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과거와 미래] 마지막 이야기··· 대학의 혁신에 앞서 생각할 문제들

2020.12.10 15:05
코로나19 여파에 텅 빈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코로나19 여파에 텅 빈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미국 연구 중심 대학의 초석을 놓은 찰스 엘리어트 하버드대 총장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필수 과목에서 제외하는 데 총장 취임 후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국 28대 대통령을 역임한 우드로 윌슨은 프린스턴대 총장 시절 자신의 개혁 행보에 반대하는 엘리트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건강을 해쳤고 결국 대통령 재임시까지 그 시절의 악몽에 시달릴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윌슨 대통령은 훗날 “정치가 대학을 운영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학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혁신 방향을 제시하는 것보다 이를 실행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대학 역사의 큰 인물들은 증언하고 있다.

 

미래 사회의 변화에 조응하는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 가는, 간단치 않은 혁신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대학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유럽 대학의 쇠락에는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대학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려 있다. “유럽 대학 중 최고는 거의 없다” “대학에서 하는 연구가 혁신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대학 교육이 노동시장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유리된 연구를 하며, 학문의 자유만 부르짖는다.” 등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대학에 대한 공통적인 불만이 유럽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유럽의 전통적인 반엘리트적 정서와, 대학을 정부 관료 체계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점이 유럽인들이 대학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이유이다.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이었던 요 리츤의 분석이다.

 

대학에 대한 시각이 유럽에 비해 긍정적인 미국도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대학 무용론이 제기됐고 대학 교육의 비실용성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자유 교양 중심의 대학 교육에 대한 산업자본가들의 비판이 확대될 때, 미국 정부의 주립대학 설립 지원, 존스 홉킨스대, 하버드대와 같은 주요 대학들의 통합형 교육 모델 도입, 연구 중심 대학원의 설립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20세기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이론이 사회 전반에 파급되어 대학 교수들의 낮은 생산성이 비판을 받을 때, 당시 최고의 지성들은 미국 대학 교수협회를 조직하고, 학문의 가치와 학문의 자유의 의미를 전파하고, 종신 임용제를 쟁취했다. 산업자본이 대학을 포획하려는 시도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배금주의에서 대학을 지켜 낸 역사적 성취였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학이 주도해 온 ‘비실용적’인 과학 발전의 엄청난 가치를 인지한 미국은 1950년 버니바 부시가 제출한 미국과학재단 법안을 거의 원안대로 입안했다. 100여 년에 걸친 대학 무용론 논쟁이 대학의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런 자율적인 혁신과 조직적인 대응을 통해 미국 대학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다. 1980년에는 ‘베이-돌 법안’으로 정부의 연구비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대학이 갖는 혜택을 확보하게 됐고, 민간의 대학 기부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8년 한 해에만 그 금액이 467억 달러에 이른다. 과거만은 못해도, 대학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는 현재 진행형이다.

 

해외의 대학들이 겪어 온 위기처럼 한국의 대학은 현재 다양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형 사립대학의 정체를 명확히 이해하는 국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비리 사립대학이 한국의 대학을 대표하는 것처럼 미디어에서 회자된다. 미국 주요 대학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기부금을 빨리 사용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위치한 정부의 재정 지원 수준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실질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등록금 동결과 같은 인기 영합 정책에 큰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 서열화와 이로 인한 대학 입시 경쟁은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정점에 있다고 인식되고 있으며, 대학은 이런 상황을 조장하고 이용한다고 비난받고 있다. 대학의 사소한 정책 하나라도 진영의 이해관계에 부합되지 않으면 가차 없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어느 정치 진영도 대학을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대학을 비판할수록 의식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한국 대학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어떤 혁신 노력도 추진력을 갖기 어려우며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기관은 신뢰도 평가에서 17개의 평가 대상 기관들 중 2016년에는 의료계와 공동 1위, 2017년에는 금융기관과 공동 2위로 평가 받았다. 2017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7개 주요 직업군인 정치인, 고위 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기업인, 교육자, 종교인들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직업군으로 선정됐다. 모든 교육기관과 모든 교육 종사자에 대한 평가로 대학과 교수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기대를 기반으로 다음 세 가지 사항의 실행을 고려해야 한다. 자유 교양 중심의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새로운 교육체계를 제시하며 대응했던 미국의 사례처럼 국민의 입장에서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고등교육의 재탄생에 준하는 구조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기업형 사립대학의 정리와 이를 통한 공공성 회복이 그 첫걸음이다. 이 책에서 수차례 언급한 거점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네트워크의 실현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32만 명 정도 되는 4년제 일반대학 정원의 20% 정도가 거점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네트워크에 포함될 만큼 이 두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통합된 입시를 시행하는 혁신을 실행하며, 등록금 면제 또는 등록금 50% 감면, 국가 장학금 차액에 대한 생활비 지급, 지역 공기업 및 민간 기업 취업 혜택과 같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매년 7만 명 정도의 학생들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면, 대학 서열화와 대학 입시 경쟁의 완화, 기업형 사립대학의 청산, 수도권 집중 및 부동산 문제와 같은 사회 문제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2월 3일 오전 한 수험생이 격려와 응원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2월 3일 오전 한 수험생이 격려와 응원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한국 대학에는 20세기 초반, 미국 대학의 위기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던 소스타인 베블런, 업튼 싱클레어 같은 교수들이 필요하다. 대학의 위기에 당당히 국민의 존경을 이끌어 낸 존스 홉킨스대의 대니얼 길먼 총장, 하버드 대의 찰스 엘리어트 총장, 시카고대의 로버트 허친스 총장, 위스콘신대의 밴하이스 총장과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존 듀이, 아서 러브조이와 같은 석학의 주도로 설립된 미국 대학 교수협회처럼 권위 있는 기관 또는 조직도 필요하다. 개별 교수, 대학 리더십, 새로운 조직은 대학의 유무형 가치를 산정하고, 대학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단단한 논리를 개발해야 하며, 대학의 중요성을 갈파해야 한다. 노동을 대신해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할 대안이 학습이라는 사실과, 미래의 인류가 의지하게 될 학습하는 공동체를 품어 낼 조직이 대학이라는 사실도 강조해야 한다. 법인세의 5%를 대학에 투자하는 규정을 관철해 내는 것도 구체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때로는 대학을 폄훼하는, 짧은 호흡의 정치 세력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현안에 대해서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며, 진영의 이해관계에 대해 기품 있는 언어로 논쟁하는 국가의 현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종신 임용제를 가능케 한 ‘1915년 원리 선언’은 “교수들은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는데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하고, 사회 문제인 경우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의견을 표명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과 반목 상황에서 교수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Pro) 외치는(-fess-) 사람(-or)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색한 상황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위기는 많이 언급되지만, 정작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지혜가 필요한 상황에서 인문사회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인물과 리더십 그리고 조직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학들은 50여 년간 인종차별 문제를 완화하고 다양성 확대의 첨병 역할을 담당해 왔다. 독일과 프랑스 대학들은 고등교육의 보편화와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50여 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에도 이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철학은 국민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동시에, 우리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또 앞서 언급한 대학의 재구조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다양성 존중과 인권 감수성 증진을 제안했지만, 공정한 사회 구현, 지역의 균형 발전, 교육 기회의 평등과 같은 다른 대안도 고려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학 교수들을 대표하는 새로운 조직과 대학들의 대표 협의 기관이 집중적인 논의와 합의를 통해 이런 철학의 정립을 시도해야 한다. 앞으로 50년은 지속할 수 있는 철학의 정립을 통해 대학이 긴 호흡을 갖고 서서히,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사의 큰 재앙으로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하는 인류사적 전환기에 정치, 사회, 경제, 산업의 변화가 가속될 것이며, 이미 시작된 대학의 변화는 더욱 급격히 전개될 것이다. 대학이 우리 사회에 제공할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과 이를 통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거세어질 변화의 격랑을 헤쳐나갈 근원적인 힘이 될 것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이 연재는 지난 6월 5일 출판된 필자의 저서《대학의 과거와 미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대학에서 공간 정보 취득, 관리, 분석, 시각화, 활용과 관련한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공간정보 벤처 기업에서 5년간 기술총괄이사로 일했다. 연세대 오픈스마트에듀케이션(OSE) 센터장, 교육부 한국형 온라인공개강좌(K-MOOC) 기획위원, 미래교육 실무 자문단, 국가 평생교육진흥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코세라에서 ‘공간 데이터 과학과 응용(Spatial Data Science and Applications)’라는 MOOC를 운영하고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