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계는 '공정한 차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2021.02.25 15:22

 

 

“과학자 사회는 생산성과 보상이라는 양 측면에서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다. 이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약 15%의 과학자가 전체 논문의 약 50%를 발표하고 있고, 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속한 저널에 발표된 논문 중 70%의 논문이 단 한 번 인용된 반면, 0.009%의 논문만 100회 이상 인용된다. 또 소수의 엘리트 과학자들은 과학자 사회의 명예와 자원의 분배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 과학자의 경력초리 생산성과 인정의 결정요인들’ 중에서⁠

 

“책에도 썼지만 수업 시간에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였을 때 느꼈던 학생들의 분위기는 저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이십대 대학생들이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문제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질 거라 예상했거든요.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달랐죠.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거죠. 처음 느꼈던 감정이었죠. 그래도 이십대라면 이해타산을 떠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실감이 들더라고요.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이라는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이런 식의 개인주의는 없었다고 봐요. 지금은 연대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사회학자 오찬호, “이십대는 왜 차별에 찬성하게 되었나” 중에서⁠


20대는 왜 차별에 찬성하는가


자본주의적 질서를 따르는 현대사회의 체제 속에 뿌리 깊은 불평등의 구조가 이념이 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자본주의체제를 따르는 국가들 중 부의 양극화를 겪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 문제는 현대사회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세계 억만장자 2천여명이 46억명보다 더 부유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참담함은⁠, 단순히 공정한 과세의 문제로 풀기엔 처참할 정도로 구조적이다. 사회체제의 구조는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념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는 능력주의가 평등을 강화시킨다는 이념으로 강화되고, 이러한 무의식적 이념은 대학입시로 인생을 결정하는 한탕주의와 대학입시에서 사교육과 부모의 인맥을 이용한 세습주의를 정당화하는 문화로 정착된다. 능력주의라는 환상 속에 획일화된 보상체계에 길들여진 사회구성원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모든 사회적 자원을 투여하는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능력주의의 신화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하고, 그 해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혁신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의 변화를 능력주의 사회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처참한 현실을 몇 십년 동안 참고 견디라고 주장하는 셈이기도 하다. 교육은 능력주의 신화 해체의 궁극적 목표일뿐, 궁극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체제 또한 능력주의 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의 폐해가 심각하게 대두된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카인 샌델 하버드 교수는, 소득기준의 변화나 대입 추첨제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표).  하지만 이 표에 제시된 대안들은 능력주의에 대한 잠정적 대안들일 뿐이다. 특히 샌델 교수가 장기적인 대안으로 제시한 “‘성공’에 대한 사회 전반의 태도변화”는 사회체제의 변화로 인해 나타날 결과일 뿐 원인이 될 수 없다.

 

출처 : 박효민 (2019), 능력주의(meritocracy)를 넘어서 : 능력주의의 한계와 대안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무한경쟁 상태로 내몰린 한국의 20대들에 대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사회학자 오찬호 씨는 능력주의 지탱의 근간이 되는 이념이 기회와 과정의 공정성이므로, 현실 속에서 많은 차별을 받은 사람들에게 ‘결과의 차별’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은 급진적인데다 모순적이다. 능력주의 사회를 구현하려면,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원칙을 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씨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의 기반에는,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사회의 현실적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이 사회의 능력주의는, 결과적으로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조성할 뿐이다. 그 속에서 차별에 찬성하는 20대는 어른들이 만든 사회체제의 희생자일 뿐이다. 오 씨는 한국의 20대를 위해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 전 하버드대 교수를 소환한다.

 

-메리토크라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새로운 세습특권 사회로 이향하게 된다. 과학기술계 또한 이런 기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림출처: 24차 KIPA 공공리더십 세미나 자료집
-메리토크라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새로운 세습특권 사회로 이향하게 된다. 과학기술계 또한 이런 기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림출처: 24차 KIPA 공공리더십 세미나 자료집

인종차별과 능력주의로 인한 부의 양극화 등 미국 사회의 거대한 모순을 지켜보며 정치철학자가 된 롤스 교수는 평생 사회의 ‘정의’라는 문제에 천착했다. 그가 1958년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는 철학, 윤리학은 물론 정치학, 경제학, 법학 등 인문사회과학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가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해 내놓은 《정의론》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등의 정의론에 영향을 미친 사상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현실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한 정치철학자의 평생 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경쟁으로 질주하는 현대사회는 물론, 과학자 사회의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될 대안을 담고 있다.


존 롤스, 무지의 장막에서 피어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정의론 1절 중에서⁠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精緻)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돼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돼야 한다.” -존 롤스⁠

 

롤스 교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의 첫 문장에서 “정의와 공정의 개념이 같은 것이며, 이 둘을 구별할 필요도, 둘 중 무엇이 더 근원적인지를 논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게되는 건 실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의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롤스 교수는 사회적 덕의 총제로 정의를 파악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도, 사회가 규정한 법의 준수로 정의를 파악했던 홉스와도 다른 의미로 정의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덕이나 법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회관계규범’으로서의 사회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롤스 교수는 사회를 “상호이익을 위한 협동체”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런 협동체로서의 사회가 지닌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사회의 각 구성원은 협동에 의해서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바로 이 점에서 이해관계의 일치를 공유한다. 하지만 사회전체가 획득한 이익의 분배방식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의 대립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롤스 교수는 바로 이 기본적인 딜레마 때문에, 사회는 이익의 분배와 협동을 위한 비용의 분배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정의의 핵심이 된다. 즉, 사회정의의 핵심은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롤스 교수의 사회정의에 대한 관념이 지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공정한 분배의 정의야말로 사회정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즉, 롤스는 모든 사회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을 위한 이익과 부담의 분배에 관해서만 정의라는 관념을 사용하려고 한다. 즉, 공익을 위한 이익과 부담의 분배문제가 아니라면, 롤스 교수는 정의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둘째,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민주적 안정성과 도덕성이 높은, 질서정연한 사회를 가정한다. 왜냐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분배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사회정의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롤스가 가정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든 구성원이 정의의 원칙들이라는 동일한 행동규칙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 승인할 수 있는 사회다. 셋째, 롤스 교수는 자신이 제안하는 분배의 원칙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던 간에, 그 과정을 거쳐 등장한 현상은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정의로우면, 정의로운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넷째, 롤스 교수는 벤담에서 유래된 공리주의에 반대한다. 롤스 교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사회구성원이 만족하는 총량만 다루었을 뿐,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그 총량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큰 이익을 위해 소수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며, 결국 노예제도까지 인정하는 파국을 초래한다⁠('이환구.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사회, 4, 9-27.'의 12쪽 요약)

 

롤스 교수는 자신이 제시하는 사회정의의 원칙이 실질적으로 실현가능함을 보이기 위해, 우리에게 몇 가지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우선 사회적 이익과 부담의 분배라는 문제에서, 우리가 모두가 타인의 이해관계에 대해 상호 무관심한 합리적 존재라고 가정한다. 물론 현실 속에 그런 인간은 없다. 바로 이 상호 무관심의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해 ‘무지의 장막’이라는 조건을 추가한다. 무지의 장막 속에 놓인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등 자신이 사회 속에서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 롤스 교수는 바로 이런 두 조건 하에서 도출된 사회적 합의는 공정할 것으로 예측한다.

 

롤스 교수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한 뒤 이렇게 말한다. 무지의 장막 속에서 상호 무관심한 구성원들은,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중 한 계층에게 분배의 몫을 극대화하라는 주문에, 대부분 하위층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지의 장막이라는 조건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하위계층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될 것이고, 이 불안 때문에 분배의 몫이 낮은 하위계층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최소극대화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롤스의 이 원칙은 단순한 철학자의 형이상학적 논의가 아니다. 실제로 롤스가 제안하는 이 사고실험을 따라 현실 속에서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실제로 EBS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진행한 실험을 보여준다. 법과 정의 2부 - 정의의 오랜 문제, 어떻게 나눌까? EBS 다큐프라임 화면 갈무리
실제로 EBS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진행한 실험을 보여준다. 법과 정의 2부 - 정의의 오랜 문제, 어떻게 나눌까? EBS 다큐프라임 화면 갈무리

예를 들어 4명의 남매가 있고, 이들이 부모가 남긴 빛 6천만원을 값아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첫째는 연소득이 1억, 둘째는 연소득이 4000만원, 셋째는 연소득이 8000만원, 넷째는 연소득이 2000만원이고 은행빚이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네 명의 일반인을 뽑고 그들에게 이 네 형제 중 한 명의 인형을 뽑도록 한다. 물론 피실험자들은 그 인형이 누구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알지 못한다. 부모의 빛 6천만원을 어떻게 값는게 좋을지를 토론하게 한 후 결정을 하게 하면, 모든 참가자들은 넷째가 가장 적은 몫을 분담하고, 첫째가 가장 많은 몫을 분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무지의 장막 덕분에, 피실험자 모두가 자신이 넷째가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지의 장막이 없이, 각자가 실제로 현실 속에서 각 형제의 이익을 대변할 경우, 분배의 몫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경우를 가정했을 때, 인간에겐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극대화의 원칙을 도입하려는 본능이 있다. 

 

이 상황을 우리 사회의 학벌과 대학입시의 문제에 도입해보자. 4명의 학생이 있다. 이 4명은 모두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이들은 비슷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고, 성적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한 명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청난 사교육을 받았고, 한 명은 학원에 다녔고, 한 명은 혼자 공부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공부를 해야 했다고 가정하자. 이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두고 하는 경쟁과 그 한국적인 결과는, 과연 롤스의 공정의 원리에 부합하는가. 최순실 사태와 조국 사태에서 표출된 청년세대의 분노는 과연 감정적인 것일까. 한국사회는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으로 인해, 최소극대화의 원칙이 산산히 무너져버린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롤스 교수가 그의 《정의론》에서 제시한 최소극대화의 원칙은, 원초적 상태에 처한 대부분의 인간이 동의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가 나아가야할 이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롤스 교수가 《정의론》에서 제시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위한 여러 원칙들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현장의 과학자는 위에서 나열된 롤스의 현실인식과 과학생태계의 현실을 비교해봐야 한다. 과연 과학생태계는 능력주의로부터 자유로운가. 과학계는 이익과 부담을 분배하는 과정에서의 공정함에 대해 단 한번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무너진 과학계가 수행하는 과학은 과연 건강한 지식의 축적일까. 이미 많이 늦었지만, 과학자사회는 심각하게 공정과 정의의 문제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과학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공정한 차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김명심, & 박희제. (2011). 한국 과학자의 경력초기 생산성과 인정의 결정요인들: 대학원 위신과 지도교수 후광효과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5(5), 105-142.
-홍유진, 오찬호, & 권영탕. (2014). 이십대는 왜 차별에 찬성하게 되었나. 인물과사상, 15-32.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0/01/62811/
-박효민. (2019). 능력주의(meritocracy)를 넘어서 : 능력주의의 한계와 대안.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 211-211.
-24차 KIPA 공공리더십 세미나 자료집
-오찬호(2015).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경기도: 개마고원. (Translated in English) Oh, C.H.(2015). We are in favour of discrimination: Self Portrait of a 
monster in your twenties. Gyunggi: Gaemagowon
-”박남기.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 敎育學硏究 54.3 (2016): 63-95. “에서 재인용
- 존 롤스, 황경식 옮김, H정의론H, 이학사, 2003
-이환구. (1990).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사회, 4, 9-27.
-법과 정의 2부 - 정의의 오랜 문제, 어떻게 나눌까? EBS 다큐프라임, EBS Docuprime, 2014.05.27
-https://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93
-롤스의 정의론을 소재로 만든 EBS 다큐 https://youtu.be/C-R-05aopSk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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