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과학기술이 보이지 않는다

2020.11.25 12:00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우리제일교회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제공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우리제일교회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제공

다시 코로나19의 짙은 먹구름이 덮쳐오고 있다. 지난 2월과 8월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런데 ‘K-방역(한국형 방역)’의 초기 성과에 취해버린 정부는 여전히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에만 매달려 감염자 수만 세고 있다. 감염 확산의 양상이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감염재생산지수는 1.55까지 치솟았고, 치사율도 1.64%로 일본의 1.48%를 넘어섰다. 역사상 가장 빨리 개발했다는 백신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다. 과학기술의 합리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익숙해진 변방의 삶

 

정부가 과학기술에 충분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안달했던 때가 있었다. 부총리 부서로 승격되었던 과학기술부가 느닷없이 해체되고 말았을 때의 일이다. 과학기술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기부의 조직을 고스란히 교육과학기술부로 옮겨 놓은 것을 다행이라고 믿었다. 당시에는 국가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거버넌스’가 무너지면 당장 과학기술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으로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는 정부의 달콤한 말을 믿었던 것이 실수였다. 한 번 시작된 과학기술의 추락에는 끝이 없었다. ‘교과부’가 ‘미래부’(미래창조과학부)를 거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질되면서 과학기술은 국정의 중심에서 온전하게 밀려나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과기정통부 안에서도 과학기술 정책은 훨씬 더 뜨거운 휴대폰, 종편 관리, 주파수 판매 정책에 파묻혀버렸다. 정부 조직에 관한 한 과학기술은 정보통신의 곁방살이 신세가 돼버렸다.


오랜 세월 정부의 따뜻한 보호막에 안주하던 과학기술에게는 힘겹고 혼란스러운 고난의 시절이었다. 속절없이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에 내몰렸고, ‘과학기술’과 ‘비즈니스’와 ‘세계화’를 앞세운 화려한 정치 구호의 쓴맛도 경험했다. 기초가 부실한 ‘창조’의 공허함도 실감했다. 그런데 가랑비에도 옷이 젖기 마련이다. 이제 과학기술도 변방의 어설프고 변변치 않은 삶에 제법 길이 들어버렸다. 거버넌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식어버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3년 4월 1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현판 제막식에 참석해 줄을 당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3년 4월 1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현판 제막식에 참석해 줄을 당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구실을 제쳐두고 캠프를 기웃거리는 정치꾼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했던 깜짝 스타들이 최고의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물론 신선한 새 바람을 기대할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모방’과 ‘추격’의 과학기술을 ‘창조’와 ‘선도’로 바꿔야 한다는 화려하고 강렬한 구호는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깜짝 스타들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과학기술 정책은 선진국의 구호만 흉내낸 속빈 강정으로 가득 채워지고 말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일에 과기정통부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결국 과기정통부가 제기했던 혐의는 실체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필귀정이다. 그렇다고 과기정통부가 공개적인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과기정통부의 모함으로 사기꾼으로 전락해 재판을 받고 있는 과학자도 있다.

 

자율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일 오전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파이낸스센터에서 현판식을 개최했다. 과기정통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파이낸스센터에서 현판식을 개최하는 모습이다. 과기정통부 제공

이제 과학기술계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학기술이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성장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 정부의 거버넌스도 믿을 것이 아니고, 어설픈 정치꾼들에 대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코로나19의 방역에서도 과학의 설자리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자율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에게 과학기술의 가치를 설득해보겠다는 순진한 꿈은 버려야 한다. 60년 동안 애써 개발해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을 아무 미련 없이 내팽개치고, 동남권 신공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학자를 들러리로 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이다. 국회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과기정통부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한다. 이제 과기정통부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한 착각이다. 원자력에 대한 ‘학술의 진보와 산업의 진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과학기술기본법’조차 준수할 능력과 의지도 없는 것이 과기정통부다. 과학자를 한낱 자신들의 ‘관리 대상’ 정도로 여기는 곳이 과기정통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기정통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과기정통부가 과학기술을 위해 정부를 설득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이제는 무망한 것일 수 있다.

 

이제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따뜻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학기술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자율은 그림의 떡이다. 당장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세계 최초로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정보통신 기술로 감염자의 추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성과를 적극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K-방역의 성공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