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미래]⑷ 韓, 1등으로 만든 그래핀 산화물 원천기술

2020.12.09 14:00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팀
남윤중 제공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그래핀 산화물 액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에 관한 원천 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남윤중 제공

‘가짜 그래핀과의 전쟁’.


2018년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 같은 제목으로 전 세계 60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그래핀을 조사한 결과 ‘진짜’ 그래핀은 없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국제표준기구(ISO)는 그래핀이 열 층 이하로 쌓인 그래파이트만 그래핀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현재 이 정도 수준의 고품질 그래핀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그래핀 산화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2011년 김 교수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국제특허를 출원했고, 화학 분야 최고의 학술지로 꼽히는 ‘안게반테 케미’에도 발표했다. 

 

 

○ 반도체 나노패터닝 연구하며 그래핀 관심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2차원 막이다. 두께가 원자 한 층 수준인 0.3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정도여서 극도로 얇다. 그래핀을 여러 층 쌓으면 그래파이트가 되고, 그래파이트의 두께가 수nm를 유지하면 무게당 표면적이 늘고, 전기전도성이 커지며, 잘 휘어진다. ‘꿈의 나노 물질’이 되는 것이다. 


2004년 그래핀이 학계에 처음 보고되고 6년 만인 2010년 ‘초고속’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자 그래핀에 대한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실리콘 반도체를 대신할 차세대 반도체 소재 0순위로 꼽혔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차세대 소재로도 낙점됐다. 


김 교수가 그래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반도체였다. 2000년대 초 김 교수는 분자의 자기조립을 제어하는 자기조립제어(DSA·Directed self-assembly) 기술로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반도체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선폭을 줄여야 한다. 선폭을 줄이면 전자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고 소비전력이 줄어든다. 


김 교수는 “당시 120nm 패턴을 만드는 게 최선이었는데, DSA를 적용해 선폭을 30nm로 대폭 줄였다”며 “그래핀의 휘어지는 특성을 이용해 실리콘 대신 그래핀을 써서 휘어지는 기판 위에서 나노 패터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빛을 쪼이면 열을 방출하는 방열 효과를 낸다. 카메라나 레이저로 그래핀 기판에 빛을 쪼여 DSA를 유도하면 나노 패턴을 만들 수 있다. 밀리초(ms) 수준으로 순식간에 구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김 교수는 “이 기술로 특허를 출원했다”며 “인텔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남윤중 제공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성나노물질연구실 박사과정 최희재(왼쪽), 석박통합과정 김장환 연구원이 그래핀 산화물을 이용해 정렬된 나노패턴을 전사하고 있다. 남윤중 제공

 

○ 그래핀 산화물 액정 최초 개발

 

그래핀 기판에 대한 관심은 고품질 그래핀 제작으로 이어졌다. 화학기상증착법(CVD)으로 그래핀을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용화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여전히 대면적 대량 생산의 문턱은 넘지 못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가 상용화되려면 가격경쟁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CVD 대신 산화환원법을 이용해 그래핀을 정제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산화환원법도 단점은 있었다. 그래핀을 산화시킨 뒤 다시 이를 환원시키기 위해 첨가하는 화합물이 오염물을 만들어내 순도가 떨어졌다. 오염물을 정제하는 데 성공하자 100% 단층으로 뜯어지는 그래핀 산화물을 만들 수 있는 고농도 용액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1년 그래핀 산화물이 액정의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해 학계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정제된 그래핀 산화물의 배열 방향을 나노 수준에서 조절하는 게 핵심”이라며 “그래핀 산화물 액정을 이용해 탄소섬유를 만들면 케이블, 에너지 소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성나노물질연구실 박사과정 이강산 연구원이 고순도로 정제된 그래핀 산화물의 수소이온농도(pH)를 측정하고 있다. 남윤중 제공

 

○ 스탠다드그래핀과 5년째 상용화 협업


현재 김 교수의 그래핀 산화물 액정 기술은 국내 그래핀 생산기업인 스탠다드그래핀에 적용됐다. 울산에 본사를 둔 스탠다드그래핀 관계자들이 2015년 울산테크노파크에서 열린 김 교수의 초청 강연을 들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김 교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지원하는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기반 미래소재연구단'에 합류하면서 스탠다드그래핀과의 협업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스탠다드그래핀은 김 교수의 자문을 받아 그래핀 산화물 액정을 이용해 파우더형 그래핀을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수처리 기업인 미고(MIGO)는 수압 파쇄 공법으로 셰일가스를 추출할 때 발생하는 오염수를 정화하기 위해 새로운 필터 기술을 찾고 있었고, 스탠다드그래핀의 그래핀 필터 기술에 반해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수처리 승인기관인 NSF(nsf.org)로부터 식수 적용을 위한 안전성을 승인받았다. 이는 그래핀을 이용한 기술로는 최초다. 


김 교수는 “그래핀의 넓은 표면적과 흡착력을 이용하면 성능이 좋은 필터가 될 수 있다”며 “산화 그래핀 표면에는 친수성과 소수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 오염수에 포함된 물질을 최대 99%까지 달라붙게 만들어 걸러낸다”고 설명했다. 


스탠다드그래핀은 지난해 6월 네팔 룸비니에서 진행된 엄홍길 휴먼재단의 ‘제10차 휴먼스쿨’에서 그래핀 필터를 넣은 정수 설비도 기증했다. 이 시설은 하루 1000L 이상의 식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당시 40도가 넘는 폭염에 휴교령이 떨어졌는데도 학생들은 기증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왔다. 기증식에 참석한 김 교수는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며 “과학기술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남윤중 제공
김상욱 KAIST 교수가 이끄는 연성나노물질연구실 실험실에서 석박사과정 연구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2004년 김 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한 이후 국내 특허는 78개, 국제 특허는 24개를 출원했다. 남윤중 제공

 

○ "핵심소재 산업으로 육성해야"


현재 그래핀 연구에서는 그래핀 액정으로 탄소섬유를 만드는 기술이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다. 차오 가오 중국 저장대 교수는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상온에서 그래핀 에어로겔로 섬유를 뽑아내는 데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가볍고 신축성이 좋아 200%까지 늘어난다. 


최근 김 교수는 스스로 납작해지는 그래핀 섬유를 만드는 데 성공해 ‘ACS 센트럴 사이언스’ 7월호 표지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는 “납작한 그래핀 섬유는 납작한 면 방향으로 유연해 기존의 잘 부러지는 탄소섬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마스크 필터 소재로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년 2월 개교 50주년을 맞는 KAIST의 혁신 기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9월 특집호에 필자로도 참여했다. 그는 “그래핀 산화물 액정 기술은 원천기술에 해당한다”며 “국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핵심소재를 산업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기반 미래소재연구단'과의 공동기획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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