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미생물 관리 잘 해야 남성호르몬 이상없다

2013.04.25 13:04
재작년부터인가 필자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캡슐을 하루에 하나씩 먹고 있다. 캡슐 하나에는 장을 비롯한 우리 몸에 좋다고 실험적으로 밝혀진 6가지 장내미생물 수 억 마리가 건조된 채 들어있다. 강산성인 위액에 녹지 않게 코팅돼 있어 위를 통과해 장까지 간다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요거트나 김치에 들어있는 유산균이면 충분할 텐데 프로바이오틱스 캡슐까지 먹을 필요가 있는가 하겠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장내미생물 연구의 눈부신 발전을 죽 모니터해온 필자로서는, 아직은 초보적인 형태이지만, 그래도 프로바이오틱스를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각종 대사 질환에 관여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요즘 매주 둘 중 하나 꼴로 장내미생물 관련 논문이 실리고 있는데 연구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질병에 관련된 것만 몇 개 소개해보면 새끼일 때 항생제를 투여하면 장내미생물상(gut microbiota)이 바뀌고 비만에도 영향을 준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고(‘네이처’ 2012년 8월 30일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2형 당뇨병(인슐린 분비가 떨어지거나 저항성이 생겨 발병)인 사람들은 부티레이트(butyrate)를 만드는 장내미생물이 적다는 사실도 밝혀졌다(‘네이처’ 2012년 10월 4일자).

참고로 부티레이트는 탄소 4개짜리 지방산으로 장내 산도를 조절해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수분 흡수를 촉진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생리활성을 보이는 대사산물이다.

심지어 장내미생물상 변화가 대장암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사이언스’ 2012년 10월 5일자). 장독소를 내뿜는 특정한 대장균 균주가 많아지면 대장 내벽에 염증이 생기고 그 결과 암이 생긴다는 것.

정식으로 저널에 실리기 전 ‘사이언스’ 사이트에 미리 소개된(1월 17일자) 논문도 장내미생물과 숙주 사이의 기이한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등 5개국 공동연구팀은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오래된 미스터리에 장내미생물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해 피해를 끼쳐 나타나는 병이다. 1형 당뇨병, 류마티스관절염, 크론병, 다발성경화증 등 심각한 질환들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원인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은데다 갈수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알레르기와 함께 ‘현대인의 질병’으로 불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대체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히 사춘기 지나서 중장년까지 이 사이에 병이 시작된 경우를 비교할 때 남녀 차이가 두드러진다. 반면 사춘기 이전이나 노년기에 발병한 경우에는 남녀차이가 미미하다. 이런 패턴을 면밀히 들여다본 결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자가면역질환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이 어떤 경로로 면역계를 조절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사춘기는 장 속 부터

연구자들은 유전적으로 1형 당뇨병(면역계가 췌장을 파괴해 인슐린을 만들지 못해 발병)에 걸리기 쉬운 쥐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이 쥐 암컷은 수컷에 비해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 수컷도 거세시키면 발병률이 올라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위생적인 환경일수록 당뇨병 발병률도 높다는 것. 여기서 힌트를 얻어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이 테스토스테론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을 하고 검증에 들어갔다.

연구자들은 쥐를 무균환경(따라서 장내미생물도 없다)에서 키워 당뇨병 발병률을 조사했는데 암컷과 수컷의 발병 패턴이 비슷했다. 장내미생물이 없을 경우 발병률에서 암수 차이가 사라진 것. 발병률은 균이 있는 환경에서 자란 암컷보다는 낮았지만 균이 있는 환경에서 자란 수컷보다는 높았다.

그런데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비교해보니 똑같은 패턴이 나왔다. 즉 무균 암컷은 균이 있는 암컷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았고 무균 수컷은 균이 있는 수컷보다 수치가 낮았던 것. 바꿔 말하면 암컷의 장내미생물은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하고 수컷의 장내미생물은 촉진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암수 성별에 따라 장내미생물상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장내미생물상은 같지만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 결과일까. 연구자들은 이유기(3주차), 사춘기(6주차), 1형 당뇨병 발병기(14주차)에 암수의 장내미생물상을 조사해봤다. 그 결과 이유기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사춘기에는 차이가 보이더니 다 자라서는 차이가 두드러졌다.

결국 쥐가 성적으로 성숙하면서 장내미생물상을 바꾸어놓은 것. 이렇게 숙주의 영향을 받아 조성이 바뀐 장내미생물상이 역으로 숙주의 테스토스테론 분비에 영향을 미쳐 암수의 차이를 심화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암컷 쥐에게 수컷 장내미생물상을 넣어주면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해 당뇨병 발병률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7주차와 14주차 암컷 쥐에게 실험을 해보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졌고 당뇨병 발병률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아울러 혈중 글리세로인지질과 스핑고지질 수치도 낮아졌다. 장내미생물상의 변화가 테스토스테론뿐 아니라 다른 대사산물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다. 다행히 장내미생물로 인한 테스토스테론 증가가 암컷의 생식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생물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숙주의 테스토스테론 대사를 조절하는지를 밝혀내는 게 다음 과제다. 이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밝혀지면 사람의 1형 당뇨병을 예방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로바이오틱스 당뇨병 예방약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람은 쥐와 달리 1형 당뇨병은 대부분 사춘기 이전에 오기 때문에(그래서 소아당뇨병이라고 부른다) 발병률에 남녀차이가 없다.

‘네이처’ 1월 3일자에는 2013년에 결정적인 연구결과가 나올 분야들을 예측한 기사가 실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장내미생물상에 대한 음식의 영향과 그로 인한 질병 위험성에 대한 규명이다. 모르면 몰라도 앞으로 10년 쯤 지나면 “그 병이 장내미생물과 무슨 관계가 있지?”라고 의아해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치료제 또는 예방약으로 쓰이고 특정 장내미생물이 잘 자라게 해주는 영양분(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라고 부른다)을 비타민제 먹듯이 복용하는 게 일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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