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는 알고보면 '한국산'··· 멸종위기의 구상나무를 구하라

2020.12.12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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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도심 곳곳엔 캐럴이 울려 퍼지고 온통 ‘이것’이 자리를 잡는다. 반짝반짝한 전구와 방울, 꼭대기엔 별을 단 크리스마스 트리다. 그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런 화려한 장식으로만 주목을 받았다. 그 바탕이 되는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나무가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구상나무 개량종 90품종 이상 개발돼

 

서울 동대문구 홍릉숲에 가면 크리스마스 엽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나무를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원뿔 모양에, 솔잎 길이의 절반 정도 되는 짧고 두툼한 잎이 줄기를 빈틈없이 덮고 있는 나무. 심지어 잎 뒷면은 은빛이 도는 은은한 흰색으로 빛나는 나무. 바로 구상나무(Abies koreana)다. 


구상나무는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랑받는 나무다. 하지만 원조 구상나무의 고향은 놀랍게도 우리나라다. 소나무과 전나무속 상록수인 구상나무의 이름은 제주도 방언 ‘쿠살낭’에서 유래했다.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라는 뜻으로, 잎이 가지에 달린 모습이 성게와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구상나무의 영어 이름 ‘Korean Fir’, 학명 ‘Abies koreana’에도 구상나무의 고향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의 산지 해발 1000m 이상에 분포한다. 이런 나무가 외국으로 건너가게 된 사연이 뭘까. 구상나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0년이다.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아놀드식물원 연구보고집’ 1권 3호에 ‘한국에서 온 신종 침엽수 네 가지’란 글을 기고하며 구상나무를 보고하게 된 경위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전나무 신종은 이번에 한국에서 발견된 신종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다. (중략)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구상나무는 매우 잘생긴 나무다.” -한국에서 온 신종 침엽수 네 가지 중

 

윌슨은 처음 구상나무 표본을 채집해 해외로 반출한 것은 프랑스 식물학자인 위르뱅 포리 신부라고 언급했다. 당시 윌슨이 근무하던 미국 하버드대 아놀드식물원에는 포리 신부가 1907년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과 에밀 타케 신부가 1909년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이 이름이 붙지 않은 채 보관돼 있었다. 윌슨은 이 표본들을 보고 구상나무가 기존에 학계에 보고된 나무와 다르다는 점을 포착했다. 


1917년 윌슨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구상나무를 관찰한 뒤, 이를 전나무속 분비나무와 구분되는 하나의 새로운 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1920년 학계에 ‘Abies koreana’라는 이름으로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윌슨은 한국에서 구상나무 씨앗을 가져와 아놀드식물원에 심었는데, 이것이 자라 큰 나무가 됐다. 


임채은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자원과 연구관은 “2008년 국립생물자원관 연구팀이 아놀드식물원을 방문했을 때까지도 윌슨이 1917년 한라산에서 씨앗을 채집해 심은 구상나무가 아놀드식물원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현재 이 나무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21그루의 구상나무가 아놀드수목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윌슨의 학계 발표 이후 구상나무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품종이 개량됐다. 지금도 캐나다의 한 온라인 식물 판매 사이트에 가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구상나무를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초록 잎 뒷면에는 은백색 빛이 어려 있습니다. 이 나무는 무거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매달아도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집을 신선한 향기로 가득 채울 겁니다’라는 매혹적인 광고 문구와 함께. 


2012년 국립생물자원관 연구팀이 상업적으로 개량돼 판매되고 있는 국외 구상나무 품종을 조사한 결과, 90품종 이상이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의 98개 종묘사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임 연구관은 “우리나라 고유종인 구상나무에 대한 주권은 우리나라에 있지만, 구상나무를 개량해 따로 특허를 등록한 구상나무 품종들의 특허권은 이를 개발해서 등록한 사람이나 기관에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개량된 이들 90품종을 구매할 경우 특허료를 받는 것은 해외 종묘사다. 


임 연구관은 “구상나무는 수형이 아름답고 독특한 향이 나는 등 생물자원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종”이라며 “이런 우리의 소중한 생물자원을 잘 보전하면서 자원으로 잘 활용할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고유종, 되살릴 방법

 

구상나무의 개량종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지만, 정작 구상나무 고유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2013년부터 ‘위기’ 단계로 분류한 멸종위기종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말라죽은 구상나무 개체수가 증가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 전략’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제주 세계유산본부는 2006년 738.3㏊(헥타르·1ha는 1만m2)였던 한라산 구상나무숲 면적이 2015년 626㏊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국립공원연구원은 2018년 기준 지리산의 경우, 반야봉 일대 1㎢에 서식하던 구상나무 1만 5000여 그루 중 47%인 6700여 그루가 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국립공원연구원은 기후변화가 구상나무가 감소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김진원 국립공원연구원 융합연구부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따라 겨울철 기온이 상승해 적설량 감소를 불러왔으며, 이에 따라 봄에 눈이 녹으면서 토양에 공급되는 수분량이 줄어 구상나무 생장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구상나무가 주로 분포하는 아고산대 지역은 저지대에 비해 기온 상승폭이 커, 기후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고산대 지역은 큰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고도 경계인 교목한계선 바로 아래 지역을 뜻한다. 


국립공원연구원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지리산 반야봉 일대 2월 평균기온을 측정한 결과, 2012년 영하 9.1도에서 2017년 영하 5.8도로 연평균 약 0.76도씩 온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토양에 함유된 수분은 16.5% 감소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2월 기온이 평소보다 따뜻해지면 나무는 1년간 생장하기 위한 준비를 이전보다 빨리 시작한다.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이른 시기에 생장을 시작한 나무가 뒤늦게 닥치는 추위로 피해를 입는 것이다. 


한편 국립생태원에서는 2015년부터 구상나무의 보전 및 복원을 위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 예로 구상나무 주변 기후가 고온, 건조, 고농도 이산화탄소(CO2) 상태로 변할 때 구상나무의 유전자 발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아내는 것이 목표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높은 온도와 높은 CO2 농도 환경에서 구상나무 유전자 중 어떤 부위가 발현되는지를 2019년 7월 23일 국제학술지 ‘식물 생명공학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 10.1007/s11816-019-00553-0 김동욱 국립생태원 전임연구원은 “구상나무가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처할 때 발현되는 유전자를 찾아낸 뒤, 구상나무가 어린나무일 때부터 그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유도하면 기후변화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며 “우리가 백신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에 미리 대비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라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은 올가을 구상나무 개체 확보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도 성공했다. 구상나무는 발아율이 낮아 열매가 충분히 익은 상태에서 씨앗을 채취해 발아시키더라도 발아율이 50%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새싹을 활용하면 씨앗을 발아시키는 과정 없이도 어린 구상나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김 전임연구원은 “구상나무의 배아줄기세포는 야생식물종자 영구저장시설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에 보관할 예정”이라며 “이를 이용해 구상나무가 쇠퇴한 원인을 밝히고 구상나무를 보전하는 방법을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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