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진화] 인류는 늘 이주를 꿈꾼다

2020.12.06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주 시기가 되면 동물이 보이는 불안 행동을 말하는 '이주불안'은 연구에 의하면 유전율 0.72에 달했다. 분명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의 상당 부분은 유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다.”

1948년에 발표된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마지막 두 단락이다. 

 

역마살

 

역마살(驛馬煞)이란 역마와 살을 합친 말이다. 조선에서는 관청의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30리마다 역을 두었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다. 당시 역에는 물론 기차가 아니라, 말이 있었다. 말이 지치면 새 말을 갈아타며 계속 이동했다. 지방의 소식은 서울로, 서울의 이야기는 지방으로 쉼 없이 전달되었다. 효과적인 행정시스템이다. 


그런데 역마의 신세가 처량하다. 오늘 서울에서 출발한 말은 내일 과천에서 다른 말로 교체된다. 며칠 쉬고 나면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떠돌아다니는 팔자다. 몇 달 후에는 함경도 어디쯤에서 여물을 먹고 있을지도, 내년쯤에는 전남 해남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있을 것이다. 역마는 고향도 없고, 정착할 마을도 없다. 평생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다 길에서 죽을 팔자다. 역마살이란 단어의 기원이다. 종종 역마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영화화한 영화 ′역마′의 한 장면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영화화한 영화 '역마'의 한 장면

옥화는 외아들 성기와 살며,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했다. 떠돌이 중과 낳은 아들이다. 옥화의 출생도 그랬다. 어머니는 화개장터를 찾은 남사당패 사내와 하룻밤 정을 나누고 옥화를 낳았다.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하나뿐인 아들 성기도 자꾸 객지로 떠돌려고 한다. ‘어디로 훨훨 가보고나 싶던 것이 소망’이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들이 계연과 사랑에 빠졌다. 주막을 찾은 젊은 여인이었다. 옥화는 어떻게든 둘을 혼인시켜 정착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잔혹했다. 알고 보니 계연은 옥화의 배다른 자매였다. 이모와 짝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으니 어쩌겠냐?’ 옥화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달포가 지난 후, 성기는 엿판을 메고 유랑의 길을 나섰다. 3대를 이은 역마살이다.

 

이주

 

흔히 이주는 새로운 정착을 위한 일시적인 이동 과정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항상 이동하는 동물도 있다. 규칙적인 이주도 있고, 갑작스러운 이주도 있다. 


인간은 수백만 년간 끊임없이 이주했다. 마을을 이루어 오래 머무른 것은 불과 일만 년 남짓이다. 그것도 아주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정착의 본능보다 이주의 본능이 더 원초적이다. 사실 신석기 초기 정착 생활이 나타난 것은, ‘정착을 향한 오랜 인류의 꿈’이 실현된 것이라기 보다는 ‘더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였는지도 모른다. 


이망증

 

이망증(Zugunruhe)은 이주 시기가 되면 동물이 보이는 불안 행동을 말한다. 때가 되면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영어로는 '이주불안(migratory restlessness)'이라고 한다. 독일어에서 '주크(zug)'는 이동, '운루헤(unruhe)'는 불안이란 뜻이다. 


이주불안을 느끼면, 갇힌 새는 날개를 펄럭이면서 불안해한다. 강제로 새장에 가두었으니, 이주할 방법이 없다. 안절부절못한다. 프란시스코 풀리도 등의 연구에 의하면 검은머리꾀꼬리는 하룻밤에 무려 두시간 반동안 어쩔 줄 몰라 날개를 퍼덕였다. 연구자는 무심하게도 새장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주불안은 유전에 의한 것일까? 환경에 의한 것일까? 2001년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이주불안의 유전율은 0.72에 달했다. 동물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의 상당 부분은 유전이다. 계절의 변화 등 환경적 요인은 단지 촉발 요인에 불과하다. 유전자를 속일 수 없다. 새는 자신의 이망증에 저항하기 어렵다. 아무리 맛있는 사료를 주어도 마찬가지다. 

 

이주의 원인

 

이주불안은 유전적 요인이 크다. 그런데 그런 유전 형질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거리 이주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멀리 이사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철새는 종종 체중의 두 배로 늘려 지방을 축적한다. 이동 중에는 먹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몸은 아주 홀쭉해진다. 게다가 여러 장소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한 포식자도 많다. 엉뚱한 곳으로 이동할 위험성도 있다. 더 다양한 병원체를 만나게 되므로 면역계도 강력해야 한다. 이주는 아주 비싼 활동이다.


다이애나 아웃트로와 게리 보엘커는 할미새의 이주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재미있는 주장을 발표했다. '진화적 선도자 모델'이라고 한다. 서식지의 변두리에 사는 종은 종종 정착보다 이주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이 공급이 일정하지 않고, 다른 경쟁자도 쉽게 침범할 수 있다. 그런 곳은 오래 살아도 별로 얻을 것이 없다. 이주불안을 느끼는 변두리 종이 더 유리하다. 급변하는 환경에도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환경변화를 온몸으로 맞으며 꼼짝없이 굶어죽는 텃새를 뒤로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형질이다. 


이동성 종이 이주를 선택하는 진짜 원인은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동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오늘도 수많은 종의 조류와 어류가 먼 거리로 이동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는 정착을 선택하겠지만, 일부는 도리어 더 먼 곳으로 미지의 여행을 시도할 것이다.

 

떠나려는 충동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에 탑승한 우주인들이 계기판을 조작하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에 탑승한 우주인들이 계기판을 조작하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흥미롭게도 포유류는 이주불안이 별로 없다. '인간은 예외적인 포유류다. 인간은 경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영역을 탐구한다. 심지어 지금 사는 곳의 자원이 충분해도 말이다.’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스반테 파보 박사의 말이다. 

 

침팬지는 500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곳에 살아간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오랜 기간 지구에서 살았지만, 널리 이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다르다. 극지와 사막, 바다와 하늘, 심지어 달에도 갔다. 곧 화성에도 갈 것이다. 정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이동’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던 때부터, 대항해시대, 우주개발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동과 이주를 위해 ‘엄청난 낭비’를 했다. 그 돈을 나누면, 모두 기와집을 짓고 정착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역마살은 타고난 성향,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역마살 유전자가 있을까? 도파민 유전자가 주로 지목된다. 도파민 수용체의 일부 변이가 ‘끊임없는 탐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성호르몬이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남성 호르몬은 일부 조류에서 이주불안을 ‘악화’시킨다. 탐험은 전통적으로 ‘젊은 남성’의 역할이었고, 짝 선호에 유리한 형질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환경이 원인일까? 먹을 것이 부족하고, 짝을 만나 자식을 낳고 키울 여건이 열악하면 눈물을 머금고 떠날 수밖에 없다. 집단의 경계에 위치한 개체는 집단에서 얻는 것도 적다. 아무래도 소속감이 덜하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전 세계에서 유대인이 몰려들었다. 원래 영국인, 독일인, 소련인, 폴란드인이었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낯선 중동의 땅으로 이주했다. 척박한 땅이었지만, 원래 살던 곳도 유대인에게는 척박한 땅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왜 이주하는 포유류가 된 지는 아직 정설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렵채집이나 유목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주한다. 새로운 나라로, 새로운 직장으로, 새로운 분야로 말이다. 


이제는 옥화의 아들처럼 엿판을 들고 유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여전히 ‘이주불안’이 꿈틀대고 있다. 이망증의 '병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인간성의 본질이다. 우리는 늘 '이주'를 꿈꾼다. 인류의 오랜 역마살이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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