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과거와 미래]⑧유럽 대학의 쇠락에서 얻은 교훈, 재정확보가 중요하다

2020.11.17 14:37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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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 세계의 학문을 주도하던 곳은 유럽의 대학들이었다. 이 중 독일 대학들은 19세기 이후 학문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유태계 석학들이 독일을 탈출하면서 시작된 독일 대학의 몰락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동서독 분할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 시작된 전후 독일의 고등교육은 지방정부가 대학 재정을 책임지며, 누구나 대학에 입학해서 무료로 학습할 수 있는 고등교육 기회의 균등과 대학의 평준화라는 이상을 구현해 왔다.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1968년 5월 혁명 이후 포르 개혁을 통해‘자율’, ‘참여’, ‘다학제’의 원칙 아래 혁신적으로 대학을 변화시켰다. 정부 기관인 대학의 운영을 교수, 교직원, 학생으로 구성된 위원회에게 맡겼고, 대학을 평준화해서 대학 입학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자기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는 체계를 유지해 왔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들은 정부 기관으로 교수들은 국가공무원 신분이며, 공공성에 기반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지만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있다. 대학에 대한 단단한 철학, 건전한 지배 구조와 공공성 확보, 대학의 핵심 가치인 자율성이 보장되었지만, 독일과 프랑스 대학은 학문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19세기 후반까지 중세적 모습을 간직한 구습의 상징과 같았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과 건전한 지배구조 구축, 대학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대, 에딘버러대, 맨체스터대들 같은 세계 최고 대학을 키워냈다. 영국의 대학이 독일, 프랑스 대학들을 앞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며, 전쟁에 휩싸이지 않아 대학 인프라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점이 차이의 시작일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간의 경쟁 도입, 대학원 육성과 연구 강화, 민간과 공공의 적절한 재정 지원, 프랑스와 독일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자율적인 지배 구조, 영어와 영연방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 네트워크와 이를 활용한 인재 확보가 그 실질적인 이유들이다. 이중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영국 대학들은 학생 증가로 야기되는 대학 재정 문제를 기회균등과 같은 정치적 신념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다. 

 

옥스퍼드대 제공
옥스퍼드대 제공

201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비용 지출 규모를 보면 영국은 유럽 국가들 중 핀란드 다음으로 2위이며, 특히 공공 지출은 유럽 국가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민간 지출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중세 유럽의 대학이 시작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주요 국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평균에도 못 미치는 지출 규모를 갖고 있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대학의 재정 확보가 대학의 역량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유럽 대학의 쇠퇴에 대한 연구는 한결같이 재정 부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는 프랑스 대학의 침체가 학생 1인당 재정 지원 감소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콜레쥬드 프랑스에 초빙된 필립 아기온 교수는 유럽 대학과 미국 대학의 연구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그 첫 번째 이유를 대학이 사용하는 지출 규모의 차이임을 확인했다. 2001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25개국이 대학에 사용하는 지출이 GDP 대비 1.3%인데 비해 미국은 3.3%이며, 대학생 1인당 지출은 유럽은 8700유로, 미국은 3만6500유로로 더욱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인 요 리츤은 유럽 대학의 모태가 되었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대학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한 사실을 설명하며, 1960년대 이후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학의 예산이 실질적으로 전혀 증가하지 않아 학생 1인당 재정 지원이 줄었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유럽 대학들의 현황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대학의 철학과 지배 구조가 건강하고 공공성이 확립되어 있으며 사회 전반적인 학문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재정 지원 없이는 우수한 대학을 육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되는 하버드대의 경우 2018년 예산이 52억 달러(약 6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재단 전입금은 35%로 18억 달러(약 2조1000억원), 당해 연도 기부금이 9%로 5억 달러(약 6000억 원)이며, 재단 적립금은 470억 달러(약 56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고등교육 비용 지출은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2012년 GDP 대비 고등교육 비용 지출 규모를 보면 2.34%로 OCED 회원국들 중 상위 4위에 해당하는데, 이중 공공 지출은 0.69%에 머물고 민간 지출이 1.65%를 담당하고 있다. 민간 지출만 평가하면 한국은 상위 3위, 공공지출만 평가하면 하위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OECD의 경우 공공 지출 평균이 67%인데, 한국은 29%에 불과한 셈이다. GDP 대비 전체 지출 규모는 평균 이상이지만, 80%에 이르는 대학 진학률에 따라 2012년 대학생 1인에게 투자하는 지출 비용은 1만1300달러로 OCED 평균 1만3700달러의 83%에 머문다. 대학의 위기를 염려하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보다도 뒤에 위치하는 것이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은 학생 1인당 지출비용이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것과 대비된다. 요약하면,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고등교육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민간 비용을 통해 고등교육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부금이나 사학 재단 전입금 규모가 작은 것을 감안하면, 결국 사실상 등록금을 통해 고등교육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대학생 1인당 비용 지출은 유럽보다도 열악한 상황이다.

 

투자를 통해 대학의 연구 역량이 발전하고, 규모가 확대되어 대학의 연결 기능이 강화된다면, 대학은 최신 국가 경제성장 이론인 ‘신성장 이론’의 핵심인 지식의 총량 증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은 하버드대 랜트 프리쳇 교수가 입증한, 교육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례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한다면 기업은 생산성 증대로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고, 경제성장은 세수 증대로 연결되어 정부 재정 운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학에 대한 투자 수익을 기업과 정부가 나누어 갖는 것이다. 유럽이 2000년 리스본 조약을 통해 유럽의 대학 진학률을 5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처럼 여러 국가가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가 제작한 입시 면접 홍보 동영상 캡쳐
케임브리지대학교가 제작한 입시 면접 홍보 동영상 캡쳐

그러나 대학을 구성하는 이해 관계자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관찰된다. 대학의 발전과 확대는 학생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이런 투자는 대학 진학률을 상승시키고 대학 졸업생의 공급 증가를 야기해서, 학생 개인의 교육투자 수익률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학 졸업생 수가 증가하는 것이 국가와 기업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학생 개인에게는 투자 측면에서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1981년 30%를 넘었고, 1994년 40%, 1995년 50%, 1997년 60%, 2001년 70%, 2004년 80%를 넘었다. 이와 같이 투자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진 대학 진학에 대해 2014년 공공 지출은 34%에 머물고, 민간 지출은 66%에 달한다. 공공 지출 규모가 증가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50% 이상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는 진학 인구가 급감해서 대학 사회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2021년 이후이다. 궁극적으로 OECD 평균인 67%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추가로 필요한 재원은 대학 교육 개선의 수혜 주체인 기업들의 법인세에서 충당되어야 하며, 법인세 세수의 5% 정도를 고등교육에 사용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2018년 법인세 세수 규모가 70조인데, 3조 5000억이 추가로 고등교육에 투입된다면 대학생 1인당 지출비용이 OECD 평균에 근접할 수 있다. 또한 급감하는 초등교육 수요를 고려한 교육 예산 재배정도 필요하다.

 

공공 지출의 확대는 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양극화 문제해결, 왜곡된 사립대학 지배 구조의 다양화, 대학의 공공성 회복, 대학의 연결 능력 강화 등이 그 주요 방향들이다. 

 

무엇보다 지방 국립대학이 대학 구조혁신의 첨병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실현해야 한다.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의 유인 체계로 등록금 면제 같은 파격적인 지원과 참여 대학들에 대한 초기 투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국립대학이 책무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서 대학 입시 경쟁에서 낭비되는 국가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에 속한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의 확보라는 장점, 규모의 경제가 제공하는 편익, 한국의 대표 대학에 해당하는 명칭을 부여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실제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가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방 주요 사립대학의 경우엔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는 데 정부 재정을 시급히 투입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영형 사립대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유인 체계로 등록금을 현재의 절반으로 낮추어 주는 지원도 고려할 만하다. 공영형 사립대학 네트워크를 특색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도 투자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3조5000억원이 추가로 지원된다면 20만 명 정도의 재학생으로 구성된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의 재학생 등록금 면제와 10만 명 정도의 재학생으로 구성된 공영형 사립대학 재학생에게 반값 장학금 지원이 가능하다.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학생들 중 국가 장학금 수혜자들에게는 해당 금액을 생활비로 지원해서 우수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대학이 다양한 연결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인적자원 교환 프로그램, 학생들의 연결 능력과 리질리언스를 키워 주는 사업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가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이지 못했던 세계 수준 연구 중심 대학 육성 사업을 재시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 된다는 것은 학문적 연결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충분한 재정 투입이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스위스, 덴마크, 벨기에, 네델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의 강소국들은 소수의 거점 대학에 집중적인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세계적인 학문적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국립대와 난양공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한 싱가포르, 홍콩대와 중문대, 홍콩 과학기술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한 홍콩이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 이들 국가들과 같이 3,4개 연구 중심 대학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도 가치 있는 재정 투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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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이 연재는 지난 6월 5일 출판된 필자의 저서《대학의 과거와 미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대학에서 공간 정보 취득, 관리, 분석, 시각화, 활용과 관련한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공간정보 벤처 기업에서 5년간 기술총괄이사로 일했다. 연세대 오픈스마트에듀케이션(OSE) 센터장, 교육부 한국형 온라인공개강좌(K-MOOC) 기획위원, 미래교육 실무 자문단, 국가 평생교육진흥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코세라에서 ‘공간 데이터 과학과 응용(Spatial Data Science and Applications)’라는 MOOC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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