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뇌과학

2014.05.26 18:00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 블레즈 파스칼

 

  단어 가운데는 본래 가치중립적이지만 쓰임새는 한 쪽에 치우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냄새라는 말은 대체로 악취를 가리킨다. 즉 ‘화장실 냄새’는 자연스럽지만 ‘커피 냄새’보다는 ‘커피 향’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습관도 그런 단어로 ‘좋은 습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행동을 반복할 때 사용한다. ‘습관적으로’라는 표현에서 벌써 부정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가.

 

동아일보DB 제공
동아일보DB 제공

  한 번 습관이 들면 고치기 어려운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감하는 현상으로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표현도 비슷한 맥락이다. 운동이나 일도 처음에 잘 못 배워 안 좋은 습관이 들면 나중에는 오히려 발전을 방해한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습관이 잘못 든 중급자들보다 차라리 초보자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독학한 사람이 대성하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필자 역시 안 좋은 습관이 꽤 되는데,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난 뒤 인터넷 바둑을 한판씩 두는 습관(아침 먹은 뒤에는 차마 못 둔다!)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론 한 번에 몇 판씩 두는 것도 아니고 삼사십 분이면 끝나는 한 판에 너무 자책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40대 중반 들어서 눈 건강에 빨간불(안구건조증)이 들어온 필자로서는 안 그래도 눈을 혹사하는 직업에 눈을 더 혹사시키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수를 보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시선이 모니터의 바둑판에 고정된 채 눈을 제대로 깜빡이지도 않으므로 독서보다도 눈에 훨씬 더 안 좋다.

 

  결국 두 달 전쯤 오른쪽 눈 바깥쪽 흰자위의 실핏줄이 터져 토끼눈이 되고서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식후 먼 산을 보며 산책하는 쪽으로 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한 보름 지나 흰자위의 붉은 기도 가시고 눈도 덜 피로한 것 같아 걱정이 잦아든 어느 날, 저녁을 먹은 뒤 바둑 사이트를 클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다시 습관이 이어지고 있다.   

 

●만만치 않은 습관의 힘

 

  미국의 과학주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6월호에는 필자가 ‘부질없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습관을 고치는 일이 ‘뇌의 습관회로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글이 실렸다. 습관과 그 극단적인 형태인 강박행동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는 미국 MIT 앤 그레이빌 교수와 다트머스대 카일 스미스 교수가 쓴 기고문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뇌에는 ‘습관회로(habit circuits)’가 있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이 회로에 걸려들면 습관이 돼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

 

  습관회로의 존재는 동물실험(주로 쥐)을 통해 밝혀졌지만(산 사람 머릿속에 전극을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글을 읽어보니 사람에서도 큰 차이 없이 적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험동물에게 습관을 갖게 할까. 또 그 행동이 습관이라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심리학자인 앤서니 디킨슨이 1980년대 그럴듯한 기준을 만들어 놨다.

 

  먼저 쥐에게 레버를 눌러야 사료가 나오는 시스템을 훈련시킨다. 다음으로 우리를 옮겨 레버 없이 사료를 주는데, 이 사료에는 속이 미식거리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뒤가 안 좋다. 이제 이 쥐를 레버가 있는 원래 우리로 다시 옮긴다. 이번에는 레버를 눌러도 사료가 나오지 않는다. 첫 단계에 오래 있었던 쥐들은 두 번째 단계에서 안 좋은 경험을 했음에도 레버를 눌렀다. 즉 레버가 보이니까 자동적으로 누른 것이다. 이게 바로 습관이다. 반면 첫 단계를 잠깐 겪었던 쥐들은 레버를 누르지 않았다.

 

어떤 행동을 처음 할 때는 전전두엽(PFC)와 두정엽(parietal)이 활동하지만 습관화가 될수록 선조체(녹색)로 활동이 몰린다.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 선조체의 활동에 변연계아래피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frontiers in psychiatry 제공
어떤 행동을 처음 할 때는 전전두엽(PFC)와 두정엽(parietal)이 활동하지만 습관화가 될수록 선조체(녹색)로 활동이 몰린다.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 선조체의 활동에 변연계아래피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frontiers in psychiatry 제공

  연구자들은 이 기법을 바탕으로 쥐가 어떤 행동을 습관화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이 과정에서 뇌의 활동패턴이 3단계에 걸쳐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먼저 새로운 행동을 배울 때로 전전두엽과 선조체, 중뇌가 활성화됐다. 즉 낯선 경험이기 때문에 뇌가 의식적으로 학습하고 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다음은 습관이 형성되는 단계로, 행동이 몇 번 반복되면 이제 전전두엽은 조용히 있고 선조체와 감각운동피질(전두엽과 두정엽 경계면에 있는), 중뇌의 연결망이 강화된다. 행동의 자동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끝으로 습관이 각인되는 단계로 선조체의 활동을 변연계아래피질(infralimbic cortex, 전두엽 아래 존재)이 관리하게 된다. 이때도 중뇌가 활성화되는데, 중뇌에서는 도파민을 분비해 행동에 쾌감이 따르는 결과를 준다.

 

  결국 습관이란 어떤 일련의 행동이 하나의 묶음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의식적인 뇌(전전두피질)가 거의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꽤 정교한 행동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수행하게 된다. 필자 역시 평소에는 바둑을 둘 마음이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는 어느새 노트북에서 한 바둑사이트의 바로가기 아이콘을 더블클릭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극복하기 힘든 게 ‘식사 뒤 담배 한 대’인 것도 습관의 힘 아닐까.

 

  오래 된 습관일수록 버리기 어려운 이유도 습관회로가 그만큼 더 견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굳은 결심으로 한동안 습관을 끊더라도 약간의 계기(cue)만 있으면 슬그머니 원래 습관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안 좋은 행동은 습관화가 되지 않도록 애초에 끊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습관회로’가 형성된 행동은 평생 따라다니는 것일까.

 

●습관과 강박 사이

 

  그레이빌 교수와 스미스 교수는 글 말미에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로는 습관을 유발하는 ‘계기’를 없애라는 것. 즉 군것질 습관이 있다면 집이나 사무실에 군것질 거리를 없애고 필자 같은 경우는 컴퓨터에서 바둑 프로그램을 지우라는 말이다(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편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거꾸로 ‘계기’를 부각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면 전날 밤 현관 앞에 운동화를 갖다 놓는 식이다.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려운 방법이다.

 

 

오랫동안 습관과 강박행동의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MIT 뇌․인지과학과 앤 그레이빌 교수. - Ann Graybiel 제공
오랫동안 습관과 강박행동의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MIT 뇌․인지과학과 앤 그레이빌 교수. - Ann Graybiel 제공

 

  물론 여기서 끝나면 그런 복잡한 연구를 한 보람이 없다. 동물실험 결과 놀랍게도 변연계아래피질에 있는 뉴런을 비활성화하자 습관화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습관화된 행동은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변연계아래피질의 통제 아래 진행되는 것으로 변연계아래피질이 잠자면 습관회로도 꺼진다는 것. 따라서 이 네트워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을 찾는다면 안 좋은 습관을 극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나쁜 습관이 점점 완고해져 극단으로 가면 나타나는 게 바로 강박증이다. 습관과 강박증을 구분하는 기준은 ‘의지력’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습관이 안 좋다는 걸 계속 ‘의식’하고 있어야 의지력이 유지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양심상 며칠이라도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바로 좀 전에도 점심을 먹고 바둑 한 판을 둔 뒤(졌다!) 지금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을.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