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속내를 금방 들키는 사람

2020.11.07 00:00
연합뉴스 제공
홍조를 띈 얼굴의 트럼프. 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근거도 없이 자신이 이겼는데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논란이 일었다.  너무나도 허황되지만 현역 미국 대통령이 펴는 이런 주장에 대해 미 국민들 가운데에서는 "대통령이 거짓말로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는 한탄과 함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퍼져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다.


인간 사회는 이처럼 꽃병을 깨트리고서 자기가 안 했다고 시치미 떼는 작은 거짓말부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거짓말까지 각종 거짓말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판별하는 것은 인류의 중요한 숙제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정치와 별로 상관은 없지만 우리 인간에게 숨어 있는 '거짓말 탐지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먹어야 할 약을 잘 안 챙겨 먹고 있었던 어느 날, 주치의쌤이 내게 "약은 잘 먹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뻔뻔하게 "네"라고 하려 했는데 그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당연히 들켰고 이후 얼마나 오래 안 먹었는지 등 취조를 당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에 그만 다 자백하고 말았다.


이렇게 인간은 재미있게도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당황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면 얼굴이 빨개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얼굴 붉힘(blush)'이라고 불리는 현상인데, 일찌기 다윈과 또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는 얼굴 붉힘은 인간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감정(social emotion)”이라고 보았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 자체가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 혼자 방 안에 있을 때 뿡 하고 방귀를 뀌거나 꽈당 넘어졌다거나 나체로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해보자. 별로 부끄럽지도 신경쓰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고 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이렇게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사회적 감정이듯 이들 감정에 동반되는 생리적 반응인 얼굴 붉힘 또한 대부분 사회적 상황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리어리는 얼굴 붉힘이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에 특화된 신체적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부끄럽거나 당황스럽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하는 등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자동으로 켜지는 것이 얼굴 붉힘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생일 축하를 받을 때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즐거워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얼굴 붉힘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리어리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청중들의 존재 여부는 동일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실험 참가자에게 닿는 조건 vs. 닿지 않는 상황을 각각 만들었다.

 

6-9명의 청중들이 참가자를 향해 앉아있는 상황에서 세 가지 서로 다른 조건을 만들었다.

 

ⓐ 시선이 닿는 조건: 청중들이 참가자를 바라보고 있는 조건

ⓑ 시선이 닿지 않는 조건A: 청중들이 참가자를 바라보고 있지만 눈에 가리게를 씌워 참가자가 보이지 않게 한 조건

ⓒ 시선이 닿지 않는 조건B: 청중들이 앉은 곳을 불투명 유리 같은 걸로 가린 조건

 

그러고 나서 참가자들의 볼에 미세한 온도 변화를 측정하는 온도계를 장착하고 어떤 상황에서 더 사람들의 볼 온도가 높아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 시선이 닿는 조건에 있었던 참가자들 볼 온도가 제일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얼굴 붉힘은 평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도 타인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존재하는지에 더 특화된 신체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쓸데없어보이는 신체 반응이 존재하는 걸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얼굴 붉힘에 다음과 같은 쓸모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①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등 뭔가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준다(얼굴을 붉힘으로써 나의 잘못과 거짓말을 들킨 나).


 ②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부끄러워하며 반성하고 있는 지의 정보를 주고 따라서 향후 처벌의 수위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앞으로 이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줄 수 있다.


③ 상당히 복잡할 수 있는 위의 거짓말 탐지와 신뢰도 판단 등의 프로세스들을 순식간에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관련해서 사람들은 포커페이스인 사람보다 얼굴을 잘 붉히는(화나서 붉히는 거 말고) 사람을 더 신뢰하는 편이라는 연구가 있었다. 뭔가 잘못된 일을 했을 때 뻔뻔하게 감출 수 있는 사람보다 감추지 못하고 쉽게 들통이 나고 마는 사람, 또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곁에 두기 안전하다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얼굴이 두껍다”고하는 뻔뻔함을 비난하는 표현도 얼굴 붉힘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심이 있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속이는 것이 많기보다 투명한 것이 신뢰의 근간이라는 점 기억해보자.  

 

※참고자료

Leary, M. R., Britt, T. W., Cutlip, W. D., & Templeton, J. L. (1992). Social blushing. Psychological Bulletin, 112, 446–46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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