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언어,대중의 언어]①모두가 쉽게 이해하는 전문용어를 위하여

2020.12.16 17:00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사이언스와 국어문화원연합회는 대중이 사용하는 말글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의 간극을 줄이고 한글과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외국말을 활용해 대중이 좀더 이해하기 쉽고 전문가도 거부감 없이 활용하는 전문용어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의 하나로 '쉬운 의과학용어 찾아쓰기' 기획을 3차례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지난 8월19일과 21일, 같은 달 30일 보도한 '과학용어는 먼나라 말' 시리즈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롭게 쏟아지는 의과학 용어의 홍수 속에서 정작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할 대중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보도했습니다. 지난 10월 12일과 13일, 같은 달 16일 보도한 두 번째 시리즈인 '고쳐 쓰자 과학용어'에서는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과 정부출연연구기관 홍보협회 등과 공동으로 과학계와 과학 커뮤니케이션계 내부에서 용어 순화의 필요성을 설문조사를 통해 끌어냈습니다.  이달 8일과 10일, 12일 보도된 세 번째 시리즈인 '전문용어의 벽 어떻게 허무나'에선 해외 각국에서 일고 있는 용어 장벽을 깨는 과학계의 노력을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과 과학계 숙제로 남아있는 용어 순화의 문제를 이번 기획의 자문을 맡고 있는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교수)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최무영 서울대 교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기고를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이 있었다. 맘프러너창업스쿨. 정작 이 정책을 필요로 하는 여성분들은 무엇인지도 몰랐다. 결혼으로 경제활동이 끊긴 주부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 한다. ‘맘’과 기업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앙트프러너’의 합성어라고 풀이했다. 처음부터 정책이름을 알기 쉽고 정확한 뜻을 담았더라면 창업을 갈망하는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어디 십여 년 전에만 그랬을까? 해마다 가을이면 정부서울청사 건물을 가득 채운 펼침막에 ‘코세페’라 써 둔 것은 누가 보라는 것일까? 코리아세일페스타라고 풀이했지만, 시민들은 무슨 행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과거에는 전문용어가 전문가집단에 갇혀 있었다면 지금은 바깥으로 나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인다. 그러나 대부분 외국어라서 국민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과학기술이나 경제와 관련한 낯선 용어를 일반 국민에게 처음 알리는 쪽은 대부분 정부 부처이다. 전문지식으로 가득 찬 공직자들은 당연히 이해하고 있는 용어지만 처음 접하는 국민은 아리송하기만 하다. 언론도 그냥 받아 소개하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올해 우리는 감염병 사태를 맞이하면서 세상 처음 접한 용어가 많았다. 국민은 자신의 안전과 생명과 직결되는 용어를 무차별하게 접했다. 용어 때문에 겁을 먹기도 하고 정확한 뜻을 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써 제 기능을 못 하도록 버려두었다.


정부가 내 놓은 ‘팬데믹, 코호트, 그리고 그린뉴딜, 스마트팩토리, 뉴노멀’이 우리를 어지럽게 할 무렵, 때마침 과학용어, 방역용어, 경제용어의 실태를 폭넓게 조사하고 그 대책을 토론하고 국민이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연재였다. 이는 때 맞추어 매우 적절했고 뜻깊은 일이었다. 모처럼 언론기관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이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급격히 변화하는 요즘 분야마다 수많은 전문용어가 일상생활로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더욱이 그러한 용어를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정보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 격자를 줄이기 위해서도 전문용어를 모두가 쉽게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에게 익숙한 외국어로 된 용어를 일반 국민과 함께 사용해야 할 상황에서는 당연히 쉽게 이해되는 우리말 용어로 다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분야 전문가나 공직자들은 일반 국민을 배려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문용어 사용을 살펴보면 그러한 배려 없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이나 정보를 발표할 때 외국어로 된 용어를 그대로 드러냈다. 국민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 내가 쓰는 이 용어를 일반 국민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보도자료에 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국어전문가나 언론기관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용어를 다듬는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와 같은 국민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생활 속에 이해하기 쉬운 전문용어를 뿌리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는 부처마다 두게 되어 있는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여 보급하기 위하여 중앙행정기관에 협의회를 두게 되어 있다. 이 협의회를 형식에 그치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운용하면서 국립국어원과 협력해서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문용어를 다듬을 때는 국민이 바로 수용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추기를 바란다. 쉬운 말로만 해서도 안 되고, 모든 정보를 다 담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뜻을 정확하게 하려고 원어보다 더 길거나 복잡하게 되면 결코 통용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작업이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 부처나 언론기관에서 반짝 관심을 가지고 그만둔다면 실패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 전문용어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이때 이해하기 쉬운 언어생활을 위하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언어문화 향상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1976년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송광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국립국어원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제60대 한글학회장에 선출됐고 지난해 임기 4년의 61대 학회장에 재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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