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방역 정책

2020.12.09 06: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의 안내로 현장 의료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의료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3차 대유행’이 심상치 않다. 하루 감염자가 9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방역 당국의 전망이 암울하다. 세계 최악의 감염대국으로 알려졌던 지난 3월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쁘다. 정확한 감염원을 파악할 수 없는 산발적 집단감염이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가 증폭되고 있는 것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과학적 방역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가 원칙을 지켜야

 

팬데믹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억지춘향으로 승격시켜놓은 ‘질병관리청’의 역할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된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단순히 정은경 청장의 브리핑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상황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학뿐이기 때문이다. 감염 확산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서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질병관리청 본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질병관리청의 분석과 예측이 언제나 100% 정확하게 맞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감염병과의 투쟁에서는 그런 기대는 무망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방역에 대한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어설픈 판단보다는 질병관리청의 판단을 훨씬 더 신뢰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외국인 입국 제한을 요구하는 의원의 질의에 ‘겨울 모기’와 ‘중국에서 입국하는 한국인’을 들먹였던 장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치와 경제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정치인과 관료들에 대한 국민적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신기루와도 같은 ‘K-방역’의 성공담에 취해버린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3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던 지난 8월 말에는 경제에 대한 우려를 핑계로 어정쩡한 ‘2.5단계’를 시행했다. 거리두기를 5단계로 세분화한 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 원칙도 없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선심성 ‘+α’와 ‘조건부 완화’를 반복해서 국민들을 성가시고 짜증나게 만들었다. 서울시가 내놓았던 ‘서울형 방역강화’와 ‘천만 시민 긴급 멈춤’은 시민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이었다.

 

정부의 역할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회의에는 평소보다 적은 참석자들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앉아 회의를 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청와대 회의를 통해서 신속진단키트의 사용을 지시한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진단키트를 사용해서 감염자를 파악할 것인지의 문제는 정부의 정치적 선택이나 결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엄중하게 지시하는 모습은 전문가의 역할이 분명하게 인정되는 민주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의 회의에 방역 전문가가 참석했던 것도 아니고, 신속진단키트를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정확도가 80% 수준인 신속진단키트의 활용 가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감염자를 가려내는 일에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RT-PCR 키트가 더 유용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신속하고 저렴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신속진단키트로는 RT-PCR키트를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신속진단키트는 인구집단의 감염 수준을 스크리닝하는 목적에 적절한 수단이다. 결국 신속진단키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의 결정은 전문가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정작 정부의 확실한 노력이 필요했던 행정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중증 감염자를 치료해줄 음압병실을 더 많이 확보하고, 백신 구매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확인해줄 필요가 있었다. 여러 행정기관의 긴밀한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가 지난 2월에 밝혔던 ‘전국 1만 개 치료병상 확보’ 방침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재 수도권에는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적지 않은 수의 치료병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여름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어설프게 저질러놓은 황당한 일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절실했다. 엄중한 팬데믹의 상황에서 공공의대의 설치 문제는 조금도 시급한 일이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부와 여당이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을 외면해버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국민과 방역 당국 사이에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의사협회가 자취를 감춰버렸고, 의사고시의 응시기회를 놓쳐버린 의대 졸업생들은 지금도 절망하고 있다.


백신 접종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도 필요하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당장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백신은 감염 확산 차단의 수단이고, 그 효과는 접종 규모가 집단면역 수준을 넘어서야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의 백신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짧은 기간에 개발되었고, mRNA라는 지금까지 사용해본 적이 없는 기술을 사용한 백신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에 대한 공론화도 서둘러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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