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자신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라

2020.10.17 10: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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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사사건건 스스로에게 너무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이 어떻고 피부가 어떻고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안 든다며 비판하고, 시험 점수가 1~2점이라도 떨어지면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며 스스로를 비하했다. 어른들의 잔소리도 심했지만 그 잔소리를 그대로 내면화해서 내가 나에게 하루 24시간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잔소리에는 귀라도 막을 수 있지만 내가 나에게 하는 잔소리로부터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특히 청소년기에 심한 자기 비하와 자신을 향해 가혹한 태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똑똑해야 하고 거기에 이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까지 좋아야 하고 가족을 돌볼줄도 알아야 하는 등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준에 의해 촘촘히 평가되는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자기 검열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현상이 나타난다. 남성은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여성은 많지 않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여전히 자신을 향해 가혹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청소년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나에게 가혹한 태도를 보일 때면 ‘그럴만 해서‘, 실제로 못생기고 몸매가 별로고 공부도 못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잘 못 하고 있으니까 나쁜 대접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뜻보면 합리적인 행동인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설명은 흔히 각종 폭력의 가해자들이 내놓는 변명이다. 누구나 보이는 실패나 실수, 부족함 또는 그 어떤 이유로도 학대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상대가 타인뿐 아니라 나여도 마찬가지다. 만약 학교 폭력 가해자가 피해자가 맞아도 싼 행동을 해서 괴롭혔다고 하면 모두가 분노할 것이다. 비슷하게 내가 나를 학대하는 것 역시 그리 합리적이거나 정당한 행동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특히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유독 자신에 대해서만 평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나에게만 유독 불공평하게 구는지는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예컨대 자기 비하가 가장 심한 날에도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쟤는 다리가 못 생겼으니까 -1점, 쟤는 오늘 발표를 잘 못했으니까 -5점, 쟤는 성적이 별로니까 -3점이라며 친구의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평가한 점수가 높으면 친구를 더 좋아하고 점수가 낮으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약점이 하나도 없고 완벽하기 때문에 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마음이 잘 통해서 같은 작은 이유들로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구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고 친구에게 완벽하지 않다면 너와 잘 지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유난히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이런 평가적인 시선을 적용하고 가혹한 기준을 들이미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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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청소년기는 ‘타인과 다른 나’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는, 자기 정체성이 크게 발달하는 시기라는 점이 한 몫 한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타인이 경험하는 세상이 다르며 서로의 입장, 처지, 사고방식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나의 삶이 타인에게는 타인의 삶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점점 ‘타인과는 다른 나’라는 개념을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나는 어떤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가‘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예컨대 외모가 출중한지,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는지, 운동신경이 좋은지, 사회성이 좋은지 등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평가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전략이 바로 ‘비교’이다. 예컨대 어떤 시험에서 성적을 80점 받았다고 했을 때, 이것만 가지고 나의 실력을 판단하기엔 정보가 조금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100점을 받았다면 80점은 다소 부진한 성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50점을 받았다면 80은 훌륭한 점수가 되는 등 나의 상대적인 위치가 주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변 어른들과 사회에서 보다 우수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압박하는 탓에 청소년들은 강박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기준 미달이라고 생각되면 갖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평가가 시도때도 없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이루어질 때, 또 평가 기준이 너무 빡빡해서 불필요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습관적으로’ 유발할 때다. 예컨대 취미로 하는 요가나 그림 그리기, 화분 키우기, 운동 같이 굳이 비교 우위에 있지 않아도 되는 항목들에서도 자신을 평가하고 비교하면서 활동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든지, 상위 1%인 대단한 사람들이랑만 비교해서 평생 좌절감에 빠져 산다든지 하는 경우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면서 일도, 가정도, 친구들도 잘 챙기고 심지어 운동까지 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같은 생각처럼 애초에 비교 대상이 너무 특출난 경우 열등감에서 헤어나오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서 해봐야 하는 생각은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가 아니라  “그런데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이다.


평가와 비교가 중요한 몇몇 분야에서 나의 실력이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행해진다면 나쁘지 않다.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숨 쉬듯 자신을 평가하고 평가와 비교, 자책, 자기 비하가 내 삶의 태도가 되어 버리면 목표 달성은 커녕 자신감만 떨어지고 한껏 불행해져서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고 살기 싫어지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5~19세 청소년의 약 30%가 죽음을 생각해봤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숨쉬듯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숫자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가혹한 사람들에 대해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자비’라는 태도를 추천한다. 즉 완벽하고 결점 없는 자신이 되려고 하기보다(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다) 자신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즉 인간인 이상 내 친구들처럼 나도 크고작은 실패와 부족함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인지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족함 많은 인간에게는 작은 노력도 절대 쉽지 않은 것이며 잘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것.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을 따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내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안타까워하고 잘 되기를 축복하듯이 나를 향해서도 응원하고 축복하는 시선을 보낼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보는 시험마다 만점, 최고의 인기인 등) 못지 않게 내가 가진 것(맛집 판별력, 소소하게 웃기는 능력, 호불호가 뚜렷한 점 등)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나는 정말이지 멋지고 완벽한 사람이라며 내가 나를 엄청 좋아하고 높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사실 너무 높은 자존감은 내가 더 이상 멋지지 않을 때 쉽게 부서진다는 부작용도 크다). 다만 내가 나를 미워하고 넘어트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나에게 자상한 마음을 품어보자는 것. 멋진 사람이 되겠노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전에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먼저 배우자는 것이다. 더 잘 되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그러다가 내가 부서져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친절함, 따스함, 자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참고자료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 Being Kind to Yourself》 , 《The Curse of the Self》, 《나는 나를 돌봅니다》 ,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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