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거짓말 잠수부', 그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2014.04.21 18:00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켓을 빌렸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 영화 ‘리플리’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톰 리플리(맷 데이먼 분)의 대사다. 그가 잠시 빌려 입은 미국 명문대 자켓을 알아본 한 선박 재벌은 자신의 아들도 같은 대학 출신이라며 호의를 나타낸다. 얼떨결에 그 아들을 안다고 거짓말한 뒤부터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 이탈리아에 가서 아들을 만나달라는 재벌의 부탁에 고민하던 리플리는 재벌이 제공한 호화 유람선을 타고나서 자신도 상류층에 속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작 ‘리플리’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제공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작 ‘리플리’ 스틸컷 - 동아일보DB 제공

  이처럼 자신의 거짓말이나 망상을 현실과 혼동해 사실로 믿어버리는 증상을 ‘공상적 허언증(虛言症)’ 또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국민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자신을 민간 잠수부라고 속이고 한 종편과 인터뷰를 해 공분을 산 홍가혜 씨 역시 같은 증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홍 씨는 과거 한 아이돌그룹 멤버의 사촌언니 행세와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애인 행세 등을 일삼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상적 허언증 환자는 돈, 명예 등 겉으로 드러나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는 본인 내부에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을 믿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게 된다. 이번 홍 씨의 행동은 후자에 속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이라도 입 밖으로 뱉어내는 순간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며 “홍 씨 역시 거짓말을 하는 동시에 그 내용을 그대로 믿어 본인만의 망상세계를 구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허언 증세는 갖고 있기 마련. 김 교수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것도 일종의 허언이지만 이런 빈말은 긍정적”이라며 “문제는 이번 홍 씨 사건처럼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거짓말이 난무할 경우 실종자 가족이 받을 정신적 고통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제공
동아일보DB 제공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져 심리적으로 동요되기 쉽다. 공상적 허언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홍 씨의 입에서 나온 정보에 실종자 가족이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면 무의식적으로 이를 ‘부인(Denial)’하려는 증상이 강해지기 때문에 희망을 줄 만한 정보를 들으면 일단 무조건 받아들이게 된다”며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자세로 정확한 사실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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