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미래]⑸전 세계 전기 자동차가 선택한 궁극의 배터리

2020.12.16 14:00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연구팀
전기 자동차에 쓰이는 이차전지의 소재를 연구하는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만났다. 이규철
전기 자동차에 쓰이는 2차전지의 소재를 연구하는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만났다. 이규철

글로벌 시장 예측 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210만대의 전기 자동차가 팔렸다. 현재 판매되는 자동차 중 전기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지만, 보고서는 2040년까지 판매되는 자동차 중 58%는 전기 자동차일 것으로 예측했다. 
 
전기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덩달아 2차전지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과 SK, LG, 롯데, 포스코는 이미 2차전지를 만들거나 2차전지에 쓰이는 핵심 소재를 만들고 있다. 국내 10대 기업 중 절반이 2차전지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해외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 성능 좋은 2차전지를 개발해야 미래 시장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예측한 바에 따르면 2021년 배터리 시장 규모는 64조원에 이른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시장이 활성화되기 훨씬 전부터 2차전지 소재를 연구한 2차전지 분야의 권위자다. 연구한 기간만 20년이 넘는다. 2차전지 관련 논문만 약 630개 발표했고, 연구정보 데이터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11월 18일 발표한 논문 피인용 횟수 상위 1% 연구자(HCR)에서 2개 분야(화학, 재료과학)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선 교수는 “지금 타고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23년째 잘 굴러간다”며 이라며 “전기 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려면 현재 수명이 10년 정도인 배터리의 성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금재 석사과정 연구원이 전자현미경으로 양극재의 입자 모양을 관찰하고 있다. 입자 모양이 구에 가까울수록 질량 대비 부피가 작아 배터리에 물질을 많이 넣을 수 있다. 이규철
한금재 석사과정 연구원이 전자현미경으로 양극재의 입자 모양을 관찰하고 있다. 입자 모양이 구에 가까울수록 질량 대비 부피가 작아 배터리에 물질을 많이 넣을 수 있다. 이규철

 

○ 2차전지의 성능 좌우하는 ‘양극재’

 

선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설립한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기반 미래소재연구단에서 하이브리드 경계면 기술을 활용해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선 교수의 연구 분야는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이다. 2차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차전지와 달리 양극과 음극에서 일어나는 원자의 산화·환원 반응 통해 충전과 방전을 할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보통 원자로 리튬(Li)이 쓰이기 때문에 ‘리튬 이온 전지’라고도 부른다.

 

리튬 이온 전지의 내부에는 이온이 움직일 수 있는 전해액 안에 양극과 음극이 분리막을 사이에 두고 놓여있다. 음극과 양극에 전기 공급을 원하는 장치를 연결하면 음극에 있던 리튬 원자가 이온화돼 내놓은 전자가 장치로 흘러 들어가 전기가 흐른다. 동시에 전해액을 타고 양극으로 이동한 리튬 이온은 장치를 거쳐 온 전자와 결합해 다시 리튬 원자로 돌아간다. 충전을 하면 이 과정이 반대로 일어나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이때 양극을 이루는 물질을 ‘양극재’, 음극을 이루는 물질 ‘음극재’다. 전기 자동차가 한 번의 충전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만큼의 거리를 주행하려면 음극재가 많은 리튬 원자를 붙들고 있어야 하고 양극재는 리튬 이온을 붙들 수 있어야 한다. 음극재와 양극재의 양을 늘리면 되지만 배터리 무게가 늘어나 전력 소모가 커지면 도루묵이다. 

 

이런 이유로 2차전지 연구는 곧 양극재와 음극재에 관한 연구고, 그중에서도 양극재가 중요하다. 선 교수는 “현재 쓰이는 양극재는 g당 1시간 동안 흐르는 전류량이 200mAh(밀리암페어아워), 음극재는 g당 360mAh 정도다”라며 “음극재보다 양극재의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양극재는 음극재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 싸고 구하기 쉬운 탄소로 이뤄진 음극재와 달리 양극재는 리튬에 니켈(Ni), 코발트(Co), 망간(Mn), 알루미늄(Al)을 혼합해 만든다. 세 물질 중 비중이 높은 물질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파나소닉은 양극재로 NCA(리튬니켈코발트알루미늄)을 쓰고, LG는 NCM(리튬니켈코발트망간)을 활용한다. 제조사마다 주성분이 다른 이유는 각 함유량에 따라 배터리의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니켈 함유량이 많으면 배터리 용량이 커지고, 망간 함유량이 많으면 가격이 낮고, 열에 안전하다. 비싼 코발트가 많으면 배터리 수명이 늘어난다.

 

 

○ 소재의 경계에서 찾은 ‘농도구배형’ 양극재

 

오래 주행할 수 있는 전기 자동차를 만들려면 양극재의 니켈 함량을 높이면 되지만 몇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충·방전을 많이 할수록 배터리 용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니켈 함량을 90~95%까지 올리면 용량 감소가 급격하게 일어난다.

 

선 교수는 양극재의 구조에서 원인을 찾았다. 둥그런 양극재 입자의 단면은 갓 베어낸 나무의 단면처럼 매끄럽다. 그런데 충·방전을 반복하면 마치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처럼 금이 생기면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다. 조각 사이에 생긴 틈으로 들어온 전해질은 반응성이 큰 니켈과 반응을 일으켜 양극재의 용량을 낮추고, 틈이 생긴 만큼 양극재의 열화가 빨라진다. 리튬 이온이 들어올 공간이 부족해지므로 배터리 용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극복한 방법을 묻자 선 교수는 장작 더미와 돌멩이 더미를 예로 들었다. 선 교수는 “길쭉한 장작을 쌓으면 전체 구조가 견고해 쉽게 밀리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며 “반면 둥그런 돌멩이를 쌓이면 바람만 불어도 쉽게 무너진다”고 말했다. 선 교수는 이런 원리로 만든 양극재를 ‘농도구배형’이라고 불렀다.

 

농도구배형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을 좌우하는 니켈로 중심에 밀집시키고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망간과 코발트로 외부를 감싼 양극재다. 이런 형태로 양극재를 만들면 충·방전으로 금이 가도 길쭉한 조각으로 쪼개진다. 장작처럼 구조가 견고하기 때문에 기존의 양극재보다 용량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결국 같은 성분의 양극재도 농도구배형으로 만들면 용량이 감소하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막는다.

 

선 교수는 2005년 1세대 농도구배형 양극재를 만든 후 2, 3세대를 거쳐 2015년 4세대 농도구배형 양극재를 만들었다. 세대가 지날수록 뚜렷했던 니켈, 망간, 코발트의 경계가 점차 연속적으로 변하자 배터리 성능은 더욱 향상됐다. “선 교수는 농도구배형 양극재로 만든 배터리를 전기 자동차에 사용하면 한 번 충전으로 6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고 10년 동안 사용해도 90% 이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도구배형 양극재는 안정성도 향상됐다. 농도구배형 양극재로 만든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한 후 뾰족한 도구로 찔러 온도 변화를 관찰한 결과 최대 70도까지만 상승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 보통 배터리는 400도가 넘게 온도가 상승한다.

 

선 교수가 농도구배형 양극재로 만든 배터리는 이미 많은 전기 자동차에 쓰이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니로 EV와 니로 PHEV, 현대자동차의 유럽형 코나 EV, 유럽형중국 자동차 회사인 아크폭스의 마크5가 대표적이다. 원천 특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선 교수는 “농도구배형이 긴 막대 모양으로 쪼개지는 이유를 규명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전기 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주행거리에 버금갈 수 있도록 배터리 산업의 선두를 달리겠다”고 말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연구팀. 이규철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연구팀. 이규철

 

※ 최근 소재 연구에서는 첨단기능을 가져 ‘부가가치’를 내는 소재를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소재를 맞붙이면 그 표면에서는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하던 새롭고 놀라운 기능과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정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설립한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은 서로 다른 물질이 닿는 ‘인터페이스(경계면)’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두 물질을 붙일 때 생기는 경계면에서는 기존 두 물질을 이루는 결합구조나 조성과는 다른 새 물질이 생겨납니다. 두 물질의 경계면은 새로운 소재가 생성되는 보고(寶庫)인 셈입니다. 동아사이언스는 미래소재연구단과 함께 앞으로 한국의 소재 산업을 이끌 미래 소재의 깜짝 놀랄 세계를 연재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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