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김치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전략

2021.03.31 15:26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 생가 입구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설치돼있다. 룽징/연합뉴스 제공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 생가 입구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설치돼있다. 룽징/연합뉴스 제공

고대사 왜곡으로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 거침없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한글・한복・김치도 중국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심지어 민족시인 윤동주도 ‘중국 조선족’으로 둔갑시키는 모양이다. 물론 민주화·세계화를 꿈꾸는 21세기의 지구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끄럽고 퇴행적인 행태다. 중국의 거친 동북공정과 일본 극우파의 혐한에는 단호하고 확실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 치의 양보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감정적·감성적 대응은 위험하다. 정확한 팩트에 기반을 둔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치는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

 

우리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 음식인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를 변형시킨 것이라는 중국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파오차이(pao cai)가 우리의 김치(kimchi)와 다른 음식이라는 사실은 중국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2020년 국제표준기구(ISO)에 등록한 문서에도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This document does not apply to kimchi.)고 스스로 밝혀두었다. 우리 ‘김치’의 국제표준은 파오차이보다 9년이나 앞선 2001년 국제식품규격(CODEX)에 등록해놓았다. 중국 정부나 언론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는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중국이 2020년 국제표준기구(ISO)에 등록한 문서에도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This document does not apply to kimchi.)고 스스로 밝혀두었다. 
중국이 2020년 국제표준기구(ISO)에 등록한 문서.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This document does not apply to kimchi.)는 내용이다.

소금물이나 식초를 이용해서 채소의 저장성을 개선한 절임·발효 음식은 김치나 파오차이가 전부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음식문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음식이다. 이탈리아의 ‘피클’(pickle), 독일의 ‘사워크라우트’(sauerkraut),  영국의 ‘피카릴리’(piccalilli), 발칸과 중동의 ‘토르쉬’(turshi), 일본의 ‘아사즈케’나 ‘츠케모노’가 모두 그런 음식이다. 슬라브의 전통 음식에도 화려한 채소 절임이 넘쳐난다. 중국의 파오차이가 전 세계 모든 채소 절임의 원조라는 주장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 김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김치도 배추・무・오이・순무 등의 다양한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채소 절임과 달리 김치에는 고추・마늘・생강・파 등의 다양한 양념과 함께 수산물인 젓갈이 사용된다. 김치는 채소·양념·젓갈이 어우러진 독특한 절임이고,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발효시킨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의 채소 절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김치의 가장 고유한 특징이다. 주로 땅에 묻어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독에 넣어 저장했고, 추운 날씨 때문에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의 ‘김장’ 문화도 발달했다. 김장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독특한 우리의 전통이다.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지・저・침채 등으로 부르던 전통음식이다. 18세기 중엽부터 고추를 양념으로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김치와 같은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여러 문헌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팩트다. 더욱이 김치는 계절과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사실은 집집마다 독특한 김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김치를 먹는 방법도 다른 나라의 절인 채소와 분명하게 구분된다. 김치는 그 나름으로도 훌륭한 음식이지만, 다른 음식을 만드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찌개나 국으로 조리하기도 하고, 곡물 가루와 섞어서 전(煎)으로 부쳐서 먹기도 한다. 다른 채소 절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이다.

 

김치 세계화의 전략

 

영국 BBC 방송이 최근 중국 언론의 ‘김치 국제 표준’ 주장에 대한 한국의 반박 사례를 조명했다. BBC 방송 캡쳐
영국 BBC 방송이 최근 중국 언론의 ‘김치 국제 표준’ 주장에 대한 한국의 반박 사례를 조명했다. BBC캡쳐

우리가 김치를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유의 시큼하고 꼬릿한 냄새와 맛을 애써 감춰야 했던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들은 김치와 된장 냄새를 우리에 대한 차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1970년대 이전의 유학생들도 김치의 마늘 냄새 때문에 난처한 경험을 했다.


본격적으로 김치를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한강의 기적’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덕분이었다. 김치의 매운 맛과 마늘 향이 우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맹목적인 ‘김치 세계화’는 의미가 없다. 특히 관료주의적 세계화는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 ‘김치산업진흥법’이나 ‘신치’와 같은 어설픈 신조어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맛과 멋을 찾는 세계의 미식가들에게 정형화된 선동적 구호는 설득력이 없다.


어설픈 ‘과학’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전통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발효 음식’이라는 주장은 부끄러운 궤변이다. 절임과 발효는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리 기술이다. 우리의 발효 기술이 다른 나라의 발효 기술보다 더 과학적이고, 더 건강한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김치를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음식과 어울리게 만드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음식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김치를 맛있고, 품위 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김치를 더 쉽게 저장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냉장고에 진하게 배어드는 김치 냄새는 절대 반가운 것이 아니다.


'김치’라는 우리 이름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우리도 언제나 다른 나라의 음식 이름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베트남의 ‘퍼’(Pho)를 우리는 ‘쌀국수’라고 부르고, ‘뷔르스트’(würst)를 ‘독일식 소시지’라고 부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하는 ‘식품유형’에서는 다른 나라의 음식도 우리의 기준에 따라 분류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수입식품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분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공식품의 유형을 분류해놓은 ‘식품안전국가표준’(GB)에 ‘김치’가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억지일 수 있다. 김치를 ‘절임 채소’를 통칭하는 ‘파오차이’로 분류하는 것을 나무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은 김치를 ‘한국식 파오차이’ 또는 ‘라바이차이’(매운 배추)라고 부르고, 사워크라우트를 ‘독일식 파오차이라’라고 부른다. ‘뷔르스트’는 ‘독일식 샹창(香肠)’이라고 부른다.


수출용 김치의 상품 표기는 기업의 창조적 자율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한다. 모든 수출품에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설픈 것이다. ‘김치’의 세계화를 김치라는 ‘명칭’의 세계화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부끄러운 국수주의로 인식될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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