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미래 세대에게 떠넘겨버린 탄소중립의 부담

2021.01.06 12: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대통령이 느닷없이 들고 나온 ‘2050 탄소중립’이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퇴행적 연출에 그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듯했던 초지능‧초연결‧초현실의 화려한 미래가 갑자기 30년 전의 낡은 유행가(‘더 늦기 전에’)와 폐플라스틱 넥타이로 채워진 40년 전 무채색의 흑백 화면으로 곤두박질쳐버렸다. 탄소중립이 세계적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현실을 몽땅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실무를 떠맡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도 무덤덤하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요지부동이고,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미련도 여전하다. 어차피 미래 세대가 떠맡게 될 먼 30년 후의 일을 벌써부터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자세다. 결국 여당의 싱크탱크도 2050 탄소중립을 ‘여건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해버렸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40여 일 동안 고심했던 탄소중립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셈이다.

 

실현가능한 저탄소 전략이 있어야

 

2019년 9월 기후정상회의에서 65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사실이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망설이던 중국과 일본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우리도 탄소중립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나설 수도 없다. 지난 60여 년 동안 애써 만들어놓았던 지게도 맹목적인 탈원전으로 한 쪽 다리가 부러져버린 상황이다.


탄소중립의 출발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저탄소’다. 석탄・석유・LNG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만으로 되는 일은 절대 아니다. 무의미한 녹색・그린・청정의 요란한 구호만 떠들썩했던 지난 10여 년 동안의 ‘녹색성장’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녹색성장에서 배출량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유가・순환정전・미세먼지・한파・폭염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넋이 빠질 지경이었다. 저탄소를 위한 기술도 개발하지 못했다. 결국 손쉬운 석탄발전만 잔뜩 늘어났고,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는 화려한 유리 건물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2030년까지 배출량 기준 37%를 감축하겠다던 목표가 오히려 15% 증가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일반적인 평가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기후악당’이라는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말만 요란했지 정작 우리가 지구촌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삼등 국가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 인구밀도는 높고, 에너지 자원은 없다. 엎친 데 덮친다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것도 심각한 부담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산업개편을 들먹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뚝딱하고 만들어주는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터리・수소 등의 ‘우수한 저탄소 기술’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 중에서 진정으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기술은 ‘원전’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원전을 위험해서 포기하겠다면, 탄소중립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환경부가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마련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너무 비현실적이다. 15개 부처가 참여해서 폭넓은 사회적 논의와 녹색성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것은 절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정책・환경 전문가들의 현대 기술에 대한 이해가 절망적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깨끗한 전기・수소’의 정체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2.5시간만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과 LNG를 연소시켜야만 생산이 가능한 개질 수소를 ‘깨끗하다’고 믿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환상과 착각이다. 장시간의 충전이 필요한 배터리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저탄소 전략을 준비하지 못하면 탄소중립의 꿈은 버릴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회수’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으로 숲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산림청은 탄소 흡수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나무로 우거진 서울 여의도공원. 산림청 제공
서울 여의도공원. 산림청 제공

탄소중립에서 저탄소 전략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과제인 ‘탄소 회수’(carbon offset)에 대한 환경부의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안이하다. 환경부의 LEDS에서 탄소 회수는 ‘산림・갯벌・습지 등의 자연・생태의 탄소 흡수 기능 강화’가 고작이다. 산림의 노령화 문제를 개선하고, 목재 이용률을 제고하여 숲에 의한 탄소 저장량을 높여 나가는 정도가 고작이다. 도시 숲과 정원 등 생활권 녹지의 조성, 훼손 지역과 주요 생태축의 산림 복원, 유휴 토지의 조림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림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식량기구(FAO)와 유엔환경프로그램(UNEP)가 공식 문서에서 인정한 명백한 사실이다. 1960년대 말부터 산림조합을 활성화시키고, 화전민을 정착시켜서 어렵게 이룩한 성과다. 전국의 모든 산이 이미 울창한 숲으로 변해버린 상황이다. 수종 갱신과 숲 가꾸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탄소중립에 필요한 탄소 회수에 추가적인 기여를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태양광・풍력과 ‘자연인’으로 부활한 화전민의 산림 파괴를 경계해야 한다.

 

갯벌과 습지의 탄소 회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황당하다. 갯벌과 습지를 인위적으로 늘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탄소 회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갯벌과 습지가 대기 중의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한다는 이야기는 몹시 낯선 것이다. 자칫하면 환경부가 전국의 습지를 광합성을 하는 ‘녹조’로 라떼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사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저장・활용하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이나 ‘인공광합성’이 빠진 탄소중립은 맹목적인 탈탄소(carbon-free)만큼이나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탈탄소는 지난 50만 년 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이룩해놓은 인류의 ‘탄소문명’을 송두리째 거부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일 뿐이다. 저탄소에 이어 탈탄소를 주장하던 유럽의 환경주의자들이 느닷없이 ‘탄소중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뒤늦게 그런 오류를 깨달은 탓이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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