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은 설탕을 대신할 수 있을까

2014.08.11 18:03

  수개월 전 TV에서 황당한 뉴스를 봤다. 필름까지 씌워진 최신 스마트폰 박스를 열었더니 스마트폰 대신 찰흙이 들어있다는 내용으로, 찰흙 무게까지 스마트폰에 맞춰 감쪽같이 속였다고 한다. 정품이 들어있는 몇 박스만 열어보고 수백 개를 주문한 수출업자는 억 대를 날려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고 한다.

 

  사기사건이야 뉴스 단골소재지만 이 사기는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십수 년 전 그날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업무를 같이 하다 친해진 옛 직장 상사가 낚시광이었는데, 오래 전에 낚시를 끊은(중독성이 있다!) 필자가 지나가는 말로 언제 낚시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정말 이날 같이 낚시를 가게 됐다. 자동차로 한 참을 달려 중부 내륙 지방의 한 호수에 도착해 낚싯대를 펴는데 날씨가 영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이 점점 심하게 불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한 참을 기다려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죠?”
  “철수하자.”

  얼마 만에 와본 낚시터인데 손맛 한 번 보지 못하고 낚싯대를 접었다. 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렀다. 매점에서 마실 것을 사갖고 오다보니 웬 청년 두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니 경상도 사투리가 억세다(이 분이 부산 사람이다). 서울에 생선 납품하러 왔다가 무슨 문제가 생겨 도로 갖고 내려가다가 고향 사람(물론 초면이다)을 만난 김에 이것도 인연이라 싼 값에 주기로 했단다. 청년들이 옆에 세워둔 냉장트럭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하나 꺼내 열어 보여주는데 도미가 꽉 찼다. 이걸 3만 원에 준단다.

 

  “너도 하나 사라. 3만 원이면 거져야.”

이미 이 양반은 처지가 딱한 동향 후배들을 챙기고 있었다.

 

  “글쎄요. 이걸 들고 갈 수도 없고…”
  “걱정 마.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결국 필자도 한 박스 샀다. 꽤 묵직했다.

 

  “그게 다 뭐냐?”
  “낚시 간다고 했잖아요.”

  커다란 스티로폼박스를 들고 현관을 들어서는 필자를 보고 어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사실은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나서 박스를 둘러싼 테이프를 벗기고 뚜껑을 열었다. 빈 공간이 없이 얼음이 꽉 차 있다.

 

  ‘잘도 채워 놨네….’

  필자는 아직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손으로 얼음을 치워도 생선이 안 보인다. 필자는 당황한 채 얼음을 파헤쳤지만 건진 건 고작 손바닥만한 도미 두 마리가 전부였다.

 

  “넌 생긴 건 안 그런데 왜 그렇게 멍청하냐! 근데 싱싱하긴 하다.”

  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듣고 싱크대에 얼음을 쏟아 붓는데 여전히 얼떨떨했다. 얼마 뒤 전 직장 상사에게서 전화가 있다.

 

  “세 마리라고요? 전 두 마린데….”
  “그래? 아무튼 미안하다….”
  “뭘요.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상태는 좋데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 친구들이 왜 박스에 생선 두세 마리를 넣어놨는지 잘 모르겠다. 전부 얼음으로 채우나 두세 마리 있으나 어차피 열어보면 사기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때 만일 전부 얼음이었다면, 돈은 얼마 안 되지만 꽤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보물찾기처럼 얼음 속에 박혀 있던 새끼 도미 두 마리가 짜증날 사건을 한 편의 코미디로 승화시킨 것일까.  

 

●뇌는 감각의 정보는 얼마나 신뢰할까

  박스의 무게를 가늠하는 게 안에 어떤 내용물이 있다는 정보를 얻는 한 방법이듯이 우리의 다양한 감각은 외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창이다. 물론 앞에 든 예들처럼 감각을 통한 정보는 속임수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실 화장도 시각 정보를 속이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신혼여행을 가서 다음날 아침 침대 옆에 누워있는 ‘낯선’ 여인을 보고 “누구세요?”라고 말했다는 썰렁한 농담도 있다. 오죽하면 ‘쌩얼(민낯)도 예쁜’ 연예인들이 화제가 될까.

 

  일상생활에서 감각을 속이는 일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건 아마도 식품이 아닐까. 정작 바나나는 1%도 들어있지 않고 우유에 설탕과 바나나향, 황색색소를 탄 ‘바나나맛 우유’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게맛살에도 게살은 없다(잡어와 게향). 이런 예들은 식품업계에 만연해 있는데 주로 미각 자체가 아니라 후각이나 시각을 교란해 우리의 입맛을 속인다(물론 합법적으로).

 

동아일보DB 제공
동아일보DB 제공

  물론 대놓고 미각을 속이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MSG 첨가다. 감칠맛을 주는 MSG는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의 염으로 음식물에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정보다. 유명한 냉면집들이 뼈와 고기를 우린 게 아닌 MSG를 넣은 엉터리 육수를 사용해오다 적발됐다는 뉴스를 보면 착잡해지는 이유다.

 

  인공감미료도 미각을 속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MSG와는 위상이 좀 다른 것 같다. ‘칼로리 제로’ 콜라에서 보듯이 식품의 핵심 컨셉을 제공하며 당당하게 사기를 친다. 살찔까봐 단 게 먹고 싶어도 참고 있는 사람들에게 칼로리는 없이 단맛만 느끼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사기인가. 술자리 때마다 “오늘은 소주가 다네 달아!”라며 연신 소주잔을 들이키는 사람들 역시 그럴 수밖에. 소주에는 인공감미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를 써 달콤하면서도 칼로리는 제로인 다이어트 음료가 시중에 나와있다. 맛 정보와 영양 정보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건 이런 제품에서는 설탕 대신 카페인이 보상회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 강석기 제공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를 써 달콤하면서도 칼로리는 제로인 다이어트 음료가 시중에 나와있다. 맛 정보와 영양 정보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건 이런 제품에서는 설탕 대신 카페인이 보상회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 강석기 제공

 

 

  현재 콜라나 소주 같은 식품에 즐겨 쓰이는 인공감미료는 아스파탐이다. 아스파탐은 1981년부터 쓰인 아미노산 계열의 화합물로 같은 무게의 설탕보다 무려 200배나 더 달다. 보통 콜라 한 캔(200ml)에는 설탕 22그램이 들어있어 88칼로리나 되는데, 아스파탐 0.11그램만 넣으면 같은 효과를 내면서 칼로리는 제로이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다만 아스파탐은 열안정성이 떨어져 가공이 많이 되는 식품에는 쓰기 어렵다.

 

 최근 식품당국은 인공감미료의 대명사인 사카린(saccharin)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식품에 쓰일 수 있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1878년 합성된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배나 달아 많은 식품에 쓰이다가 1970년대 들어 동물실험(쥐)에서 방광암을 일으킨다는 결과가 알려지면서 퇴출됐다가 사람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2년부터 젓갈, 김치, 절임식품을 제외하고는 사카린을 쓸 수 없게 규제를 해오다 2012년 소수와 막걸리, 껌 등 8개 식품에 쓸 수 있게 족쇄가 일부 풀렸고 이번에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된 것이다. 이제 사카린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그동안 건강 때문에 설탕을 피해야 해 음식의 단맛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 수년 사이의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낸 음식을 먹을 때는 설탕이 들어있어 단맛이 나는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쾌감)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맛의 정보를 제공하는 미각을 멋지게 속였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미각은 당했지만 뇌는 미각이 보내오는 정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일까. 놀랍게도 답은 “그렇다”이다. 도대체 뇌는 어떻게 인공감미료의 달콤함이 칼로리가 풍부한 음식이라는 정보가 아니라는 걸 알까.

 

●단맛 못 느껴도 설탕물에서 보상회로 활성화돼

  맛이 음식에 대한 정보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최초의 분명한 실험결과는 2008년 학술지 ‘뉴런’에 발표됐다. 미국 듀크대 연구자들은 단맛 수용체 유전자가 고장나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생쥐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행동실험을 했다. 이런 쥐들은 정상 쥐들과는 달리 설탕물을 그냥 물보다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쪽에는 그냥 물이 들어있는 병을, 다른 쪽에는 설탕물이 들어있는 병을 둔 뒤 며칠이 지나자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도 설탕물을 더 많이 찾았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장내에서 흡수된 설탕물의 설탕, 즉 영양분이 어떤 식으로든 뇌에 영향을 미쳐 쥐의 행동에 영향을 줬다고 해석했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인공감미료 수크랄로스(sucralose)가 들어있는 가짜 설탕물을 준비해 같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며칠이 지나도 앞의 실험과 같은 선호도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탕은 어떻게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쥐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까.

 

  연구자들은 뇌의 보상회로를 이루고 있는 측좌핵(nucleus accumbens)의 도파민 분비량을 비교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슨 심각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한 여름에 시원달콤한 팥빙수를 먹으면 기분이 좋게 마련인데, 이때 측좌핵에서 도파민이 왕창 나오기 때문이다.

 

  도파민 수치를 분석한 결과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생쥐에서는 수크랄로스물은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설탕물은 도파민 수치를 크게 높였다. 그 결과 똑 같은 맛의 물임에도 왠지 한 쪽 병에 있는 물(설탕물)에 더 끌렸을 것이다. 이 결과가 사람에서도 적용된다면 우리는 맛뿐 아니라 영양을 통해서도 설탕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험에서 정상 생쥐는 설탕물이나 수크랄로스물 모두에서 도파민 수치가 올라갔다. 수크랄로스는 칼로리는 없지만 달콤하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된 것. 이는 음식에 대한 쾌락반응에서 맛의 정보나 영양 정보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닐까.

 

  2012년 학술지 ‘시냅스’에는 보다 정교한 실험으로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일리노이대의 연구자들은 설탕을 배합한 사료와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을 배합한 사료를 준비했다. 각각은 서로 다른 향(포도와 바나나)이 나 쥐가 구분할 수 있다. 처음에는 두 사료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없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쥐들은 설탕이 들어있는 사료를 선호했다(20알 대 7.5알). 측좌핵의 도파민 수치를 측정한 결과 역시 설탕이 들어있는 사료를 먹었을 때 더 높았다. 즉 장기적으로 가짜 설탕에 노출될 경우에는 정상 쥐도 도파민 분비가 떨어지면서 덜 찾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런 결과는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인공감미료는 설탕보다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 실제로 사카린은 단맛뿐 아니라 약간 쓴맛도 느껴지기 때문에 많이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같은 해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은 이런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맛있지만 영양없는 먹이 vs. 맛없지만 영양있는 먹이

  연구자들은 초파리를 대상으로 교묘한 실험을 구상했다. 즉 한쪽은 단맛이 나지만 소화가 되지 않아 칼로리는 없는 당인 아라비노스(arabinose)가 들어있는 먹이가, 다른 쪽은 단맛은 없지만 소화가 돼 칼로리가 있는 당알코올인 소르비톨(sorbitol)이 들어있는 먹이를 준비했다. 예상대로 초파리는 아라비노스가 있는 먹이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먹이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초파리들은 소르비톨이 들어있는, 아무 맛도 없는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비록 맛은 없지만 먹으면 ‘힘이 난다’는 걸 몸이 깨닫고 행동을 변화시킨 셈이다.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갖게 되는 데는 맛이나 냄새 같은 감각정보만으로는 부족하고 영양정보도 있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수년 사이 발표됐다. 초파리 실험 결과 먹이의 냄새에 대한 기억력은 먹이에 칼로리가 있는가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커런트바이올로지 제공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갖게 되는 데는 맛이나 냄새 같은 감각정보만으로는 부족하고 영양정보도 있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수년 사이 발표됐다. 초파리 실험 결과 먹이의 냄새에 대한 기억력은 먹이에 칼로리가 있는가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커런트바이올로지 제공

  한편 각 먹이에 특정 냄새를 연결지은 뒤 기억력 테스트를 한 결과 초파리들은 소르비톨이 들어있는 먹이의 냄새를 훨씬 빨리, 오래 기억했다. 즉 영양분이 있다는 피드백을 받아야만 먹이의 냄새에 대한 기억도 공고해지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칼로리가 있는 진짜 당분을 섭취할 때만 혈당수치가 올라가고(당연히) 뇌가 이를 감지해 쾌락반응을 일으키고 기억력도 높인다고 해석했다.

 

  위의 동물실험 같은 엄격한 상황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카린 같은 인공감미료가 설탕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섣부르다고 봐야할까. 놀랍게도 식품회사들은 이미 인공감미료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인공감미료가 들어있는 식품은 단기간은 소비자에게 ‘먹힐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면을 받게 될 거라는 말이다.

 

  실제로 다이어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굉장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공감미료를 써서 칼로리를 낮춘 제품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칼로리 제로’를 컨셉으로 하는 다이어트 콜라 같은 제품은 나름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학술지 ‘유럽신경과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이런 제품의 성공비결은 따로 있는 듯하다. 즉 이런 음료에는 보통 카페인이 진짜 설탕이 들어있는 음료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즉 음료를 마셨을 때 보상회로를 활성화하는, 즉 쾌락반응을 일으키는 역할을 보통 음료에서는 설탕이 한다면 이런 음료에서는 카페인이 대신하는 셈이다.

 

  비만과 당뇨 등 성인질환이 만연한 상태에서 칼로리는 낮고 당도는 높은 ‘건강한 단맛’을 주는 스테비아(stevia) 같은 천연대체감미료를 쓰면 좋겠지만 워낙 비싸기 때문에 사카린 같은 인공감미료가 꽤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감미료 자체의 유해성 여부는 둘째 치고라도, 우리 몸이 섭취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공감미료를 지나치게 써 감각 정보와 영양 정보의 괴리를 만성화시킨다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사기도 적당히 쳐야 당하는 입장에서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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