 여성의 뼈에서 형태가 일그러지면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나오는 골반뼈입니다. 산모와 아기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세 앞에서 인류는 다시 멜라닌이 없는 흰 피부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발견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입니다. 1999년에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자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이어 흰 피부를 결정하는 유전자, 검은색을 만드는 또다른 유전자 등 지금까지 12개 이상의 유전자가 우리 몸의 색깔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백설공주의 눈처럼 흰 피부를 만드는 것도 이 유전자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유전자들의 분포는 대륙마다 다릅니다. 검은 피부는 적도를 따라 나타나지만, 서태평양에서 사는 폴리네시아인과 적도권 아프리카인들의 피부색은 채도와 명도가 다릅니다. 둘 다 흰 피부를 만드는 유전자지만, 북서 유럽인들의 피부색 유전자와 동북 아시아인들의 피부색 유전자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위도에 살아도 얼마나 오래 전에 이주한 집단이냐에 따라, 그리고 평소 비타민 D를 음식으로 얼마나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차단만 한다고 되는 건 아냐

 

동아일보 제공
동아일보 제공

한동안 일광욕이 인기 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외선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외선 차단제 사용이 널리 늘고, 일광욕을 즐기던 사람들은 피부암을 걱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에는 자외선 차단제의 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보건당국은 비타민 D 부족증이 위험한 상태에 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자외선 차단이 원인입니다. 우유, 계란 등 식료품에 비타민 D를 첨가하기 시작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가 적당한 선인지를 알기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미국 UC리버사이드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을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12-2013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식인종, 최초의 인류, 호빗 등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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