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하빌리스, 당신은 누구인가?

2014.04.14 18:00

  전통적으로 직립보행은 호미니드(hominid)를 말해주는 보증서였던 반면, 두뇌의 크기는 호모속(屬) 성원을 가려내는 표지였다. 그러다가 1964년 루이스 리키와 영국의 해부학자 존 네이피어, 남아프리카의 고인류학자 필립 토비어스, 이 세 사람이 1960년 올두바이에서 발견한 작은 두뇌의 화석에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그 전통은 깨졌다.
- 앤 기번스, ‘최초의 인류’ 중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요즘 필자가 ‘인연’을 갖게 된 동아프리카의 세 나라다. 물론 이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아니고 커피 원두를 통해서다. 예전에는 커피하면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중남미 나라들을 떠올렸지만, 핸드드립카페를 한 일 년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필자가 아프리카 원두를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다. 중남미 원두는 균형은 잘 맞지만 왠지 싱겁다고 할까. 향이 풍부하고 맛도 강렬한 동아프리카 원두로 내린 커피라야 한 잔 제대로 마신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주말을 지나며 이들 동아프리카 나라에 대한 관심이 불꽃처럼 확 달아올랐다. 말라리아가 무서워 아프리카 여행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가보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물론 며칠사이 커피에 대한 흥미가 급증해 커피나무(코페아 아라비카)의 원산지(에티오피아)를 방문할 마음이 생긴 건 아니다. 토요일 아침 모처럼 직접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가벼운 마음으로 학술지 ‘네이처’ 4월 3일자에 실린 한 기고문을 읽다가 ‘꽂힌’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그늘에 가려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인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발표 50주년(‘네이처’ 1964년 4월 4일자에 실린 논문)을 맞아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고인류학자 버나드 우드 교수가 쓴 논평이다. 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중고교를 다니던 한 세대 전만해도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순서대로 호모속(屬) 인류의 진화를 배웠다.

 

두개골 화석을 바탕으로 만든 호모 하빌리스 상상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과도기적 형태를 보인다. 아직 호모 하빌리스의 몸통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실체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두개골 화석을 바탕으로 만든 호모 하빌리스 상상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과도기적 형태를 보인다. 아직 호모 하빌리스의 몸통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실체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호모 하빌리스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호모 에렉투스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필자 역시 ‘과학동아’에 기사를 몇 편 쓰기도 했다.

 

  먼저 2004년 ‘네이처’에 발표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nsiensis)로, 연구자들은 섬에 고립돼 극단적인 왜소화가 일어난 호모 에렉투스의 일족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현생인류와 100만 년도 더 이전에 갈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가 불과 1만3000년 전에도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음으로 호모 에렉투스가 주목을 받은 건 미국 하버드대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교수의 ‘요리 가설’ 때문이다. 랭엄 교수는 요리가 없었다면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며, 최초로 ‘불을 제어하고 요리를 발명한’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를 한껏 치켜세웠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필자는 ‘과학동아’ 2007년 12월호에 ‘인류 진화의 원동력, 요리’라는 제목의 특집을 기획했고, 라틴어를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요리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라는 학명 형식의 별칭을 짓기까지 했다. 여담이지만 2011년 EBS의 한 다큐에서 ‘요리하는 인류, 호모 코쿠엔스의 비극’이라는 제목을 쓰는 걸 보고 약간 놀란 기억이 난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필자의 기사를 보고 원래 있는 용어라고 생각하고 쓴 걸까?)

 

  한편 랭엄 교수는 2009년 저서 ‘Catching Fire’(2010년 ‘요리 본능’이란 제목으로 한글판이 나왔다)를 발간하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2010년 영국의 BBC는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를 제작했다. 최근 KBS에서 방영한 다큐 ‘요리인류’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드 교수가 쓴 호모 하빌리스 50주년 이야기는 별 기대 없이 무심코 읽었는데 뜻밖에도 무척 흥미로웠다. 호모 하빌리스가 보고되고 2년이 지난 1966부터 현재까지 무려 48년 동안 호모 하빌리스를 연구했다는 우드 교수는 논평에서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명쾌하게 서술하면서 최근 발표된 두 가지 중요한 연구결과도 비중있게 소개했다. 그리고 끝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는데, 놀랍게도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를 떼버려야 한다는 것. 이게 호모 하빌리스에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 할 소린가!

 

●1960년 탄자니아에서 첫 화석 발견

 

  글 맨 앞의 인용구처럼 호모 하빌리스는 태생부터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 1959년 아내 메리 리키와 함께 탄자니아 올두바이에서 동아프리카 최초의 호미니드 화석을 발견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케냐 태생의 영국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는 여세를 몰아 깜짝 놀랄 발견을 이어갔다. 참고로 호미니드(hominid)는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에서 인간 쪽으로 갈라진 계열에 나타난 인류를 통칭하는 용어다. ‘진지(Zinji)’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 두개골은 180만 년 전 화석으로 밝혀졌는데, 훗날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라는 학명을 얻게 되고 인간의 직계조상은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당시 이미 호모속 인류가 살고 있었으므로).

 

 

‘사이언스’의 고인류학 담당 기자 앤 시먼스가 저서 ‘최초의 인류’에서 ‘리키와 호미니드 갱단’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인류학 분야에서 리키 집안 사람들은 큰 기여를 했다. 호모 하빌리스와 관련해서도 1960년 조너선 리키가 첫 화석을 발견했고 1964년 아버지 루이스가 논문을 쓰며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1972년 리처드와 미브 부부는 호모 루돌펜시스를 발견했고 2012년 미브와 딸 루이즈는 추가 화석 발굴을 통해 호모 루돌펜시스가 호모 하빌리스와 구별되는 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이언스’의 고인류학 담당 기자 앤 시먼스가 저서 ‘최초의 인류’에서 ‘리키와 호미니드 갱단’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인류학 분야에서 리키 집안 사람들은 큰 기여를 했다. 호모 하빌리스와 관련해서도 1960년 조너선 리키가 첫 화석을 발견했고 1964년 아버지 루이스가 논문을 쓰며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1972년 리처드와 미브 부부는 호모 루돌펜시스를 발견했고 2012년 미브와 딸 루이즈는 추가 화석 발굴을 통해 호모 루돌펜시스가 호모 하빌리스와 구별되는 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루이스 리키는 고인류학계의 마피아라고 할 수 있는 리키 가문(Leakey family)의 시조로 집념과 추진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위의 표는 고인류학에 기여한 리키가 사람들의 관계도로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가 망라돼 있다. 1903년 케냐에서 태어난 루이스 리키는(부모가 선교사) 16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기숙학교 생활을 ‘버틴 뒤’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해 인류학과 고고학을 공부했다.

 

  인류가 아시아에서 기원했고(1891년 외젠 뒤부아의 자바원인(호모 에렉투스) 발견), 인류의 문화는 유럽에서 시작했다는 당시 주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한 리키는 자신이 자랐던 동아프리카가 ‘인류의 요람’이라고 확신하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1926년 케냐로 떠났다. 참고로 1924년 남아프리카에서 레이먼드 다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두개골 화석(‘타웅 아이(Taung Child)’란 애칭으로 불림)을 발견해 이듬해 ‘네이처’에 보고했지만, 대다수 학자들이 어린 유인원으로 치부해 호미니드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1929년 리키 탐사대는 마침내 케냐 카리안두시 협곡에서 주먹도끼를 찾았고(훗날 50만 년 전 것으로 밝혀짐), 이에 확신을 얻은 루이스는 이 석기를 사용한 인류의 흔적을 찾는 집요한 탐사를 계속했다. 그는 1931년부터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을 집중적으로 뒤졌고, 마침내 1959년 7월 17일 아내 메리 리키가 호미니드의 두개골 화석, 즉 진지를 발견한 것. 이 화석은 석기가 발견된 같은 지층에서 나왔기 때문에 리키 부부는 이들이 석기를 만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학명에 차마 호모속을 달지는 못했다. 생긴 게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즉 진지는 뇌용량이 침팬지보다 약간 큰 500cc 정도로 현생인류의 3분의 1 수준인 반면 이빨은 무척 컸다(진지의 또 다른 별칭이 ‘호두 까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듬해 리키 부부의 장남인 조너선 리키가 호미니드 어린아이의 머리뼈와 턱뼈 화석을 발견했다. 진지와는 다른 부류임을 한 눈에 알아본 리키 부부는 이들이 진정 석기 제작자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하고 진지를 분석하기 위해 체류하고 있던 남아프리카의 고인류학자 필립 토비아스에게 두개골 분석을 맡겼고, 손 해부 전문가인 존 네이피어에게 함께 발견된 손목뼈와 손뼈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뒤이어 어른 발뼈가 발굴됐고 3년 뒤 다른 두개골과 턱뼈도 추가로 나왔다. 네이피어는 손뼈의 구조가 현대인과 같다고 결론내렸고 발뼈를 조사한 런던대의 마이클 데이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토비아스 역시 상대적으로 큰 뇌와 작은 턱이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몸통 화석 아직도 못 찾아

 

1972년 발굴된 190만년 전 호미니드 두개골. 처음에는 호모 하빌리스로 생각됐으나 고인류학자 우드는 좀 더 두드러진 눈 둘레 골격 등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다고 결론짓고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새 학명을 붙여줬다. - 위키피디아 제공
1972년 발굴된 190만년 전 호미니드 두개골. 처음에는 호모 하빌리스로 생각됐으나 고인류학자 우드는 좀 더 두드러진 눈 둘레 골격 등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다고 결론짓고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새 학명을 붙여줬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이런 결과를 요약하면서 이들을 새로운 호모속 인류, 즉 ‘호모 하빌리스’라고 명명한 논문이 1964년 4월 4일자 ‘네이처’에 실린 것이다. 리키 부부의 둘째 아들인 저명한 고인류학자 리처드 리키는 1994년 출간한 저서 ‘인류의 기원’에서 호모 하빌리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다.

 

 “두개골의 비교적 왜소한 모습은 이 개체가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보다 가냘픈 체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어금니가 더 작았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뇌가 거의 50% 정도 컸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호미니드는 영국의 저명한 고인류학자 윌프리드 르 그로 클락이 1955년 한 논문에서 제시한 호모속의 자격조건에서 한 항목이 미달이었다. 즉 직립자세와 이족보행, 자유로운 손 움직임 항목은 통과했지만 뇌용량이 650cc로 750cc 이상이라는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들은 논문에서 이 항목을 600cc 이상으로 완화하자고 제안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호모 하빌리스는 등장하면서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권위자인 존 로빈슨은 호모 하빌리스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혼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에티오피아에서 남아프리카에 걸쳐 호모 하빌리스일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몇 점 발굴됐는데, 1972년 리처드 리키와 아내 미브 리키도 케냐 쿠비포라에서 두개골과 안면부위, 아래턱, 이빨 등 화석 다수를 발견했다. 

 

  ‘네이처’에 호모 하빌리스 발표 50주년 해설을 쓴 버나드 우드는 1966부터 호모 하빌리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발목뼈의 구조가 현대인과 꽤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특징들도 1964년 논문의 주장과는 달리 현생인류와 그다지 가깝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1970년대 중반 리처드 리키는 우드에게 자신이 1972년 쿠비포라에서 발견한 화석들을 호모 하빌리스 한 종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며 정밀 분석을 의뢰했고, 우드는 15년에 걸쳐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1992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화석들이 호모 하빌리스와 함께 다른 종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난 2012년, 역시 ‘네이처’에 쿠피포라에서 추가로 발굴한 화석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놀랍게도 리처드의 아내인 미브 리키가 주도한 연구팀의 결과로 그녀의 딸(루이스의 손녀) 루이즈 리키도 참여했다. 이들은 178만~195만 년 전 화석 세 점을 분석해 20년 전 우드의 주장대로 호모 루돌펜시스로 봐야한다고 결론내렸다. 즉 호모속 초기에도 최소 두 가지, 즉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독립적인 계열이 존재했다는 것. 호모 하빌리스가 초기 호모속 인류로 독점권을 잃기는 했어도 여전히 존재는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추가 화석 발견을 토대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가 별개의 종이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연구결과가 2012년 ‘네이처’에 실렸다.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제시된 호모속 인류의 가계도로 초기 호모속으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 네이처 제공
추가 화석 발견을 토대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가 별개의 종이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연구결과가 2012년 ‘네이처’에 실렸다.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제시된 호모속 인류의 가계도로 초기 호모속으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 네이처 제공

 ●결국은 호모 에렉투스?

 

  그런데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 10월 18일자에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흑해 동부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굴된 180만 년 전 두개골 화석을 분석한 논문으로, 그 결론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루롤펜시스는 별도의 종이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의 변이형에 불과하다는 것. 지난 20년 동안 이 일대 177만~185만 년 전 지층에서 두개골 5점을 비롯해 인류 화석이 다수 발굴됐는데 특히 2005년 발굴된 ‘5번 두개골’은 이 시기의 것으로는 최초의 완벽하게 보존된 어른 호미니드 두개골이다.

 

  논문은 5번 두개골에 대한 상세한 분석결과로 뇌용량이 546cc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로 알려져 있고 체형을 추측하게 뼈들 역시 호모 에렉투스임을 알려주지만(다만 키가 145~166센티미터 정도로 작다), 뇌용량은 터무니없니 작아 호모 하빌리스보다도 작다. 또 생김새도 턱이 많이 튀어나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는 것 같다. 한편 두개골 5점을 비교분석해보면 비슷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차가 꽤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이들을 각자 다른 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화석의 외형적 특징만을 보고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는 건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서아시아 조지아 드마니스에서 발굴된 두개골 화석 5점. 177만~185만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걸친 화석들로 측정결과 변이가 상당히 심했지만 다른 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은 2013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이 모두 호모 에렉투스이며 같은 논리로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루돌펜시스도 호모 에렉투스의 변이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사이언스 제공
서아시아 조지아 드마니스에서 발굴된 두개골 화석 5점. 177만~185만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걸친 화석들로 측정결과 변이가 상당히 심했지만 다른 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은 2013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이 모두 호모 에렉투스이며 같은 논리로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루돌펜시스도 호모 에렉투스의 변이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사이언스 제공

 

  두개골 형태를 분석한 스위스 취리히대 마르시아 폰체 드 레온은 “드마니시 화석이 아프리카의 별개 지역에서 발견됐다면, 학자들은 각각 다른 학명을 붙여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을 호모 에렉투스로 볼 경우 아프리카의 여러 호모속 화석들도 호모 에렉투스 하나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버나드 우드 교수 호모 하빌리스 50주년 논평에서 드마니시 화석 연구자들의 결론에 반대한다며,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는 두개골 용량 외에도 신체 여러 곳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속귀의 모양과 크기(자세에 중요한 역할을 함), 손과 발의 특징 등이 꽤 다르다는 것. 여기서 더 나아가 우드는 “호모 하빌리스가 호모 에렉투스의 직계 조상이 되기에는 너무 닮지 않았다”며 “이들을 인간 진화로 이어지는 계보에 위치시키는 건 너무 단순한 선형 모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손을 쓰는 사람’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호모도 아닌 별도의 속을 부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드는 2012년 호모 루돌펜시스 화석 추가 발견 보고 논문에 대한 해설을 아래와 같은 글로 마무리했다.

 

 “예측컨대, 리키와 동료들이 호모 하빌리스를 기술한지 100년이 되는 2064년 무렵의 미래 연구자들은 인류 진화에 대한 오늘날의 가설들이 무척 단순화된 것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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