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 직업병은 유방암?

2014.10.20 18:00

10월 유방암 예방의 달을 맞아 지난주 한국유방암학회가 발표한 ‘한국인 유방암의 국내외 최근 현황’ 보고서 소식에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기분이 좀 가라앉았을 것이다. 한국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급증하면서 2012년 10만 명당 52.1명을 기록해 오랫동안 동아시아 1위를 지키고 있던 일본을 처음 앞섰다는 것. 게다가 유독 젊은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아 15~44세의 발병률은 미국도 추월했다고 한다. 연간 유방암 환자수도 1996년 3801명에서 2011년 1만6967명으로 15년 사이에 4.5배나 늘었다.

 

이에 대해 한국유방암학회는 생활 습관, 특히 식단이 서구화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즉 유방암 가운데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의 비중이 2012년 73%로 10년 전 58%보다 더 높아졌는데, 이 타입은 포화지방 과다 섭취와 관련이 있다는 것. 한마디로 육식이 지나쳐 유방암이 늘었다는 것이다.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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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 필자도 무척 놀랐지만(증가추세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가파른 줄은 몰랐다) 그 해석에 대해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식생활 서구화가 유방암을 포함해 많은 대사질환의 주요 원인인 건 맞지만 이정도의 급속한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밤에 일하는 사람이 15~20%

 

그런데 공교롭게도 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아카이브’ 최근호에 유방암과 관련된 흥미로운 리뷰논문이 실렸다. 바로 필자가 우리나라 유방암 급증의 주원인일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 일주리듬 교란과 유방암 발병의 관련성을 조사한 메타분석 결과다. 미국 조지아대 보건대학 연구자들은 2000년 이후 관련 논문 28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둘 사이에는 확실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필자가 우리나라 유방암 급증의 원인으로 식생활 서구화 이상으로 일주리듬 교란을 주목한 건 지난 이삼십 년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자연의 일주리듬을 점점 더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리듬, 즉 하루 24시간 주기로 생체시계가 반응해 나타나는 생리적 패턴은 해가 뜨고 지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의존한다. 유럽이나 북미처럼 시차가 상당히 나는 곳을 가면 며칠 동안 꽤 힘든데 바로 생체시계가 그곳의 낮과 밤에 맞춰 재조정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이삼 십 년 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주리듬 교란을 겪고 있다. 1982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1990년대 심야영업금지가 해제되면서 하루 24시간 활동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24시간 편의점과 식당을 비롯해 유흥업소 종사자들,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 급증하는 해외여행에 맞춰 역시 크게 늘어난 스튜어디스 등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꼭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어서 선진국의 경우 밤에 일하는 사람의 비중이 15~20%이고 주중 낮에 근무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은 25%에 불과하다고 한다.

 

필자가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이 급증한다는 데서 일주리듬 교란을 주목한 것도 밤낮을 바꿔 사는(또는 반복적으로 시차 변화를 겪는) 여성 대다수가 이삼십 대 젊은이이기 때문이다.

 

이번 리뷰에서 분석한 논문 28편 가운데 병원 간호사처럼 교대근무자를 다룬 논문이 15편, 밤낮이 바뀌어 수면부족을 겪는 사람들을 다룬 논문이 7편, 승문원에 대한 논문이 3편, 야간조명의 영향을 다룬 논문이 6편이다.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 논문이 12편, 미국인이 9편, 호주, 캐나다, 중국 등 기타가 7편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논문은 없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참고할 만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즉 교대근무를 하는 직업을 갖는 여성의 경우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10년마다 16% 더 높아진다고 한다. 별로 대단한 증가가 아닌 것 같지만 일생에서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8%(미국인)임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스튜어디스의 경우는 37%나 더 높다고 한다. 수시로 시차가 바뀌는 여행을 하는데다 수천 미터 상공에는 우주선(cosmic ray) 방사선 때문에 방사능 노출량이 보통 사람들의 수배에 이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정도면 유방암을 스튜어디스의 직업병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을까.

 

●전립선암 위험성도 커져

 

그런데 일주리듬 교란이 왜 유방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일까. 아쉽게도 논문에는 거기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참고문헌은 소개돼 있다. 지난해 학술지 ‘수면의학리뷰’에 발표된 논문으로 ‘교대근무와 암 위험성’이라는 제목이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텍사스대 생의공학과 마이클 스몰렌스키 교수에서 논문 요청 e메일을 보냈더니 논문과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며 자신이 쓴 서평도 보내줬다.

 

지난해 출간된 ‘인간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새로운 위험인자로서의 빛공해(Light Pollution as a New Risk Factor for Human Breast and Prostate Cancers)’라는 제목의 책에 대한 서평이다. 전립선암이면 남성도 일주리듬 교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우리나라 남성들의 전립선암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왠지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제 일주리듬 교란이 왜 암, 특히 유방암과 전립선암 같은 내분비 계열, 즉 호르몬과 연관된 신체기관의 암에 밀접히 연관돼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 몸의 생체시계는 사실상 모든 세포마다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 중앙정부는 바로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이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낮과 밤이라는 외부의 정보를 알려주는 게 바로 ‘제3의 빛수용체’로 알려진 광민감망막신결정세포다. 이 세포는 짧은 파장의 빛, 즉 파란빛에 민감하다.

 

이런 정보에 따라 클락(CLOCK), Bmal1, 피리어드(Per), 크립토크롬(Cry) 등 여러 유전자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생체리듬이 형성된다. 그런데 교대근무로 밤에 일하거나 시차가 많이 나는 외국에 나갈 경우 생체시계 유전자 네트워크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생기고 그 결과 우리는 ‘피곤함’을 느낀다.

 

그러나 몸에서는 단순히 피로함 이상의 일들이 일어난다. 지난 10여년의 연구에 따르면 생체시계 유전자의 상당수가 세포분열이나 세포사멸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피리어드1이라는 유전자는 세포사멸을 촉진하는데 암조직에서는 발현이 떨어져있다. 피리어드2도 종양억제 기능을 하는데 유방암 조직에서 발현이 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시차를 한 차례만 겪어도 항암유전자인 p53의 작용이 억제되면서 발암유전자인 Myc의 발현이 증가한다.

 

뇌의 송과선(솔방울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melationin) 역시 일주리듬 교란과 유방암 발병 위험성을 매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야간조명(특히 파란색)은 멜라토닌의 합성을 억제하기 때문에 수면장애가 일어나므로 멜라토닌은 수면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할을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즉 멜라토닌이 부족해지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합성이 늘어나고 그 결과 유방암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스토리는 이미 1978년 나왔다.

 

멜라토닌은 항산화제 역할도 해 DNA가 자유라디칼에 의해 손상되는 걸 막을 뿐 아니라 일단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데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일주리듬 교란과 수면부족으로 멜라토닌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암에 취약해졌다는 것. 2013년 리뷰논문에서 저자들은 급증하는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절반은 식생활의 서구화 같은 통상적인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청색LED 발명은 건강의 빨간 신호?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청색LED를 발명한 일본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LED가 백열전구와 형광등에 이어 3세대 조명으로 등장하는데 청색LED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햇빛 같은 자연스러운 백색광이 나오려면 기존의 적색, 녹색LED만으로는 불가능했는데 청색LED가 나오면서 백색광이 실현된 것(삼원광을 합치면 백색광이 된다). LED는 효율도 매우 높아 전기세를 더 물지 않으면서도 실내를 지금보다 훨씬 밝게 할 수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청색LED를 발명한 일본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제3의 조명 시대를 연 청색LED는 그러나 일주리듬 교란과 멜라토닌 합성 억제 등 인류의 건강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크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청색LED를 발명한 일본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제3의 조명 시대를 연 청색LED는 그러나 일주리듬 교란과 멜라토닌 합성 억제 등 인류의 건강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크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스몰렌스키 교수는 서평에서 LED의 등장으로 세계 보건에 ‘적색등’이 켜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조명이 널리 퍼지면 안 그래도 심각한 빛공해가 더 심해질 게 분명한데다가 LED의 빛 품질이 기존 조명인 백열전구나 형광등에 비해 건강에 안 좋기 때문이다. 즉 LED 백색광은 햇빛처럼 가시광선 범위의 파장대가 연속적으로 분포한 게 아니라 좁은 파장대를 지닌 청색광, 녹색광, 적색광이 조합돼(또는 다른 파장 빛의 조합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청색빛은 일주리듬이나 멜라토닌 합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스몰렌스키 교수는 서평에서 학계 연구자뿐 아니라 정책입안자들도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자나 정책입안자들도 이 책을 구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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