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진화]하와이안 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0.10.18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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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아이슬란드 대통령 귀드니 요하네슨은 하와이안 피자 금지 공약을 내걸었다. 21세 미만의 청소년 표를 30% 이상 받는다면, 피자 토핑에 파인애플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즉각 아이슬란드의 국론은 양분됐고 전 세계에서 찬반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하와이안 피자 금지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더 우세했다. 물론 반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고, 여론도 반농담이었다. 덕분에 파인애플이 계속 토핑에 올라가고 있다.

 

억울한 하와이

 

사실 하와이안 피자는 하와이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다. 캐나다가 저지른 일이다. 파인애플은 자라지도 않는 온타리오주의 한 요리사가 1962년에 처음 내놓았다. 하와이안 피자에는 햄과 치즈, 토마토소스가 들어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근데 갑자기 파인애플이 재료로 등장한다. 게다가 하와이주 정부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하와이안 피자라고 이름을 붙여버렸다. 자존심으로만 전쟁을 했다면 이웃 나라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놀랍게도 하와이안 피자는 제법 사랑받는 음식이다. 2015년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하와이안 피자는 영국인이 가장 많이 포장해가는 피자였다. 그런데 영국만이 아니다. 1999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하와이안 피자는 호주 전체 피자 매출의 15%를 차지했다. 호주인의 조상이 영국에서 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놀라울 일만은 아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하와이안 피자가 처음 출시된 이유는 짐작이 간다. 프랑스인이 많은 퀘벡주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거위 간을 토핑하면 몰라도.

 

새끼 오리 증후군

 

콘라트 로렌츠(1903~1989). 카를 폰 프리슈·니콜라스 틴베르헌과 함께 동물행동학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거위와 오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류는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본능(각인)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콘라트 로렌츠(1903~1989). 카를 폰 프리슈·니콜라스 틴베르헌과 함께 동물행동학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거위와 오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류는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본능(각인)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원고 독촉에 시달리다가, 하는 수 없이 대충 피자 이야기로 칼럼을 때우려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하와이안 피자처럼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리는 음식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분명 피자 위에 놓인 파인애플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자와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비릿한 앤초비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사실 다 거기서 거기다.


'새끼 오리 증후군(baby duck syndrome)'이라는 개념이 있다. 새끼 오리가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컴퓨터 사용자가 처음 사용한 운영 체제를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일종의 경로의존성이지만, 심리적 영향이 한몫한다. 윈도 체제를 처음 쓴 사람은 그러한 시스템에 적합한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에 익숙해진다.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점점 '정'이 든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가 미끈한 맥북을 내놓아도 델 컴퓨터 마니아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 것이다. 시커먼 델 컴퓨터가 더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일종의 각인 현상이다.


솔로몬의 반지


솔로몬은 두 개의 삼각형이 엇갈리게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었다. 초능력 반지다.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주었다. 베드타임 스토리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반지에 '다윗의 별'을 새기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콘래드 로렌츠의 책 《솔로몬의 반지》를 읽어보자.


동물 행동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로렌츠의 대표적인 연구가 바로 거위 각인 연구다.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기는 재미있는 현상을 말한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아마 한 번쯤은 턱수염이 덥수룩한 초로의 아저씨, 로렌츠를 졸졸 쫓아다니는 거위 새끼의 사진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각인은 좀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알을 까고 나올 때 처음 만나는 대상은 십중팔구 어미 거위일 것이다. 강한 애착을 느끼면서 무조건 따라다니는 편이 유리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당신이 내 어머니라는 증거를 대시오"라며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 새끼 거위는 험난한 세상에서 좀처럼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음식은 문화적 각인 

 

하와이안 피자가 미국 하와이에서 탄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1962년 캐나다의 Satellite Restaurant에서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하와이안 피자가 미국 하와이에서 탄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1962년 캐나다의 'Satellite Restaurant'에서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도 그렇다. 컴퓨터 운영체제(OS)마저도 어린 시절에 써본 시스템에 왠지 애착이 가는 것이 인간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가라서 학생용 오피스를 헐값에 뿌리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동안 윈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도스였다. 지금도 왠지 도스 화면에 애착을 느끼고, 아타리 사의 게임을 하면서 가슴 저릿한 추억을 느끼는 중년이 많다. 새끼 오리 증후군. 즉, 각인이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분명한 문화적 각인은 바로 음식이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유별나서 김치를 좋아하고 된장찌개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80%가 7번 염색체에 김치 선호 유전자를 보유'라는 식의 연구가 발표될 가능성은 없다. 어린 시절에 먹은 음식은, 개체에 주어진 사회생태학적 환경에서 오랜 세월 입증된 최적의 음식일 가능성이 크다. 해당 음식의 재료를 구하는 비용이든, 구성된 영양소든, 주어진 기후에서 부패 가능성이든 말이다. 어린 시절에 맛본 음식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분명 적응적인 전략이다.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대통령도 파인애플 피자 토핑 금지를 운운하는 무서운 세상이니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고 있겠지만, 매출은 정직하다. 아마 오늘도 어떤 중년 남성이 동네 피자가게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주문할 것이다.


"거, 뭐 하와이안 피자라는 거 하나 주시오. 뭐가 들어가는 건지 잘 모르지만 말이죠. 설마 파인애플을 넣는 것은 아니겠죠? 하하하. 나는 그런 것을 토핑을 넣는 막돼먹은 부류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아. 잠깐만! 빼달라는 것은 아니란 말이오. 그냥 원래 레시피대로. 조금 더 넣는 것도 좋겠네요. 조금 뭐 살짝. 두 주먹 정도? 하하하. 뭐, 가끔은 싫어하는 음식에 도전할 필요도 있으니까."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은데, 내 이야기는 아니다. 비대면 주문 앱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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