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기술인력’이란 무엇인가

2020.12.03 16:00
문재인 대통령은 인공지능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낡은 것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인공지능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낡은 것이다. 청와대 제공

“(과학기술인력은) 기관이나 단위에서 과학기술활동에 직접 참가하고 있으며, 보통 그들의 용역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이 집단은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보조원을 포함해야 한다.”

-UNESCO⁠1 , 인공지능 인재 10만 양병설과 의과대학 정원 확대의 딜레마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라는 행사에서 “한국판 뉴딜의 핵심축인 디지털 뉴딜로 인공지능 분야의 경쟁력을 빠르게 높여가기” 위해 2029년까지 1조원의 자금을 투자하고 ‘인공지능 법제도 개선 로드맵’을 마련해 규제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드는 기업의 혁신을 돕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연설의 대미를 장식한 말은, 이를 위해 “인공지능 인력을 총 10만 명으로 늘리는 인재 양성”에 돌입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기술 오용, 데이터 편향성, 개인정보 침해 등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사라지는 일자리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만들겠다”는 도덕적 언명도 덧붙혔다⁠.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모두는 불과 얼마전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사의 수를 겨우 10년간 한시적으로 연 400명 증가시키겠다는 정부의 주장에 반대해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 대부분과 전문의, 심지어 의과대학 학부생들까지 의사고시를 거부하는 사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몇 천명도 아니고 인공지능 전문가 10만명을 급격하게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과학기술계는 반대는 커녕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다. 대학 교수들은 앞다퉈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지원하는 학제개편을 추진 중이고, 자기 대학에 인공지능 대학원을 설치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사회에서 의사나 변호사처럼 자격증이 교부되는 전문직의 숫자는 국가 마음대로 늘이거나 줄일 수 없는 성역이지만, 과학기술인은 국가 마음대로 숫자를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그럴만도 하다. 왜냐하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은 의협이나 변협 같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협회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비해, 과학기술인에겐 과학기술인협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과학기술인을 주체적인 인간이 아닌 ‘과학기술인력’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즉, 우리 과학기술인은 국가의 성장을 위한 부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모순 투성이다. 10만명의 인공지능 전문인력을 키웠다가, 그들 대다수가 일자리 포화상태로 인해 무직자가 되었을 때, 과연 이처럼 무모한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겠다면서도, 인공지능 전문인력 10만명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즉, 박정희 정권의 시대에서 탈피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이 정권조차, 과학기술인에 대한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참담한 사실은,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과학기술계 리더들이 이런 문제를 인식하기는 커녕, 여전히 과학기술인 학문후속세대를 국가 발전의 볼모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모는 어른은 존경받을 자격이 없다.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그렇다.


박정희 패러다임과 한국의 과학기술인력정책


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인력의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부터다. 물론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인이 가시적인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독일이나 미국 등에서도 과학기술인을 인력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지만, 과학기술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 국가에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국가와의 관계설정에서 한국처럼 피동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서구국가들에선 과학기술인의 자발적인 연대가 이루어졌고, 그 전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압축성장의 산업화 시기에, 과학기술인력의 양성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었다는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박정희가 시작한 과학기술인력정책의 틀은 철저히 국가주도의 하향식으로 모든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된다는데 있다.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은 분명 한국의 빠른 산업화에 도움이 되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박정희 시대 이후 반세기나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의 인공지능 전문가 10만 양병설과 박정희의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의 차이는 무엇일까. 철저한 국가주도의 과학기술인력정책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박정희 정권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더욱 처참한 사실은,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성과들 덕분에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점점 더 불확실해져버린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전히 몇 십명도 안되는 청와대의 비전문가들이 국가의 중대사인 과학기술인력정책을 아무렇게나 주물러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논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같은 기관에 의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두 기관 모두 1987년 설립되었으니, 이제 역사가 33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정책 특히 과학기술인력정책에 대한 이들의 관점은 박정희 시대 패러다임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정책적 관점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보고서는 1998년 출판된 '국가 과학기술 통계지표 체계도의 구상'인데⁠, 이 보고서는 과학기술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과학기술인력은 새로운 과학 지식의 창출과 기술개발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그리고 국가 안위를 위한 힘의 창출에서 핵심적인 자원이다. 한국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국부창출을 하려면 이를 전담해 선도할 집단이 필요한데 그 집단이 바로 과학기술인력이다. 오늘날에는 국부창출 뿐 아니라 환경의 복원과 보건의 증대 그리고 세계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과학기술인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지식기반 사회가 되면서 지식근로자가 중요해지고 있고, 이의 대표 적인 집단이 과학기술인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의 원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를 설립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과학기술인력정책 또한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 보고서는 과학기술인력정책을 다루는 서문에서 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그 이유는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양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력정책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미국이라는 신흥강대국의 정책에 기대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사용하는 과학기술인력의 정의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 표준을 참조한다.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 - 그곳에 사람이 있다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국제적 정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번째는 한국 정부가 가장 사랑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의다. OECD는 '연구개발인원(R&D Personnel)'과 '과학기술인적자원(Human resources for Science and Technology·HRST)'이라는 두 가지 용어를 모두 사용하는데, 이 중 HRST는 과학기술 분야의 고등교육(국제표준교육분류 5등급 이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사람 혹은 과학기술 분야의 고등교육을 성공적으로 끝마치지는 못했지만 보통 과학기술 분야의 고등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가 취업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두 가지 조건 중 한가지를 충족할 경우 과학기술인력으로 정의한다. 즉, OECD는 자격(교육)과 활동(직종) 중 한 가지만 만족해도 과학기술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다른 분류는 유네스코가 정의한 '과학기술인력(STP)'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인력은 과학기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 인력이다.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이미 100년 넘게 활동해왔고 세계과학노동자연맹은 물론 유명한 사회주의자이자 생화학자였던 조지프 니덤의 활동이 스며들어 있는 유네스코의 과학기술인력의 정의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는 1984년 STP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과학기술인력이란 특정 기관 및 부문에서 직 접 과학기술 활동에 참여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용역의 보수를 받고 있 는 인력의 총수이다. 이 그룹은 과학자 및 공학자, 기술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보조인력을 포함한다. 여기에서 과학기술 활동이란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과학기술 지식의 도출, 진보, 확산, 적용과 밀접하게 연관된 체계적 활동으로 정의한다. 과학기술 활동은 연구개발 활동, 과학기술 교육 및 훈련, 과학기술 분야의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

 

유네스코는 OECD에 비해 훨씬 포괄적으로 과학기술인력을 정의한다. 왜냐하면 OECD의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는 보조인력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에서 정의하는 과학기술 보조인력이란 “과학기술 수행과 직접적으로 관련해 행정적 인력, 혹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숙련 및 반숙련 인력을 의미”한다. 즉, 유네스코는 과학기술인력을 고등교육을 마친 연구개발인력에 한정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조니프 니덤과 같은 과학적 인본주의자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는 유네스코의 정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인력에게 있어 과학기술활동이란,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과학기술지식의 도출, 진보, 확산, 적용과 밀접하게 관계된 체계적인 행위로 정의된다. 이는 연구개발 활동, 과학기술교육 및 훈련, 과학기술 분야의 서비스(도서관, 정보수집 등)를” 포함한다. 이와 더불어 유네스코는 과학기술에 관련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인력을 STP에서 제외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인력이란 과학기술의 도출, 진보, 확산, 적용과 밀접하게 관련된 행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정의 속엔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노력했던 20세기초 급진적 과학자들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림은 세계 과학노동자연맹(World federation of scientific workers)의 로고
유네스코의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정의 속엔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노력했던 20세기초 급진적 과학자들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림은 세계 과학노동자연맹(World federation of scientific workers)의 로고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인력을 유네스코의 기준인 STP가 아닌 OECD의 정의를 기준인 HRST로 관리하고 있다. 국가주의라는 철학이 전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50년 전에는 분명 이런 관점이 통용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인력이라는 도구적 관점 속에서 다루어지는 과학기술인들 또한 노동자이며 사람이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철학 중 가장 중요한 아젠다는 '사람이 먼저다”였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으로 만든 정부,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적폐를 국민 모두가 촛불로 탄핵시키며 당선된 정권, 이 정권에서도 여전히 과학기술인은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딜레마이며 비극이다. 

 

1998년의 보고서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과학기술인력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활력이 곧 그 사회의 활력으로 연계 될 수 있다. 또한 과학기술인력은 논리적이고 이성적 인 판단에 의거해 객관적인 결과를 창출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인력의 비중이 높을수록 사회의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과학기술인력은 한 나라의 강점 이자 얼굴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많은 나라일수록 과학기술 수준과 기업의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인력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국가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학기술 현장을 모르는 과학행정 전문가들은 여전히 과학기술인을 숫자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곳에 사람이 있다. 과학기술인은 국가의 노예가 아니며, 그들을 노예로 다루는 낡은 관점으로는 더이상 과학기술로부터 혁신을 얻을 수 없다.

 

※참고자료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091421&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960511.html
-이전 글 “맬서스의 학위공장, 그리고 과학기술인협회”를 참고할 것.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0312
-https://www.ai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18485
-서구국가들에선 과학기술인의 자발적인 연대 관련해 대표적인 연구로 서구 각국의 근대 엔지니어의 역사를 다룬 이 연구서와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m201_id=10024908 다음 책을 참고할 것. 김덕호.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서울: 에코리브르, 2013. 
이내주.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 서울: 에코리브르, 2014. 
물론 과학자사회의 연대는 엔지니어보다 훨씬 빨랐다. 과학자사회의 연대는 이미 16세기 이탈리아 등에서 학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여전히 과학기술인 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과총이 과연 이 시대에 적합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김기국, 고상원, 권용수, 박병무, 윤문섭, 이영희, 이장재, 이재억, 장진규, 황용수. (1998). 국가 과학기술 통계지표 체계도의 구상. 정책연구, (), 1-303.
-김기국, 고상원, 권용수, 박병무, 윤문섭, 이영희, 이장재, 이재억, 장진규, 황용수. (1998). 국가 과학기술 통계지표 체계도의 구상. 정책연구, (), 29쪽
-김우재의 글 ‘유네스코의 이름을 바꾼 생화학자’ 참고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615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