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영면에 들어간 천문학의 노병들

2021.01.02 12:00
 

지난해 12월 1일, 57년간 천문학자들의 눈이 돼 주었던 아레시보천문대가 부서졌다. 그보다 앞선 1월엔 16년간 활동해온 스피처우주망원경과의 신호가 끊겼다. 이들은 각기 활동한 영역과 기간은 다르지만 일생을 우주만 바라보다 잠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RIP(Rest in Peace)’보단 ‘RIS(Rest in Space)’가 어울리는 이유다.  초기 임무 기간을 훌쩍 넘어서 사라지는 순간에도 우주를 정조준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무너지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지난해 12월 1일 오전 7시 56분(현지시간),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지역에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아레시보 천문대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소리였다. 위태롭게 허공에 매달려 있던 전파망원경이 137m 아래에 있는 거대한 반사경에 추락했다. 이미 같은 해 8월과 11월, 900t의 전파망원경을 지탱해온 철제 케이블이 잇따라 끊어지며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실낱 같은 희망으로 복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긴 탄식을 내뱉었다.


1963년 완공돼 57년간 운영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지름이 305m로 완공 이후 50년 이상 ‘세계 최대 단일 전파망원경’ 자리를 지켜왔다. 비록 2016년 완공된 지름 500m의 중국 ‘FAST’에 밀리며 2위로 내려왔지만, 숱한 기념비적인 발견에 참여하고 여러 대중매체에 등장하면서 여전히 천문학자와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망원경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전파망원경이 거대한 크기로 건설된 이유는 가까이 있는 물체를 구분해 보는 능력인 분해능 때문이다. 전파망원경은 관측 파장이 짧을수록, 망원경의 크기가 클수록 분해능이 좋아진다. 특히 전파는 가시광보다 파장이 긴데, 이 때문에 망원경을 최대한 크게 지어야 충분한 분해능을 얻을 수 있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타이틀을 보유했던 만큼 기존의 다른 전파망원경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굵직한 발견을 여럿 했다. 대표적으로 맥동 주기가 불규칙한 펄서(맥동전파원)를 발견했다. 펄서는 초고속으로 자전하는 중성자별로 강력한 전자기파를 전파 빔 형태로 내뿜는 특성이 있다. 전파 빔은 특정한 방향으로만 나오는데, 자전하면서 이 빔의 방향이 지구를 향할 때에만 관측된다. 맥박이 뛰듯 규칙적으로 관찰된다고 해서 맥동전파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4년 미국의 천문학자 조지프 테일러와 러셀 헐스는 아레시보천문대에 도달한 전파를 이용해 펄서를 관측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펄서는 맥동 주기가 일정해야 했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테일러와 헐스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분석해 두 개의 펄서가 서로를 중심으로 7.75시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펄서를 ‘쌍성 펄서’라고 부른다. 두 연구자는 새로운 형태의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쌍성 펄서를 발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오랜 시간 관측해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20년 가까이 꾸준히 관측한 결과 펄서의 공전주기가 1년에 약 1만 분의 1초씩 짧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펄서에서 발생한 중력파가 공전 에너지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2010년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강지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천문대 한 켠엔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펄서 주기의 변화와 실제 관측값이 얼마나 비슷한지 나타내는 그래프가 아직도 걸려 있다”며 “쌍성 펄서 발견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역사에서도 특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외계생명체가 쏜 전파를 포착하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SETI)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1974년 지구에서 2만 5000광년 떨어진 허큘리스 대성단을 향해 지구의 정보를 담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2년에는 지구에서 980광년 떨어진 펄서 PSR B1257+12를 도는 행성 두 개를 발견했다. 태양계 밖에서 발견한 최초의 외계행성이었다.


현재 SNS에서는 ‘#WhatAreciboMeansToMe(아레시보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해시태그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천문학자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생물학자, 식물학자 등 전 세계 과학자와 일반인들이 참여했다. 


강 연구원은 “콘택트나 007시리즈 등 영화에도 등장했고 미국의 인기 관광지인 푸에르토리코를 찾았다가 아레시보 천문대에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 사람들에게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며 “천문학자의 입장에서는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기조로 최대한 많은 과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려 했던 곳이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여러 대의 망원경을 연결해 구경을 수십~수백km로 높이는 간섭계 전파망원경이 아레시보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냉각제 고갈 위기도 넘겼지만, 결국 은퇴 선언한 스피처 우주망원경
 

지난해 1월 30일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적외선 우주망원경인 스피처 우주망원경의 은퇴식이 열렸다. 2003년 발사돼 16년간 활동한 노장 우주망원경이 임무를 마치는 순간이었다. 설계부터 조립, 발사, 운영 등 스피처와 함께했던 연구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스피처 우주망원경의 신호가 끊기는 순간을 함께했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적외선 파장을 포착한다. 가시광선 파장대에선 볼 수 없는 ‘차갑고, 늙고, 먼지 가득한’ 우주의 천체를 연구하는 데 유용하다. 주로 외계행성이나 갈색왜성, 우주 탄생 시기에 만들어진 초기 별의 비밀을 밝혀냈다.


2005년에는 최초로 외계행성에서 나오는 빛을 직접 포착했다. 목성형 행성 HD 209458b과 TrES-1에서 나오는 빛으로,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이들의 온도가 1000K 이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지구형 행성 7개를 품고 있는 트라피스트-1 행성계도 찾아냈다. 푸에르토리코 거주가능행성 연구실(PHL)에 따르면 이 중 4개의 행성은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환경의 행성으로 분류된다. 스피처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의 매니저로 활동했던 NASA의 리사 스토리-롬바르디아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트라피스트-1 행성계 발견은 스피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며 “당시 구글 두들(특별로고)로 제작되는 등 전 세계인도 주목했던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은하를 적외선으로 포착한 파노라마 자료(GLIMPSE Survey)도 남겼다. 은하 중심으로부터 호를 그리며 11만 개의 지점을 기준으로 44만 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 이어붙였다. 사진에는 늙은 별들이 방출하는 빛(파란색)과 가장 어린 별들이 방출하는 빛(빨간색), 별의 ‘배아’인 다환방향족 탄화수소(초록색)가 나타난다.(오른쪽 사진)


2009년에는 토성을 둘러싼 거대한 고리를 발견했고, 2012년 지구에서 2800만 광년 떨어진 솜브레로 은하가 거대한 타원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태양계 안부터 먼 우주까지 다양한 모습을 관측했다.


발사 당시 연구자들은 스피처 우주망원경에 탑재된 액체 헬륨 350L가 모두 소진되는 5년 뒤까지 임무를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액체 헬륨은 망원경 온도를 극저온(1.2K)으로 낮춰 망원경으로부터 나오는 복사열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높은 감도로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적외선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2009년 5월 15일 액체 헬륨을 모두 소진했다. 망원경의 온도가 올라갔고, 장파장을 탐지하는 적외선 분광기와 다중밴드 이미지 광도계의 감도가 0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단파장을 탐지하는 적외선 배열 카메라 두 대가 아직 감도를 잃지 않았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일명 ‘따뜻한 탐사’로 임무를 전환했고, 단파장 이미지를 중심으로 10년 넘게 추가 임무를 이어 갔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오던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은퇴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통신 문제였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지구를 뒤따라가며 태양 궤도를 돌았다. 이 과정에서 지구와는 매년 1600만km씩 멀어졌다. 은퇴 당시인 2020년 초에는 지구와 스피처 우주망원경 사이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도 멀어졌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통신을 위한 안테나도 지구 쪽으로 기울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태양광 패널도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의 태양광 패널은 태양광 에너지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수준으로 기울어졌고, 결국 임무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롬바르디아 박사는 “장비에는 문제가 없어 스피처를 아주 느린 데이터 전송 모드로 계속 운영할 수도 있었지만 스피처 미션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과 논의한 끝에 은퇴를 결정했다”며 “스피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한 과학(great science)을 해냈으며 스피처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자신의 커리어에 많은 부분을 스피처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양계 밖으로 나간 유일한 여행자, 보이저 탐사선

 

 

2015년 NASA의 프로그래머 모집 공고는 조금 특이했다. 프로그래머들이 요즘 쓰는 파이썬이나 C, C++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코볼, 포트란, 알골을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컴퓨터 언어들은 모두 1900년대 중반에 주로 쓰였던 언어다. 보이저 탐사선 개발 당시 참여했던 마지막 엔지니어가 은퇴하면서 나온 모집 공고였다. 보이저 임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이저 1호와 2호는 목성과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하기 위해 1977년 발사됐다. 이 해는 목성과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일렬로 정렬되는 176년만의 기회였다. 보이저는 네 개의 행성을 차례로 근접 비행하며 각 행성의 고리와 자기장, 위성까지 관측했다. 목성의 고리를 발견하고 위성인 유로파의 매끄러운 표면을 포착했으며, 토성 고리의 세밀한 모습을 지구로 보내왔다. 


1989년 보이저 2호가 해왕성까지 탐사를 마치며 첫 임무를 끝냈다. 이후 태양계 가장자리와 태양계 너머를 탐사하는 성간 임무를 새로 부여받아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8월, 보이저 2호는 2018년 11월 태양계를 벗어났다. 인류가 만든 기기가 태양계를 벗어난 것은 처음이며 현재 이들이 날아간 거리는 100억km가 넘는다.


보이저 1호와 2호는 각각 태양권계면의 북쪽과 남쪽을 통과하며 자기장과 플라스마의 변화 등 태양권계면의 물리적 특성을 알아냈다. 보이저 임무에 참여하고 있는 박지우 NASA 고다드 우주센터 태양권 물리학 실험실 연구원은 “태양권계면 안쪽에서는 자기장의 변동이 마치 소리처럼 파동의 이동 방향과 매질의 진동 방향이 평행한 ‘종파’ 형태였는데, 태양권계면 바깥으로 멀어지면서 파동의 이동 방향과 매질의 진동 방향이 수직인 ‘횡파’로 바뀌었다”며 “이 차이가 태양권과 성간 공간을 구분하는 특징이라 추측하고 있지만 보이저 탐사선이 태양권계면에서 수십 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보이저 2호의 관측 결과로 태양권계면을 벗어나자 플라스마의 밀도가 20~50배 증가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보이저 임무는 곧 종료를 앞두고 있다. 보이저는 플루토늄-238를 원료로 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RTG)로 전력을 얻는다. 현재 10개의 관측장비 중 불필요한 관측장비를 멈추고, 보온 장치를 끄는 등 전력을 최대한 아끼고 있지만 최대 2025년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 연구원은 “1년에 두 번 열리는 보이저 임무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모임을 가면 대부분이 70~80대인데,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연구결과를 열정적으로 발표하고 토론한다”며 “이런 연구자들과 우주 탐사 역사의 기록적인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후임자를 기다리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

 

 

 

 

발사된 지 30년이 넘은 허블우주망원경도 천문학계 노병 중 하나다. 다섯 차례의 수리로 여러 위기를 극복하면서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의 은퇴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허블망원경의 바통을 이어받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곧 발사된다. NASA는 2009년 이후로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지 않고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허블 딥 필드’와 ‘허블 울트라 딥 필드’, ‘허블 익스트림 딥 필드’도 그중 하나다. 한 지점을 수일에 걸쳐 촬영해 까만 우주에 숨겨져 있던 먼 은하를 담는 프로젝트다. 덕분에 은하의 개수, 모양과 진화 과정 등 은하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됐다. 허블우주망원경이 1995년 큰곰자리의 일부분을 10일간 촬영한 자료를 정리한 허블 딥 필드 논문은 1500회 이상 인용됐다.


1992년 최초로 블랙홀을 간접 관측한 것도 허블우주망원경이었다. 은하 M87의 중심부에서 태양 질량의 26억 배에 달하는 블랙홀을 발견했다. 이외에도 팽창 우주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 초신성 관측, 소행성대의 진화 추적, 탄생 초기의 별 관측 등 천문학계의 굵직한 발견 뒤에 허블우주망원경이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로 암흑물질도 찾고 있다. 암흑물질은 우주 전역에 분포하지만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아 관측이 어렵다. 그래서 직접 관측하는 대신 암흑물질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포착한다. 암흑물질의 중력은 주변 공간을 왜곡시키고, 이 때문에 근처를 통과하는 빛이 휘어지는 중력 렌즈 효과가 나타난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은하단에서 왜곡된 은하를 찾아 암흑물질의 존재와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암흑물질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차세대 허블우주망원경으로 불리는 제임스 웹 망원경은 허블우주망원경보다 훨씬 먼 150만km 상공, 라그랑주 제2점(L2)에 설치될 예정이다. 라그랑주 L2 지점은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과 지구의 원심력이 같은 지점으로, 제임스 웹 망원경은 별도 추진 장치 없이 지속적으로 지구 궤도를 돌 수 있다. 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우주망원경보다 100배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다. 노병 허블의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그 뒤를 잇는 후임이 빈자리를 메우며 우주를 응시하는 인류의 눈이 돼 줄 것이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2021년 1월호 천문학계 노병, 우주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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