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2회]

2014.12.29 18:00

2014년은 국내외에서 유난히 사고가 많은 해였다. 보통 연말이면 한 해가 가는 게 아쉬울 법도 하지만 올해는 더 이상 사고 없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4년 타계한 과학자 가운데도 사고나 스캔들로 인한 죽음이 있었다.

 

에이즈 분야의 석학인 네덜란드의 욥 랑게 교수는 지난 7월 17일 호주에서 열리는 국제AIDS학회에 가는 길에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비행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30년 전 호메오박스를 발견한 스위스의 저명한 발생학자 발테 게링 바젤대 교수도 그리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한편 줄기세포 분화의 대가인 일본의 사사이 요시키 박사는 젊은 과학자의 논문 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8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 발터 게링 (1939. 3.20 ~ 2014. 5.29)

기형 초파리의 비밀을 푼 발생학자 

 

발터 게링 - 바젤대 제공
발터 게링 - 바젤대 제공

머리에 다리가 달리고 날개가 네 장인 초파리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좀 징그럽다. 이런 기형 초파리들을 갖고 20여년을 씨름하다 마침내 발생의 결정적인 비밀을 밝혀낸 스위스 바젤대의 발터 게링(Walter Gehring) 교수가 그리스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게링은 1965년 취리히대에서 동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저명한 발생유전학자인 에른스트 하돈 교수였는데, 당시 초파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때 게링이 연구주제로 받은 초파리가 바로 더듬이가 날 자리에 다리가 난 변이체였다.

 

그런데 이런 형태는 일반적인 기형과는 좀 다르다. 즉 보통 기형은 불완전한 기관이나 조직이 생긴 결과이지만 이 경우는 완벽한 다리가 다만 엉뚱한 자리에 위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사 인부의 잘못이 아니라 설계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안테나페디아(antennapedia)’, 즉 더듬이(antenna) 자리에 발(pedia)이 달렸다는 뜻으로 이름지어진 이 변이체처럼 멀쩡한 기관이 엉뚱한 자리에 나타나는 변이체들은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 변이가 생긴 결과임이 알려져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를 호메오유전자(homeotic gene)라고 불렀다. 호메오란 그리스어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게링 교수는 호메오유전자의 변이가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위치가 아니라 발현패턴을 조절하는 부분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가정했다. 그 결과 엉뚱한 자리에서 기관이 발생했다는 것. 게링 박사는 미국 예일대로 건너가 당시 막 개발되던 분자생물학 기법을 배운 뒤 1972년 스위스 바젤대 생명과학센터 교수로 부임해 본격적인 유전자 사냥에 들어가 1983년 마침내 안테나페디아 유전자를 찾았다.

 

안테나페디아는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 유전자였다. 그런데 이 유전자 중간에 여러 유전자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염기 180개(아미노산 60개)로 이뤄진 부분이 존재했다. 훗날 ‘호메오박스(homeobox)’라고 명명된 이 부분은 표적이 되는 DNA의 특정 염기서열에 달라붙어 발현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초파리는 호메오유전자 8개가 3번 염색체에 나란히 배열돼 있는데 놀랍게도 초파리 배아가 발생할 때 발현되는 공간적 순서와 일치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원래 안테나페디아 유전자는 두 번째 가슴체절에서만 발현돼 날개와 두 번째 다리쌍발생에 관여하는데, 변이체는 머리에서 발현돼 더듬이 대신 다리가 난 것.

 

 

대표적인 호메오유전자 돌연변이체들. 더듬이가 날 자리에 다리가 달린 안테나페디아(오른쪽 위)와 날개가 넷 달린 변이체(오른쪽 아래). - 칼텍 제공
대표적인 호메오유전자 돌연변이체들. 더듬이가 날 자리에 다리가 달린 안테나페디아(오른쪽 위)와 날개가 넷 달린 변이체(오른쪽 아래). - 칼텍 제공

 

 

호메오유전자는 초파리(곤충)뿐 아니라 개구리(양서류), 쥐(포유류)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할 수 없어 게링 교수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마이클 리바인 교수가 미국 버클리 캐릴포니아대로 부임하자 이 임무를 맡겼다. 예상대로 사람에서도 호메오유전자가 존재했다. ‘사이언스’ 7월 18일자에 부고를 쓴 사람이 바로 리바인 교수다.

 

게링 교수는 멘토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을 길러냈다. 199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위샤우스와 크리스티안네 뉘슬라인-폴하르트도 박사후연구원으로 그의 실험실에서 일하며 아이디어를 키웠다. (게링 교수의 삶과 업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11년 4월호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20: 1984년 발터 게링 교수의 호메오박스 발견’ 참조)

 


8. 욥 랑게 (1954. 9.25 ~ 2014. 7.17)

에이즈 치료제 개발과 보급을 이끈 의학자

 

욥 랑게. - AIGHD 제공
욥 랑게. - AIGHD 제공

지난 3월 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를 떠나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진 뒤 네 달만인 7월 17일, 이번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쿠알라룸프르를 거쳐 서호주 퍼스로 가려던 역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친 러시아 우크라이나 반군이 쏜 것이 확실시되는 포탄에 맞아 격추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탑승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국제AIDS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여객기에 오른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이 여섯 명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2002~2004년 국제에이즈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저명한 과학자 욥 랑게(Joep Lange)도 포함돼 있었다. 환갑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1954년 네덜란드 뉘벤하겐에서 태어난 랑게는 1981년 암스테르담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초 에이즈가 등장으로 인류 보건에 위기가 닥쳤을 때 레지던트였던 랑게는 에이즈 치료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에서 p24라는 바이러스 단백질의 수치가 높을 경우 면역결핍으로 인한 에이즈 증상이 임박하다는 징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항바이러즈제 같은 약물치료를 통해 바이러스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는 것.

 

1990년대에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 세 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용할 때, 즉 칵테일 요법이 바이러스 퇴치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린 에이즈는 적어도 선진국에서 당뇨 같은 만성병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랑게는 에이즈가 국가적 재난이 되고 있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도 의료혜택을 볼 수 있게 노력했다. 지난 2001년 비영리단체인 ‘팜액세스재단(PharmAccess Foundation)’을 설립해 지원금을 모아 아프리카 나라들에 약품을 보급해왔다. 랑게는 신도 버린 이들 나라에 대해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기를 촉구했다.

 

“아프리카 오지 어디에서도 코카콜라나 맥주를 구할 수 있다면, (에이즈) 치료제에 대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9. 피터 말러 (1928. 2.24 ~ 2014. 7. 5)

새의 지저귐에서 사람의 말을 들은 동물행동학자

 

피터 말러. - 록펠러대 제공
피터 말러. - 록펠러대 제공

자신의 천직을 찾게 되는 계기도 가지각색인 것 같다. 1928년 영국 슬라우에서 태어난 피터 말러(Peter Marler)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의 숲을 조사하다가 되새의 지저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결국 나무에서 나무에 사는 새로 관심을 옮긴 말러는 케임브리지대에서 되새의 노래 레퍼토리를 밝힌 연구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교수 제의를 받은 말러는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다. 말러는 동물행동학을 개척했는데 특히 동물들의 의사소통에 관심이 많았다. 새들의 지저귐의 경우 어디까지가 본능으로 주어진 것이고 학습과 모방을 통해 얼마나 발전될 수 있는지 조사했다.

 

말러는 이런 본성과 양육 측면이 실은 ‘배우고자하는 본능’이라고 해석하며 이는 사람이 학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즉 동물이라고 해서 먹이 같은 보상을 줄 때만 배우려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말러는 영장류도 연구했는데 우간다에서는 콜로부스원숭이를, 탄자니아에서는 제인 구달과 함께 침팬지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했다. 그는 침팬지의 신호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인간의 언어와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의 지저귐과 사람의 말이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주장했다.

 

말러는 1966년 록펠러대로 자리를 옮겼고 1972년 부설 생태학/동물행동학현장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기도 했다. 1989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로 자리를 옮긴 말러는 1994년 은퇴했다.

 


10. 마틴 펄 (1927. 6.24 ~ 2014. 9.30)

기본입자인 타우렙톤을 발견한 물리학자

 

마틴 펄. - Linda Cicero/스탠퍼드대 제공
마틴 펄. - Linda Cicero/스탠퍼드대 제공

2012년 힉스보손의 존재가 실험으로 확증되면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이루는 17개 기본입자가 완결됐다. 소립자 동물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백 가지 입자가 발견됐지만 이 가운데 기본입자는 불과 한 주먹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다’는 의미의 원자(atom)가 기본입자인줄 알았다가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뤄져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물리학자들은 이들을 기본입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양성자와 중성자 역시 쿼크라는 기본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게 밝혀졌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기본입자는 쿼크 6종, 전자를 포함해 렙톤 6종,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보손 4종, 그리고 힉스보손이다.

 

기본입자 가운데 쿼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렙톤인 뉴트리노는 거의 감지하기 어렵고 게이지보손 3종과 힉스보손은 수명이 찰나의 순간이다. 전자와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 두 종만이 그 자체로 안정하게 존재하는 흔해빠진 기본입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부분 1세대 물질, 즉 업쿼크와 다운쿼크의 조합인 양성자(2+1)와 중성자(1+2), 전자와 전자뉴트리노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2세대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참쿼크와 스트레인지쿼크, 뮤온과 뮤온뉴트리노다. 그런데 1975년 미국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의 물리학자들이 전자-양전자 소멸 실험을 통해 새로운 렙톤이 만들어진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실었다. 그리고 1979년 마침내 이 입자가 3세대 물질의 한 구성원인 타우(tau)로 확증된다. 그 뒤 타우뉴트리노와 탑쿼크, 바텀쿼크가 발견되면서 3세대 구성원이 완성됐다.

 

1970년대 타우렙톤 발견 실험을 이끈 마틴 펄(Martin Perl)은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태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물리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가족들뿐 아니라 그 역시 ‘물리학자로 먹고 살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폴리테크닉대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뒤 제너럴일렉트릭에 취직했다.

 

직장에서 TV나 라디오에 쓰이는 전자진공관을 개발하는 업무를 하던 펄은 그 원리가 궁금해 근처 대학에서 물리학 강좌를 수강했다. 결국 자신이 진정 관심을 갖는 분야가 무엇인지 깨달은 펄은 1950년 회사를 그만두고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194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이시도어 라비 교수 밑에서 학위를 마친 펄은 미시건대에서 근무하며 입자충돌실험을 구상한다. 그리고 1963년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에 들어가 이를 실행에 옮긴 것.

 

펄이 타우를 발견하기 전까지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전자와 뮤온 그리고 각각의 뉴트리노, 즉 네 종이 렙톤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타우는 질량이 전자의 3477배나 되는 무거운 입자(양성자의 거의 두 배)로 매우 불안정해 수명이 2.9×10-13초에 불과하다. 타우를 발견한 업적으로 펄은 뉴트리노를 검출하는데 성공한 프레더릭 라이네스와 함께 199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펄 교수의 1997~2001년 박사과정학생이었던 프린스턴대의 발레리 헤일요 박사는 ‘네이처’ 12월 18일자에 실린 부고에서 펄 교수가 명예나 지위, 존경을 결코 추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설명할 때 늘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고 한다.

 

“난 운이 좋았는데…”

 


11. 앨리슨 두프 (1954 ~ 2014.10.24)

새 노래의 신경과학을 연구한 정신과 의사

 

앨리슨 두프 - UCSF 제공
앨리슨 두프 - UCSF 제공

한 때는 효율적인 업무스타일을 뜻했던 멀티테스킹이 이제는 산만한 정신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전락한 듯하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멀티테스킹을 한다는 건 결국엔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24일 한창 때인 6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앨리스 두프(Allison Doupe)는 주식 그래프를 수시로 체크하며 업무를 보는 것 같은 평범한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고도로 전문적인 직업 두 가지를 병행하는 삶을 살았다. 즉 동물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이면서 정신과 임상의로도 활동했다.

 

195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두프는 맥길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과정을 하면서 의학대학원도 다녔다. 그 결과 이학박사학위와 의학박사학위를 거의 동시에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조류신경생물학자인 마크 코니시의 실험실에서 5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두프는 새의 노래의 신경과학을 연구했다. 앞서 소개한 피터 말러가 동물행동학의 관점에서 새의 노래를 연구한 것과 접근방식이 좀 다르다. 그러고 보니 저명한 새 노래 전문가 두 사람이 세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프는 새가 노래를 배울 때 뇌 앞부분에 있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동원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감각(청각)-운동회로가 포함된다. 두프 역시 새의 노래와 사람의 말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즉 두 행동 모두 모방학습에 의존하고 정상적인 의사소통 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청각을 통한 피드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3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에 자리를 잡은 두프는 조류생물학실험실을 운영하며 정신과 임상의 생활을 병행했다. 두프는 새가 노래를 배울 때 일어나는 뉴런의 발화패턴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사람의 뇌에 적용하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새의 지저귐에 관여하는 영역이 사람에서는 기술습득과 습관화에 관여하는 피질-기저핵시스템이라는 식이다.

 

한편 정신과 임상의로서 특히 여성의 정서에 미치는 호르몬의 영향을 주목해 이를 치료에 반영했다고 한다. 두페는 결혼이 늦었는지 나이 오십이 돼서야 쌍둥이 아들 둘을 낳았다. 엄마를 잃고 남겨진 열 살짜리 아이들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12. 허먼 아이젠 (1918 ~ 2014.11. 2)

70여 년을 연구에 바친 면역학자

 

허먼 아이젠. - MIT 제공
허먼 아이젠. - MIT 제공

1918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난 허먼 아이젠(Herman Eisen)은 앞에 소개한 마틴 펄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밟았다. 즉 본인은 화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큰 화학회사들은 유태인을 뽑아주지 않지만 의술은 너 하기에 달렸다”는 아버지에게 설득돼 뉴욕대 의예과에 들어간 것. 9년 뒤에 태어난 펄이 (일자리가 없어 보이는) 물리학 대신 화학공학을 택한 걸 보면 그사이 유태인 차별은 많이 수그러들었나보다.

 

한 세미나에서 벤젠고리화합물의 수산기(-OH)가 붙는 위치가 탄소 하나만 달라져도 실험동물의 혈압에 미치는 효과가 극적으로 바뀐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젠은 분자구조와 생물적 기능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컬럼비아대에서 병리학 수련의로 있던 아이젠은 면역학자인 마이클 하이델버거를 알게 된다. 하이델베르거는 항체가 단백질임을 밝힌 사람으로 현대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모교인 뉴욕대 생화학과에 자리를 잡은 아이젠은 항체에서 항원과 결합할 수 있는 활성자리가 두 곳 있음을 밝혔다. 그 결과 항원항체 응집이 일어나 병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 산업의학과로 자리를 옮긴 아이젠은 디니트로벤젠이라는 화합물에 대한 피부알레르기반응을 연구했다. 그 결과 이들 화합물이 피부의 단백질과 결합해 구조를 바꿔 면역반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계기로 아이젠은 워싱턴대 피부과로 자리를 옮긴다.

 

아이젠은 항원에 대한 항체의 결합력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노출이 반복될수록 결합력이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73년 MIT로 자리를 옮겨 1989년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 그 뒤 명예교수로 있으면서도 9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했다. 체육관에 가는 도중 쓰러져 사망한 날에도 논문 원고 작업을 하며 동료들과 e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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