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병원이 나쁘다니…

2015.01.27 18:00

얼마 전 트위터에서 의학칼럼니스트를 자칭하는 분이 올린 글을 읽었습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내용이었지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팔로우를 하고 올라오는 글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꾸준하게 상식과 어긋나는 글을 올리더군요. 작년에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라는 책입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건강 부문 베스트 셀러에도 올라와 있더군요. 이제부터 이야기하겠지만, 아주 어리석을 뿐더러 독자에게 위험을 끼칠 수도 있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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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에 어긋나면 일단 의심


저자는 이 책,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계속해서 ‘병원에 가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조기에 질병을 찾아내 미리 치료한다는 거짓에 속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접했을 때는 ‘오오, 그동안 내가 속고 있었다니!’가 아니라 ‘이게 정말일까? 무슨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게 정석입니다. 특히 건강 분야의 책 중에는 사이비가 매우 많습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어떤 점을 짚어봐야 하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먼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봅니다. 법학을 공부한 뒤 신문사를 거쳐 시민단체와 정당에서 활동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약력에 따르면 의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문성이라는 면에서 점수를 깎아야겠습니다. 의학 논문 및 전문 서적을 탐독하며 공부했다고 하지만, 비전문가가 전공 분야 논문을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학 기자인 저도 혼자서는 논문을 소화하지 못해 수시로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논문을 읽어 냈다고 해도 어떤 맥락에서 나온 논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학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한데, 잘 모르면 엉뚱하게 인용하기 쉽습니다.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논문의 한 구절을 침소봉대해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건 사이비 과학책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그러면 저자의 주장을 몇 개 인용해 보겠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의 방사선은 생명체에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공으로 합성해 낸 이온화된 방사선은 생명에 치명적입니다.”


“계곡물, 지하수 등 천연물은 각종 질병을 치료해 주지만 중금속 등으로 오염된 물, 변형된 산성수 등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H2O(일산화이수소, DHMO)는 물이 아닙니다. H2O에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것이 천연물이지요.”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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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백신이 위험합니다. 중금속이나 합성화학물질로 만들어진 백신이 아니라 면역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을 한다면 이런 주장이 어처구니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방사선은 천연이고 합성(?)이고를 떠나 세기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지는 것이고, 정의에 따르면 H2O는 미네랄이 안들어 있어도 물입니다. 백신을 거부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고요.
 
저자는 “교통 사고를 당한 뒤 비염, 오십견, 습진, 빈혈, 신부전증, 당뇨병 등에 시달렸지만, 약과 가공식품, 희석식 소주, 치약 등을 중단하고 천연 음식, 천연 소금, 지하수 등을 섭취하니 모든 질병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거부하고 천연 물질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주의에 빠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병원을 끊은 뒤 질병이 나았다고 해서 그게 인과관계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와 ‘병이 나았다’는 단순한 상관관계일 뿐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병이 나았다’와 같은 인과관계와 다릅니다.
 


● 그래도 현대의학만 한 게 있나


건강 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를 했더니 건강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원리로 병이 나았는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합니다. 경험을 들먹이며 몇 가지 사례를 과장합니다. 주류 의학계의 반박을 받으면 ‘박해를 받으며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순교자’라고 호소합니다. ‘현대의학이 완벽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도 단골입니다.
 
또한, ‘천연’, ‘해독’이나 ‘디톡스’, ‘인체의 자연치유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이 책의 저자도 “수술, 항암제, 방사선을 중단하고 천연 음식, 천일염, 지하수 등과 침, 뜸을 이용해 햇빛을 적절하게 쬐고 가벼운 운동을 곁들이면 모든 암은 쉽게 치료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가 없던 시절, 자연이 더 깨끗하던 시절에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죽었습니다. 다른 원인이 있었을까요? 영양부족? 낮은 위생 수준? 그런 게 다 현대의학 덕분에 개선된 게 아니던가요?
 
마지막으로 ‘심리학의 오해’라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심리학에 대한 책이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기억나는 내용이 하나 있는데, ‘단일경험은 과학적으로는 가치가 없다’입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앞으로 연구해볼 사안은 될지언정 그 자체로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교하게 설계한 실험과 수많은 통계가 있어야 과학적인 사실 하나가 바뀔까 말까 합니다. “내가 병원을 끊고 병이 나았다” 고 해서 다른 사람보고 병원에 가지 말라는 건 매우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책에도 무책임한 주장만 잔뜩 있을 뿐 정작 출처와 근거가 아주 부실합니다. 현대의학이 100% 완벽하지는 않아도 아직 이보다 더 나은 도구는 없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갑시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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