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자의 문화산책] 영화 속 뒤뚱거리는 우주인의 걸음걸이에 대한 고찰

2014.09.21 18:00
영화 아마겟돈의 한 장면. 소행성과 충동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최신식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들이 출동한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영화 아마겟돈의 한 장면. 소행성과 충동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최신식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들이 출동한다.
- Touchstone Pictures.

 

17일자 ‘실험생물학저널’에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실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이 발표한 이 논문은 사람이 달에서 지구보다 중력을 덜 받을 때 걷고 뛰는 동안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아본 연구 결과다.

 

연구를 수행한 NASA 연구진은 논문 서두에 이번 연구 목적이 현대형 우주복을 만들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소개하면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할 때 보여준 ‘우스꽝스런 걸음’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달의 중력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실은 그가 입었던 우주복은 걷는 용도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걷는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불편한 우주복에 적응해서 걷느라 그런 모양새가 나왔다는 얘기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껏 본 우주 탐험 영화에 나온 장면들이 모두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착륙한 에드윈 버즈 알더린이 달 표면 위에 서 있는 모습. 당시 우주복은 걷기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 NASA 제공
1969년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착륙한 에드윈 버즈 알더린이 달 표면 위에 서 있는 모습. 당시 우주복은 걷기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 NASA 제공

우선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한 영상을 검색했다. 영상에서 닐 암스트롱은 뒤뚱거리며 달 표면을 걷는 ‘익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리 모양을 자세히 보면 마치 깁스를 한 것처럼 무릎이 앞뒤로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닐 암스트롱은 양발에 ‘우주 깁스’를 한 채로 달 위에서 걸었던 셈이다! 나중에는 불편했는지 양발을 모으고 ‘콩콩’ 뛰면서 움직인다.

 

다음으로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걷는 모습이 나오는 영화들을 찾아봤다. 최근 작품인 ‘그래비티(Gravity)’에는 우주복을 입고 걷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를 확인해 봤다. 두 영화 모두 1998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첨단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들이 등장한다.

 

두 영화는 모두 지구와 충돌 위기에 놓인 소행성과 혜성을 파괴하는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들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암스트롱 때보다 훨씬 진일보한 최신식 우주복을 입고도 1969년 달 착륙 당시처럼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나온다. 물론 소행성과 혜성의 중력이 달과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활동형 우주복을 만든다면 중력 수준은 미리 설정할 수 있게 해 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딥임팩트의 한 장면. - DreamWorks Pictures 제공
영화 딥임팩트에서 우주비행사들이 혜성을 파괴하는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 DreamWorks Pictures 제공

 

다시 NASA의 연구로 돌아와 보자. 연구진은 나사가 보유한 무중력 훈련용 비행기인 ‘DC-9’에 우주비행사 세 명을 태우고 실험을 진행했다. 포물선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비행할 때 위에서 정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나타나는 달과 흡사한 미세중력 상태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박사도 이 비행기에서 무중력 훈련을 받았다.

 

달과 같은 중력 환경에서 걷기와 달리기 실험을 하고 있는 나사 연구진. - NASA 제공
달과 같은 중력 환경에서 걷기와 달리기 실험을 하고 있는 나사 연구진. - NASA 제공

연구진은 지구 중력의 6분의 1인 환경에서 우주비행사들이 러닝머신 위에 올라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는 속도를 측정했다. 특히 걷다가 달리기로 넘어가는 순간의 속도를 집중적으로 체크했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우주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이론적으로 예측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전까지 달과 같은 중력에서 걷다가 뛰기로 전환하는 순간 속도는 초속 0.8m 정도가 될 거라고 추정했다. 이는 사람이 걷는 평균 속도인 초속 1.1m보다 느린 속도다. 당연히 달 위에서 걷는 속도는 당연히 초속 0.8m나 그 이하로 계산된다.

 

하지만 실험 결과 우주인들이 달과 같은 조건에서 걷다가 뛰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속도는 평균적으로 초속 1.4m였다. 추정치보다 60cm(한 발자국 정도)나 빠른 것이다. 보통 지구 중력에서 걷는 속도는 초속 1.1m고, 걷다가 뛰기 시작할 때는 초속 약 2m 정도다. 달 위에서 걸을 때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걸을 수(어쩌면 지구와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론값과 다른 우주비행사들의 걸음걸이 속도가 ‘팔과 다리의 회전 효과’ 때문일 거라고 설명했다. 움직이면서 팔다리를 앞뒤로 회전하는 동작이 가속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중력 때문에 이런 동작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중력이 작은 달에서는 발이 지면을 밀고 나갈 때 몸동작이 작은 힘을 더 보태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현대형 우주복 개발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보고 영화 속 영웅들이 뒤뚱거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제작진이 닐 암스트롱의 우주복이 걷기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 속 첨단 우주복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형태로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 나가면 닐 암스트롱처럼 부자연스럽게 걷게 될 것’이라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장면을 실감나게 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저게 무슨 우주냐!”라고 실소하는 관객들의 수군거림이 영화관 곳곳에서 들려왔을지도 모르겠다. 향후 달을 탐사하는 우주비행사가 새로운 우주비행복을 입고 사뿐사뿐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영화에서도 전처럼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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