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재 명당

2014.04.21 15:49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노화와 노쇠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살아온 내력, 독특한 향기와 색깔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택이 그러하다. 거기에는 100년 이상의 세월을 이어온 종가의 가풍과 독특한 건축학적 특징,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존재 자체로의 권위와 가치가 있다.

 

충청북도 보은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북의 대표적인 부농 살림집이다. - 양길식 제공
충청북도 보은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북의 대표적인 부농 살림집이다. - 양길식 제공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153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보은 선병국 가옥(報恩 宣炳國 家屋)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북의 대표적인 부농 주택이다. 약 12,900m2(3,900평)의 넓은 부지에 들어선  선병국 가옥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 등 건축 면적이 약 492m2(149평)에 이른다. 건물 앞으로는 넓은 마당을 두었고 사랑채, 안채, 사당에는 다시 내부 담장을 쳐 궁궐의 외성과 내성을 연상시킨다. 다른 고택과 달리 이중으로 담을 친 이유는 넓은 땅을 넉넉히 활용하고 남녀의 구별이 엄격했던 당시의 규범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를 확실히 분리하기 위해서였다. 당대의 거부(巨富)였던 만큼 외부로부터 집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또한 필요했을 것이다.

 

선병국 가옥의 담장은 일반 주택과 달리 집 외부를 담싼 외담과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을 감싼 내담이 있어 마치 궁궐의 외성과 내성같은 느낌을 준다. - 양길식 제공
선병국 가옥의 담장은 일반 주택과 달리 집 외부를 감싼 외담과 안채, 사랑채 등 주요 건물을 감싼 내담이 있어 마치 궁궐의 외성과 내성 같은 느낌을 준다. - 양길식 제공

보통의 고택은 당대에 높은 벼슬을 한 권세가나 큰 문중의 종가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선병국 가옥은 특이하다. 현재 가옥에 거주하고 있는 선민혁 씨에 의하면, 조선 말엽에 고조할아버지인 선영홍 옹이 지방이나 섬에서는 출세가 어렵다고 생각해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전남 고흥을 떠나 새로운 거처인 보은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통영과 보은을 오가며 무역업을 시작해 크게 번창했으며, 그렇게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이곳에 터를 잡아 가옥을 지었다고.

 

선병국 가옥은 1903년(고종 40년) 10월 착공해서 1925년에 완공됐다. 을사늑약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려 22년 만에 선씨가(宣氏家)가 완성된 것이다. 고택해설가인 김주태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 가옥을 지으려면 당시 상당한 부가 있어야 가능했는데, 현재 화폐가치로 본다면 수백억 이상의 자산가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손병국 가옥의 이모저모, 좌-중문에서 바라본 사랑채, 우상-안채와 곳간, 우하-안채 정면 - 양길식 제공
선병국 가옥의 내부 모습. 중문에서 바라본 사랑채(왼쬭), 안채와 곳간(오른쪽 위), 안채 정면(오른쪽 아래) - 양길식 제공

선병국 가옥은 속리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집터를 감싸는, 시냇물이 모이는 외딴섬 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바깥에서 대문을 통해 바라보면 장엄한 속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이 가옥이 속리산을 올라가기 위한 관문처럼 보인다. 이는 건축물을 자연의 일부처럼 만드는 조상들의 친환경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로 봤을 때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인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어서 자손이 왕성하고 장수한다고 한다. 선민혁 씨는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들이 영민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올 거라는 지관풍수설에 따라 터를 정했다고 하는데,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며 반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나 지관의 말은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 가옥의 안채와 마주보는 행랑채는 수십 년째 고시생을 위한 공부방 겸 숙소로 쓰이고 있고, 현재까지 스무 명이 넘는 법조인을 배출했다고 한다. 선병국 가옥은 전국의 고시 준비생들에게 명당으로 통하고 있고 합격 후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오는 합격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영민하고 훌륭한 인물이 나오는 명당’은 맞는 셈이다.

 

좌-선병국 가옥의 종손인 선민혁씨, 중앙-종가의 자랑인 장독, 우-외담과 내담사이 고샅 - 양길식 제공
선병국 가옥의 종손인 선민혁 씨(왼쪽), 종가의 자랑인 장독(가운데), 외담과 내담 사이 고샅(오른쪽) - 양길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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