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지금도 진행형인 과학기술계의 비정규직 차별

2020.11.19 06:00
 

며칠전 페이스북을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사업별 신청자격을 우연히 보게 됐고, 즉시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젊은 과학자 1000명에게 5년간 인건비와 소정의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이 사업의 기저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서도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비정규직 박사를 돕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자리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세종펠로우십을 신설하면서, 원래 정규직과 비정규직 과학자가 모두 신청할 수 있었던 우수신진사업의 신청자격에서 비정규직을 제외했다. 그 뿐만 아니라 연평균 1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신진연구에 비해 세종펠로우십은 연평균 1억3000만원을 제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외엔 아무런 차이도 없는 비정규직에겐 노골적으로 20%나 적은 연구비를 준다고 공시중이다.

 

과기정통부가 공개한 세종펠로우십과 우수신진과제의 신청자격. 기존에는 비정규직도 신청가능하던 우수신진연구에 비정규직 연구원은 더이상 지원할 수 없다. 김우제 제공
과기정통부가 공개한 세종펠로우십과 우수신진과제의 신청자격. 기존에는 비정규직도 신청가능하던 우수신진연구에 비정규직 연구원은 더이상 지원할 수 없다. 김우재 제공

그러니까 결국 과기부의 세종과학펠로우십이라는 제도는 비정규직 과학자에게 아주 적은 연구비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규직 과학자의 다른 밥그릇을 보호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정부가 대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구원을 차별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과연 공정을 이야기하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걸고 탄생한 정부였다.

 

세종과학펠로우십과 우수신진과제의 연구비액수 차이. 세종펠로우십이 20%나 적다. 김우재 제공

과학기술계의 일자리 부족 문제는 하루이틀 된 게 아니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표면화되는 2000년대 초반은, 이미 심각한 일자리 부족과 과학기술계의 인력 피라미드화가 심각해진 시기였고, 당시 이공계를 기피하던 고등학생들은 과학기술계의 이런 구조적 문제를 이미 소문이나 주변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대를 지망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사들을 보면 “연구개발 비정규직은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제목도 보인다⁠.

 

그러니까 벌써 20년 전부터 과학기술계는 연구개발 현장의 심각한 비정규직화와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었으며, 거꾸로 말하면 정부는 무려 20년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연구개발현장의 비정규직화가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위협하고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한국 과학기술계의 인력문제를 구조적으로 혁신하려던 정부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과 비슷한 방식의 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을 전면에 걸고 누더기가 되어버린 현재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을 만들어냈고⁠, 박근혜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정규직화를 이룬다면서 비정규직을 해고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과학기술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걸고 등장했던 문재인 정부는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분명히 노력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전체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인력구조조정을 실행하기보다, 정부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정출연을 대상으로 미래 전략과 현재 예산에 걸맞지 않는 정규직화에 대한 압력을 가해, 현재 대부분의 과학기술계 정출연은 비정상적인 정규직화로 인한 예산부족과 연구역량 저하를 겪고 있다⁠.

 

정부의 입김이 제대로 닿지 않는 대학의 연구개발 분야는 여전히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부의 과학기술계 인력정책이 정권의 이념을 지키려는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문재인 정부는 연구개발 인력의 선발과정에서 과학기술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블라인드채용을 강요해 현재 출연연은 인력선발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블라인드 채용으로 중국인이 원자력연에 뽑히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블라인드 채용을 억지로 모든 분야에 적용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정부가 예산을 출연한다는 이유로 이 모든 부당한 정책을 정출연에만 가중시켰다는 점은, 현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숙의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출연연 문제를 책임져야할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이 과정에서 손을 놓고 쳐다만 보고 있다⁠. 과학기술계 현장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들릴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면,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과학기술계의 인력구조조정이 이토록 처참하고 부실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인식, 보통과학자의 삶

 

과학기술자의 길이 험난하다는 인식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박사학위가 직업을 보장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박사학위는 오히려 직업을 구하는데 해가 될 뿐이다. 과학자가 되려면 대학원에 가지 말고⁠, 대학원에 가려거든⁠  평생 혹독한 경쟁의 길에 내몰릴 각오를 하라는 글을 썼던 건, 과학기술계의 비정규직화와 양극화가 가장 심각해지던 무렵, 아무것도 모른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나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복잡한 사회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IMF로 집안이 어려웠지만, 어렵게 장학금을 받으며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었고, 힘들게 통과한 그 통로를 지나 미국이라는 과학의 선진국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장미빛으로 보였을 뿐이다.

 

과학기술계의 인력구조 피라미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Post-phD Carrer Trajectory & Funding (https://slideplayer.com/slide/8978488)
과학기술계의 인력구조 피라미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Post-phD Carrer Trajectory & Funding (https://slideplayer.com/slide/8978488)

다행히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미국에서의 박사후연구원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낭비하지 않는다면 30대 초중반의 남성 혼자 숙식을 해결하고 아주 적은 돈을 모을 정도의 봉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회사에서 대리를 거쳐 과장으로 승진할 나이였고, 차를 사고 집을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만, 연구가 즐거웠기에 상대적 박탈감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박사후연구원의 삶은 좀 달랐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월급이 많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부부가 아이와 함께 외국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는 비정규직 보통과학자의 삶은 처참하다. 30대 중반이 되서도 한국의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도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버텨낸다고 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미래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전세계에 그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는 한국인 과학기술자가 수만명은 될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던 그들이 이젠 한국을 버리고 있다⁠.

 

아마 처음으로 과학기술계의 비정규직화에 분노했던건, 미국에서 가장 명문대학이라는 스탠퍼드대의 동료 포닥이 자신의 아내는 의료보험이 없다고 토로했을 때였던 것 같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최악이긴 하지만, 내가 소속되어있던 캘리포니아주 대학들은 박사후연구원 노조가 존재했고, 노조와 대학의 협상을 통해 최상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탠퍼드대처럼 사립대학의 경우, 실험실마다 문화와 제도가 달라서 어떤 실험실의 경우엔 보험은 알아서 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집값은 한국 강남처럼 치솟고 있었고, 내가 미국을 떠나던 2014년 경엔 그 치솟는 집값 때문에 우수한 연구원들이 샌프란시스코로 오지 못하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정규 의료보험이 없이 여행자 보험만 있던 연구원의 아들이 맹장염에 걸렸을 때, 그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글을 보험사에 제출해야만 했고, 대부분의 박사후연구원에게 주어지는 치과보험으로는 제대로된 치과치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나 역시 미국에 도착한지 몇 년만에 이빨이 심각하게 안 좋아졌지만, 치료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기에, 박사후연구원 생활 6년 만에 캐나다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았지만, 통장에 남은 잔고는 겨우 200만원이 전부였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는 과학자가 그렇게 가난한 직업인지를 나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그 길에 들어설 때는 이토록 심각한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았고, 과학계의 처참한 양극화를 깨닫게 되었을 때는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다행히 교수가 되었지만, 비정규직화와 양극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박사후연구원에서 그치지 않고 조교수의 삶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에서 대학 조교수는 비정규직과 같은 의미로 인식된다. 전체 박사학위자 중에서 5%도 안되는 학자가 조교수에 임명되는데, 이들 중에서 실제로 종신직을 갖게 되는 사람은 그 중 10%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자를 연구비를 가져오는 기계로 생각하고 있고, 그 효율성에 미달되는 과학자는 기계부품처럼 갈아치운다. 지금은 테뉴어 제도, 즉 종신직이 대학 교수들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있지만 대학의 종신직 또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물론 소수의 우수한 대학은 종신직 제도를 유지하겠지만, 그 피라미드 아래를 떠받치는 대다수의 보통과학자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계는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일자리 양극화를 겪고 있으며 그 추세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교수와 이미 정규직이 된 선배 과학자들은 후속세대에게 공포를 심어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알려주는건, 그 현실에 압도되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그 현실의 불공정함을 깨닫고, 그저 현실에 적응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윗 세대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의미다. 현재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한 대학원생이 성공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될 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중의 상당수는 학위를 중도 포기할 것이고, 학위를 받고 나서도 다른 일을 하게 될 확률이 30%가 넘는다. 인구절벽 때문에 대학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고, 교수의 숫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현재와 같은 구조의 과학기술계 인력정책은 단 10년도 버틸 수 없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과학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마치 사회 속에서 보통시민이 그러하듯이, 과학자 또한 이제 특별한 천재나 광인이 아닌, 평범한 직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민들이 수백년 동안 투쟁을 통해 노조를 만들었고, 노동권의 보장을 위해 싸운 것처럼, 보통과학자 또한 그 길에 나서야할 시기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지 모른다. 현실을 알게 된다는게 반드시 좌절과 공포를 의미하는건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모피어스가 건내준 빨간약을 선택하고 투사가 된다. 빨간약은 매트릭스라는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통로였다. 과학자의 삶은 더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과학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자의 삶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보통과학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과학기술계는 결코 사회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사회에서 일자리가 양극화되면, 과학기술계도 그렇게 된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워왔듯이, 이제 보통과학자들 또한 현실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과학동아 2 016년 5 월호 기획
과학기술계는 결코 사회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사회에서 일자리가 양극화되면, 과학기술계도 그렇게 된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워왔듯이, 이제 보통과학자들 또한 현실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과학동아 2016년 5 월호 기획 비정규직 과학자 벼랑끝에 서다 표지그림

※참고자료 

-과학동아 2016년 5월호, “나는 1년 계약직 과학자 입니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1782
-헬로DD, 젊은 과학자 5년간 1000명 지원, '세종과학펠로우십' 추진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06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연구개발-비정규직은-현대판-노예제도
-IBS 관련 동아사이언스에 기고한 글들을 참고할 것.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2238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01249
-http://m.joongdo.co.kr/view.php?key=20201011010002345
-https://www.etoday.co.kr/news/view/1952480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0102144001 
심지어 블라인드 채용으로 중국인이 원자력연에 뽑히는 해프닝도 있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05198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3554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91754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886.html
-https://slideplayer.com/slide/8978488/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6/2019112600083.html0

https://www.fnnews.com/news/202008261614463050
-https://brunch.co.kr/@windsol/1413
-http://www.newstouch.site/news/articleView.html?idxno=11065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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